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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220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무엇인가』(한병철, 김남시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1) 철학에는 역사가 없다는 것, 그러니까 보편을 지향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 책. 그가 푸코를 비판할 때 역사에 대한 감수성이 전혀 없다는 데 한 번 놀라고, 그럼에도 참고문헌에 통치성과 관련한 논문들ㅡ토마스 렘케와 피터 밀러의 것ㅡ이 언급되었다는 데 두 번 놀랐다. 한병철은 권력이 자유를 관통해서 작동한다는 견해는 적극적으로 수용하지만, 그 권력이 자유주의 통치성이라는 것과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역사는 무시한다. 한편으로는 한병철이 권력의 피안에 놓는 종교-친절함-피로라는 항이 과연 긍정할만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싹튼다. 그가 『피로사회』에서도 강조한 '깊은 피로감,' 그러니까 존재에 깊이를 더해주고 에고에 영감을 불어주는 피로를.. 2014. 5. 2.
투명사회 『투명사회』(한병철,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4) 한병철의 글에 어른거리는 하이데거의 유령을 쫓아내야 할 것이다. 사실 쫓아낸다는 말은 적합하지 않다(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부정하고 넘어서려 시도해야 한다는 말이 보다 맞을 것이다. 소셜미디어가 민주주의를 만들어내기는커녕 투명성의 독재를 이뤄낸다는 통찰은 일견 적절하다. 투명성의 독재는 감사(audit)의 제국과 쌍을 이룬다. 대학의 360도 다면평가, 국정감사, 더욱 투명한 감사, 감시, 통제…. 하지만 기술을 향한 적대적 태도로는 불충분하다. 게다가 한병철은 벤야민을 인용하면서 벤야민이 제의가치와 아우라의 붕괴를 서술할 때의 독특한 자세를 애써 무시하는 듯하다.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즉 사진과 영화의 등장이 아우라의 붕괴, 대중.. 2014. 5. 2.
혁명의 시간 『혁명의 시간 : 러시아 혁명 120일 결단의 순간들』(알렉산더 라비노비치, 류한수 옮김, 교양인, 2008)의 원제는 The Bolsheviks Come to Power(1976, 2004)이다. 역사가 라비노비치는 1917년 7월부터 10월(러시아 구(舊)력, 율리우스력)이라는 아주 짧은 시기만을 다룬다. 그리고 페트로그라드(레닌 사후 '레닌그라드'로 개칭된 이 도시는 소련 붕괴 후 제정 시대 이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다시 바뀌었다)라는 제한적인 공간을 이야기의 무대로 삼는다. 이렇게 라비노비치는 혁명이 가장 집중적으로 벌어졌던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서술전략을 선택했다. 이런 제한적인 접근은 혁명의 역동성을 포착하는 데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의 글에서는 당대의 신문과 주요 인물의 회고록,.. 2014. 1. 29.
자기만의 방 : 고시원으로 보는 청년 세대와 주거의 사회학 『자기만의 방 : 고시원으로 보는 청년 세대와 주거의 사회학』(정민우, 이매진, 2011)은 석사학위논문의 좋은 예를 보여준다.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는 한편, 섬세하게 연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2장에 삽입된 일지는 고시원 참여관찰의 의미를 다소 과대평가하는 감이 있다. 군데군데 낭만화된 서술도 드러나 "과연 그럴까…." 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읽으면서 생각나는 것 중 하나는 텍스트이고 다른 하나는 나 자신의 경험이었다.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와 나 자신의 고시원 체류기. 박민규의 소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 합쳐 1년 6개월이 조금 안 되는 나의 고시원 생활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게 고시원은 정민우의 표현을 빌자면 "시간을 집어삼키는 공간이자, .. 2014.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