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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Voice'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11/08/29 110829
  2. 2011/02/06 급진적 현실주의? (8)
  3. 2011/02/02 즐거운 설 되시길 (9)
  4. 2011/01/18 단상 : 과학과 정치평론 (2)
  5. 2011/01/14 [기형도] 우리는 그 긴 겨울의 通路를 비집고 걸어갔다 (6)
  6. 2011/01/10 Happy Birthday to Me (4)
  7. 2011/01/02 유서 (4)
  8. 2010/12/31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8)
  9. 2010/11/22 공병호의 한 마디 (2)
  10. 2010/11/22 세기말의 인간
My Voice2011/08/29 05:56

1. 조만간 개강이다. 날짜를 제목으로 붙인 포스팅을 하는 것도 오랫만이다. 이것이 소소한 여유를 드러내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또 다시 포스팅은 뜸해질 것이다.

2. 이론을 걷어내고 논점을 명확하게 전달할 때, 그때 가서야 무언가를 '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염두에는 두고 있지만, 나는 너무 서투르고 여전히 성급하다.

3. 무상급식과 보편적 복지 사이의 거리가, 기본소득과 보편적 복지 사이의 거리보다 더 넓은 것일까? 무상급식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얼마나 미적지근한가? 과연 한국에서 '보편적 복지'란 무엇인가? 정치와 행정은 또 어떻게 다른가? 지난 덧글 논쟁에서 이런 부분들에 대한 지적과 설명없이 너무 많은 것들을 그냥 넘겨버린 건 아닐까? 구체적인 수준에서의 분석 없이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만을 남발한 결과, 논리는 없고 주장만 있는 말들을 한 건 아닐까?

내가 혼란스러운 것은 아직도 국가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떤 '사회적 공동체'를 진지로 만든다 하더라도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끝내 국가라는 점에서 그렇다. 차라리 단호하게 "권력을 소비에트로!"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까?

4. 푸코든 맑스든 몇 가지 개념을 가지고서 그들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게다. 이번 방학은 거의 푸코 텍스트와 함께 한 것 같다. 동진 샘이 진행하는 세미나 하나에, 학과 사람들끼리 하는 푸코 세미나 하나. 책은 평균 일주일에 1권씩 읽었는데, 분량으로 따지면 뭐... 푸코를 "읽었다"고 하기엔 많이 민망해진다. 푸코는 어렵지만 재밌다. 그러나 이론적 자원으로서 어떻게 푸코를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이해가 턱없이 모자라다. 더구나 벌써부터 푸코가 갖고 있는 막다른 골목이 느껴지는 듯해 갑갑하기도 하다. 그래도 푸코는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겨울에는 맑스, 그 중에서도 『자본』을 정주행하면 어떨까 생각 중이다.

5. 학기가 시작되면 푸코 세미나로 미뤄뒀던 책들을 읽으려고 하는데, 그게 또 미뤄질 지도 모르겠다. 이번 학기도 강의 세 개를 들을 것이고, 팀티칭이 두 개이지만 현미킴 샘 강의 때 읽어야 할 텍스트가 그리 만만하지는 않아서... 학기 첫째 주 ~ 둘째 주 사이에 시간이 남을 테니 그때를 노릴 수밖에.

6. 저녁이 되면 부쩍 가을이 느껴지는데, 낮에는 너무 더워서 도로 여름이다. 저녁은 앞으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다. 저녁 냄새가 바람을 타고 코를 간지럽히는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벌써 동이 텄다.

1917년 7월 4일 볼셰비키가 주도하는 대규모 시위장면. 맨 앞 피켓에는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고 써 있다.
출처 : 노동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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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Birthday to Me  (4) 2011/01/10
Posted by leopord
My Voice2011/02/06 02:28
1. 세계 어딜가나 한줌도 안 되는 좌파판에서, 래디컬로 산다는 데에는 환희와 피로가 동시에 따라온다. 기질로 설명하든 방법론으로 설명하든, '급진'(적)이라는 구호는 매력적이면서 또한 공허하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삶의 방식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즉, 삶이 급진적이지 않다면, 래디컬한 그리고 '래디컬'이라는 주장의 급진성은 금세 소멸해 버린다.

2. '대중'은 그 대척점에 현실주의가 있다고 상상하곤 한다(혹은 상상하곤 한다고 나는 가정한다). 여기서 현실주의는 타협의 동의어이다. 적어도 갈등 조정의 온건한 방법들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급진과 현실주의라는 단어를 조합하면 어떤 개념이 도출될까? 단순한 언어유희, 모순형용에 불과할까? 잘해봐야 사회자유주의나 사회민주주의처럼 특정한 지향과 역사적 한계를 내포하는 레토릭에 불과할까? 급진적 현실주의 역시 하나의 정치적 태도가 될 수 있을까?

3. 그람시는 자코뱅이야말로 현실주의자임을 강조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물러서지 않고 신념을 추구한다는 자세를 이상주의적이라고들 부른다. 그러나 주체가 이상을 현실로 실현시키고자 할 때, 이상주의적 태도라는 반대파의 비난은 성립할 수 없다. 정치는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혁명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역시 혁명 국면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싸우는 데 불과한 것은 아닐까.

4. 다시 '급진적 현실주의'라는 말로 돌아와 보자. 급진적 현실주의(자)에 가장 잘 들어맞는 이들은 누구일까. 여전히 자코뱅과 그 후계자인 볼셰비키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에 급진적 현실주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볼셰비키 혁명의 반복을 요구하는 것일까? 지젝이 『지젝이 만난 레닌』과 『레닌 리로리드』를 통해 레닌이 하고자 했으나 할 수 없었던 행위를 포착하고 '반복'하자고 '대중'에게 요구하듯이. 

5. 난점은 이 급진적 현실주의라는 말에서 피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혁명에는 반혁명이 따라오며, 반혁명과의 투쟁은 테러라는 수단에 호소할 때 더욱 성공적이라는 통념을 마냥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로, 중국의 부상과 아랍의 혁명 도미노 국면(섣부른 판단일 수 있으나 '민주혁명'의 연쇄 반응은 그 성패에 관계없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은 '제국'의 황혼을 암시하고 있지 않나. 다함께식의 "자본주의는 끝났다. 이제 대안은 무엇인가."(물론 '정답'이 정해져 있긴 하다. 맑스-레닌주의, 그 중에서도 트로츠키주의에서 찾는 '영구적인 대안') 따위의 말은 서투르고 조잡하지만(나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선언'은 나름의 통찰을 품고 있다. 정말로 '자본주의 이후'는 존재하는가?

6. 지구는 '거대한 전환'이 다가오고 있다고 느껴질 만큼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다. 생태적으로나 정치경제적으로나. 그러나 이 전환이 반드시 평화롭거나 혹은 좌파의 기대대로 혁명 국면과 근본적이고 민주적인 변혁으로 나아가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파국과 재앙이 눈앞에 펼쳐질지 모를 일이다(반혁명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혁명 그 자체가 재앙일테지만). 근대를 돌아보면 혁명은 기근과 전쟁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 '포스트모던'한 세계에서 재앙과 손잡은 혁명은 반복될 것인가? 

7. 또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급진적 현실주의는 반드시 피냄새를 풍겨야만 하는가? 좀 더 급진적이면서도 또한 섬세하게 권력을 재배치할 수는 없을까? 추첨제의 전면적인 시행을 포함한 급진 민주주의 체제, 즉각적이고 조건없는 기본소득 전면 지급, 생산자조합-노동조합-생활협동조합의 네트워크로 구성되는 시장/비시장의 혼합 경제. 엘리너 오스트롬은 합리성의 범위를 확장함으로써 그 개념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둘 때, 공유 자원에 대한 자발적·자생적 자치 조직 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가정했다. 마찬가지로 '현실'의 인식 범위를 확장할 때 비로소 급진적 현실주의는 '혁명 전위'가 대중들을 설득하는 데 유효하지 않을까? 

8. 어쩌면 혁명이 다가오고 있을지 모른다. 이런 진단이 맑스-레닌주의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할까?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레닌없는 사회주의를 요구하고 싶다. 그걸 아나키로 부르든 뭐든 상관없이. 지금 여기서 가능하다면 무엇이든. 급진적 현실주의라는 정치적 태도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조직없는 이념은 공허하다. 잡상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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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opord
My Voice2011/02/02 13:11
가능하면 이번에는 그냥 서울에서 쉬고 싶었다. 이틀의 휴일을 혼자 조용히 책 읽으며 보내길 바랐다. 하지만 내가 하지 않은 일이 있기 때문에,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너무 오랫동안 이야기하지 않은 것들. 좀 힘들겠지만 난 이렇게 살 거다, 라는 말들. 가족에게 보이지 않은 내 솔직한 마음들. 잘 털어내면 좋겠는데.

모두들 즐거운 설 되시길. 그리고 다시 한 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설에는 설리가 진리.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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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opord
My Voice2011/01/18 22:35
(존칭생략) 1. 한윤형이 <정치평론에서의 초월적 논증>에서 염두에 둔 딜레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언'은 불가피하지 않느냐"인 것 같다. 여기에 칸트가 어설프게 개입되는 바람에 개념의 혼동이 온 게 아닐까(이 지적이야말로 어설픈지 모르겠다). 김우재는 초월적 논증과 과학적 논증 사이의 대립 구도는 순진할 뿐 아니라 무지의 소산이라고 비판하는 듯한데, 이 지점에 대해서는 김우재가 옳다(과학은 세계 '외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윤형은 여기에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2. 한윤형이 논객 내지 문사의 한계를 짚는 이유는 정치평론이란 언제나 실천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견의 과잉대표 현상과, 의견-실천의 괴리 내지는 연결점 부재에 있다. 여기서 김우재는 지적·실천적 도약으로서의 '초월'transcendent을 말하는 걸테고. 세계의 불확실성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성을 찾아 움직여야 한다는 주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세하고 민주적인 정치평론의 가능성을 짚는 것만큼이나 '상식적'이다. 두 사람은 각자의 '상식'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3.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선언'으로서의 초월적 논증이다. 한윤형이 박노자 등의 사례를 들면서 비약의 문제를 제기했을 때, 모든 선언은 가능성이 이미 실현되었다고 주장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을 떠올린다(예를 들어, 기본소득!). 그러므로 여기서 더 도드라지는 사람들(동시에 논쟁의 행간 속에 숨어있는 사람들)은 마키아벨리와 맑스와 레닌 그리고 그람시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이건 내가 '보고 싶어하는 지점'이기도 하다는 걸 고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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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opord
My Voice2011/01/14 21:18
우리는 그 긴 겨울의 通路를 비집고 걸어갔다

기형도


그리하여
겨울이다. 자네가 바라던 대로
하늘에는 온통 먹물처럼 꿈꾼 흔적뿐이다.
눈[雪]의 실밥이 흩어지는 空中 한가운데서
타다 만 휴지처럼 한 무더기 죽은 새[鳥]들이 떨어져내리고
마을 한가운데에선
간혹씩 몇 발 처연한 총성이 울리었다
아무도 豫言하려 하지 않는 時間은
밤새 世上의 낮은 울타리를 타넘어 추운 벌판을 홀로 뒹굴다가
몽환의 빗질로 우리의 차가운 이마를 쓰다듬고
저 혼자 우리의 記憶 속에서 달아났다.
알 수 있을까, 자네
꿈꾸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굳게 빗장을 건 얼음판 위에서 조용한 깃발이 되어
둥둥 떠올라 타오르다 사라지는 몇 장 불의 냉각을
오, 또 하나의 긴 거리, 가스燈 희미한 내 기억의 迷路를
날아다니는 외투 하나만큼의 허전함.
겨울 오후 3시, 그 휘청휘청한 권태의 비탈
텅 빈 서랍 속에 빛나는 압정 한 개
춥죠? 음. …… 춥군. 그런데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그리하여 水平으로 쓰러지는 한 컵의 물. 한 컵 빛의 悲鳴
잠자는 물. 그 빛나는 죽음. 얼음의 꿈. 토막토막 끊어지는 秒針.
우리는 世上과 타협하지 않은 최후의 무리였다.
모든 꿈이 소멸된 지상에 홀로 남아
두꺼운 외투와 커피 한 잔으로
겨울을 정복하는 꿈을 꾼다.
춥죠? 음. …… 춥군. 그런데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거리를 한 개 끈으로 뛰어다닐 때의 해질 무렵
건물마다 새파랗게 빛나는 면도 자국.
이것이 희망인가 절망일 건가 불빛 속에서
낮게낮게 솟아오르는 중얼거림
깨지 못하는 꿈은 꿈이 아니다. 미리 깨어 있는 꿈은 悲劇이다.
鋪道 위에 고딕으로 반사되는 발자국마다
살아 있다. 살아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희미한 음향을
듣는가 자네 아직도 꿈꾸며
우리는 그 긴 겨울의 通路를 비집고 걸어갔다.


- 『기형도 전집』 중에서


==========================================================================================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에 무심코 곁의 기형도 전집을 펼쳤다. 우울한 날에는 시가 더 잘 읽힌다. 부정확하고 비음섞인 발음으로 한 자 한 자 더듬는다. 

우리는 그 긴 겨울의 통로를 비집고 걸어갔다. 오늘은, 아니 어제는, 아니 내일도 우리는 없이 나는, 이 긴 겨울의 통로를 비집고 걸어간다. 

이번 겨울은 각별히 춥고 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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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opord
My Voice2011/01/10 20:57
오늘 생일입니다. 빠른이란 명분(?)으로 열심히 서른을 회피기동하려고 들지만, 잘 되진 않네요ㅎㅎ

요새 답문을 보낼 상황이 아니어서... 여기서라도 생일 축하해준 친구, 지인들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


추.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 님에게. 선물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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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opord
My Voice2011/01/02 23:29
유서를 썼다. 새삼 언제 죽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좀 무섭게 들리겠지만, 연말 결심은 2011년 첫날에 유서를 쓰자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둘째날에 쓰고 말았지만.

올해 마지막 날까지 내가 살아있다면, 나는 그 다음 새해 첫날 유서를 읽으며 괜히 비장한 척한 자신을 마음껏 비웃을 것이다. 인적 드문 공터에 가서 라이터 불로 유서를 태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 유서는 남은 분들의 것이다.

유서에서 잠깐 아룬다티 로이와 최승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둘 다 서른에 대해 이야기했던 걸로 기억했다. 아룬다티 로이에 대해서는 확실히 틀렸는데, 왜냐하면 그녀가 말한 나이-늙지도 젊지도 않은,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는-는 서른 하나였기 때문이다.

만약 올해를 넘겨서까지 살아있다면, 나는 다음해에도 유서를 쓸 것이다. 자신을 달래며 또 비웃으며. 다음해에도, 또 다음해에도. 십 년을 써도 겨우 열 편이다. 그러나 모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언제나 한 편이다. 그렇지 않다면 영수증과 다를 게 무어냐.

서른 즈음이다. 또래들은 이미 서른이 되었다. 나는 그 언저리에서 덩달아 서른이 된 기분이다. 이 걸쳐있는 시간이 문득 아름답다. 다른 서른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김광석을 들었다.

나의 시간이 흘러간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는 나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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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opord
My Voice2010/12/31 20:00
사실 오늘은 아파서 조퇴를 했습니다. 감기에 급체가 겹쳤더군요. 덕분에 2010년 마지막 날을 집에서 조용히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해 액땜한다 치고 있는데, 액땜에 고마워지네요ㅎㅎ

연말은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되는 때입니다. 좋았던 일 뿐만 아니라, 안 좋았던 일들에도 모두 고마워하면서 보내주는 것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leopord를 기억하고 찾아와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공부하면서 저의 길을 걸어가려고 합니다. 여기 오신 모든 분들 또한 자신의 길을 즐겁게 걸어가실 수 있길 바랍니다.

언젠가 지적인 지도가 필요하다는 푸념을 늘어놓은 적이 있습니다(leopord, <지도가 필요해>). 돌이켜 보면 2010년의 지도는 안토니오 그람시와 칼 폴라니였던 것 같습니다. 국제정치경제와 문화 연구라는, 또 결국 '권력'이라는 것을 분석하는 데 있어 제게 많은 도움과 영감을 준 두 사람에게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는 또 어떤 지적 스승 내지는 동료를 만날지 기대됩니다.

다시 한 번,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사진 속 토끼와 사슴처럼 서로 나누고 사랑하는 신유년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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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opord
My Voice2010/11/22 12:26
"무상급식→정의론→장하준 경제론 "신자유주의에 지쳐, 대안 정책 눈길"" (레디앙)

한편 장하준 현상을 바라보는 우파들의 시선도 관심사다. 공병호 공병호연구소장은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을 정도로, 사는 것이 팍팍한 시대”라며 “아마도 이런 부분을 장하준 교수가 아주 잘 공략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공 소장은 “장 교수의 글은 논리적으로 이론적으로 잘못된 부분들이 많아 독자들은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고 특히 별다른 공부 없이 그의 책을 접한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크게 미칠 것”이라며 “한국의 시대정신을 나아가야 할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이끄는데 장 교수의 글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공 소장은 이어 “주류 경제학자들이 장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 침묵하지 말고,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들을 좀 제시해 주었으면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아니, 한 때 『10년 후, 한국』이니 『10년 후, 세계』니 냈던 분이 이러시면 안 되죠-_-;; 혹시라도 나는 경영학 하는 사람이니 경제학에 문외한이다, 이러면 또 곤란한데-_-;; 명색이 경제학 박사 아니십니까-_-;;;

다른 주류경제학자들이 후려주면 옆에서 거들겠다, 뭐 그런 건가요-_-;; 너무 날로 드시려는 거 아닙니까.

솔까말 "별다른 공부 없이 책을 접한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기"로는 공병호 선생이 더하지 않았는지요. 경영학 노트, 뭐 그런 콘셉트로 책을 얼마나 팔아먹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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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opord
My Voice2010/11/22 03:03
생각해 보면 지금 '20대'니, '청년'이니 호명되는 사람들, 그러니까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세기말의 인간이다. 그야말로 20세기 말~21세기 초를 살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면 '88만원세대' 따위의 호명도 꽤나 상징적이다. 세기말에 태어나서 새로운 세기의 중추로 살아갈 사람들의 인생 스타트가 88만원세대라는 일갈인 셈.

이건 그나마 세대론을 긍정적으로 봐준 거다. 지금 와선 나도 88만원세대론이든 20대 개새끼론이든 세대론은 다 구라라고 생각. 세대간 갈등보다 계급간 갈등이 더 주목되고 있지 않느냔 말이지. 기본소득 주장도 이 관점에서 봐야하지 않을까. '청년 기본소득 운동'. 나도 그와 관련해 글도 썼고, 동의하는 내용이긴 하지만 세대론에 퐁당 빠져버리면 그냥 허당이 되지 않을까.

다시 세기말 얘기로 돌아와서. 한 세기가 바뀌었고, 세기의 전환을 상징하는 사건들도 꽤 많이 나타났다(구 소련 해체, 독일 통일, 동아시아 연쇄 금융 도미노와 IMF 구제금융, 9.11, 아프간·이라크 전쟁,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많기도 하다). 그런데 아직까지 세기말의 인간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건 19세기 말과는 달리, '사회 개혁가'의 부재를 의미하는 걸까? 이른바 '천재'가 있다고 해도, 대부분 '천재'들의 비극적인 최후를 학습했기 때문에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하고 안락한 삶을 선택하는 게 대부분인 걸까? 혹은 천재 자체가 부재하는 시대, 이른바 '집단 지성'의 시대를 상징하는 걸까?

어차피 이건 죄다 억측이다. 나 또한 세기말의 인간 중 하나로서, 20세기가 어떤 의미였는지 21세기가 10년 정도 지난 지금에야 어느 정도 보이지 않을까 추측할 뿐.


넵. 세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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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op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