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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an Vital2011/10/17 01:52

지젝이 주코티 공원에서 한 연설을 올린다. 15일 벌어진 Occupy Seoul에 대한 불만들―기존 운동의 관성을 답습한다던가 여의도와 월스트리트의 장소성이 서로 다르다는 것 등―에도 불구하고, 전지구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봉기'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인민이 종종 무언가를 갈망하지만 그것을 진짜로 원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이 갈망하는 것을 진짜로 원하게 되는 것을 무서워하지 마세요."

전지구적인 반자본투쟁은 '축제'인 동시에, 축제로 끝나서는 안 될 그 무엇이다. "우리가 그곳에 있을 때가 참 좋은 시절이었지"라고 회상하지 않는 것. 네트워크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것. '지금 여기'에서 변화하는 것.

Slavoj Zizek: "We Are The Awakening" - Occupy Wall Street Talk from The New Significance on Vimeo.



Slavoj Zizek: “We Are The Awakening” – Occupy Wall Street Talk

원   문 : https://www.thenewsignificance.com/2011/10/11/slavoj-zizek-we-are-the-awaking-occupy-wall-street-talk/ 
번역문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interojh&logNo=150121498948 

저들은 우리 모두를 패배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패배자들은 월스트리트에 앉아 있습니다. 그들은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우리의 돈으로 구제금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사회주의자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항상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가 있습니다. 저들은 우리가 사유재산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2008년 금융붕괴로, 열심히 벌어 만든 사유재산이 우리 모두가 여기서 몇 주 밤낮 동안 그것을 파괴하고자 하였던 것보다 더 많이 파괴되었습니다. 저들은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몽상가라고. 진정한 몽상가는 사물이 자기들이 해왔던 방식대로 무한정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치들입니다. 우리는 몽상가가 아닙니다. 우리는 악몽으로 변해버린 꿈에서 깨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것도 파괴하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는 체제가 어떻게 스스로 파괴되고 있는지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고전적인 만화의 장면을 압니다. 고양이는 절벽에 도달했지만, 걷기를 계속합니다. 밑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은 무시하고 말이죠. 고양이가 아래를 쳐다보고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바닥으로 떨어져버립니다. 이것이 우리가 여기서 하고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저기 월스트리트에 있는 친구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봐! 아래를 쳐다봐!"

2011년 4월 중반에, 중국 정부는 TV, 영화, 소설 등 대안적 현실 혹은 시간여행을 포함하는 이야기들을 모두 금지하였습니다. 이는 중국에서 나타나는 좋은 신호입니다. 그들 인민은 여전히 대안들에 대해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꿈꾸기를 금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반면] 이곳에서, 우리는 금지가 필요없습니다. 왜냐하면 지배체제는 우리가 꿈꿀 능력마저 억압해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항상 보는 영화들을 보십시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건 쉽습니다. 소행성이 모든 생명을 파괴하는 것 등등 말이죠. 그러나 여러분들은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제가 한 번 여러분들에게 공산주의 시절의 재미있고 오래된 농담을 들려드리죠. 한 사람이 동독에서 시베리아로 일하려 보내졌습니다. 그는 그의 편지가 검열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그의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암호를 만들자. 만약에 네가 나한테 받는 편지가 파란 잉크로 쓰여졌다면, 내가 말하는 것이 사실이다. 만약에 편지가 빨간 잉크로 쓰여졌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한달 후 그의 친구는 첫 편지를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파란색으로 쓰여 있었죠. 이 편지에 따르면, "여기에서 모든 게 훌륭합니다. 가게는 좋은 음식들로 채워져 있고, 영화극장은 서구에서 나오는 좋은 필름들을 보여줍니다. 아파트는 크고 호화스럽더군요. 그런데 여기서 살 수 없는 유일한 물건이 바로 빨간 잉크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았던 방식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자유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빨간 잉크, 즉 우리의 비자유를 또박또박 말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테러와의 전쟁 따위처럼 우리들이 자유에 대해 말하도록 배운 방식은 자유를 왜곡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여기서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모두에게 빨간 잉크를 나눠주고 있습니다.

한 가지 위험은 있습니다.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지진 마십시오. 우리는 여기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세요. 축제는 쉽게 합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 생활로 돌아가야만 하는 그 다음날입니다. 그러면 그때에도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저는 여러분들이 지금의 나날들을, 말하자면, "아! 우리는 젊었지. 그리고 그땐 참 아름다웠지"라고 기억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기본적 메시지가 "우리가 대안에 대해 생각하는 게 가능해졌다"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지배가 깨진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가능한 가장 좋은 세계에서 살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앞에는 기나긴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마주쳐야만 하는 진정 어려운 질문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원합니까? 어떤 사회조직이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유형의 지도자를 원합니까?

기억하십시오. 문제는 부패나 탐욕이 아닙니다. 문제는 체제 자체입니다. 그것이 당신들을 부패하게 강제합니다. 적들에 대해서만 깨닫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과정을 희석시키기 위해 이미 행동에 들어간 잘못된 친구들에 대해서도 깨닫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카페인 없는 커피, 알콜 없는 맥주, 지방 없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은 이 투쟁을 무해하고 도덕적인 저항으로 만들고자 시도할 것입니다. 이는 카페인 제거 과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콜라캔을 재활용하고, 자선을 위한 몇 달러를 주고, 스타벅스 카푸치노를 사 마시는 세계, 1%가 어린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는 제3세계에 가는 세계는 충분히 겪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분을 좋게 만들 뿐인 일은 충분합니다. 노동과 고문의 외주화 이후, 결혼업체들이 이제 우리의 사랑을 외주화하게 된 이후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가 우리의 정치적 업무 역시도 외주화되도록 허용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되돌려 받기를 원합니다.

공산주의가 1990년에 붕괴된 체제를 의미한다면, 우리는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오늘날 예전의 공산주의자들은 가장 효율적이고 가차없는 자본가들임을 기억하십시오. 오늘날 중국에서, 우리는 여러분들의 미국 자본주의보다 더 역동적인 자본주의를 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여러분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 여러분들이 민주주의에 반대하고 있다는 협박을 받는 걸 용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혼은 끝났습니다. 변화는 가능합니다.

우리는 오늘날 무엇을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까? 언론을 따라가 봅시다. 한편으로는 기술과 섹슈얼리티에서 모든 것이 가능해 보입니다. 여러분은 달을 여행할 수 있고, 생물유전학의 도움으로 불멸의 존재가 될 수도 있고, 동물과도 성교를 할 수 있습니다 등등. 그러나 사회와 경제의 영역을 보십시오. 여기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여러분들은 부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세금을 인상시키길 원합니다. 저들은 여러분들에게 그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는 게죠. 여러분들은 의료보장을 위해 더 많은 돈이 투여되길 원합니다만, 저들은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불가능해. 그건 전체주의 국가를 의미해." 여러분들에게 죽지 않을 수 있다고 약속하지만 의료보장을 위해서는 조금도 쓸 수 없다고 하는 세계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우선순위를 여기서 곧장 선정할 필요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더 높은 생활수준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생활수준을 원합니다. 우리가 공산주의자라고 할 때의 유일한 의미는 우리가 공동의 것(the commons)들을 신경쓴다는 것입니다. 자연에서 공동의 것. 지적 재산에 의해 사유화된 공동의 것. 생물유전학의 공동의 것. 이를 위해, 오직 이를 위해 우리는 싸워야만 합니다.

공산주의는 완전히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공공의 것에 대한 문제는 여전합니다. 저들은 여러분들에게 말하길, 여기에 있는 우리는 미국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진짜 미국인이라고 주장하는 보수적 근본주의자들은 이것 하나는 마음에 떠올려야 합니다. 기독교가 무엇인가? 그것은 신성한 정신입니다. 신성한 정신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서로를 위해 사랑으로 맺어진, 그리고 오직 이를 위해 자신들의 자유와 책임을 지니는 교인들의 평등주의적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성한 정신이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기 월스트리트에, 불경스러운 우상들을 숭상하는 이교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내심이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입니다. 내가 걱정하는 유일한 점은, 우리가 언젠가는 집에 갈 것이고, 그때가 되면 우리는 일년에 한 번 만나 맥주를 마시고 향수에 빠져 "우리가 그곳에 있을 때가 참 좋은 시절이었지"라고 회상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해주십시오. 우리는 인민이 종종 무언가를 갈망하지만, 그것을 진짜로 원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들이 갈망하는 것을 진짜로 원하게 되는 것을 무서워하지 마세요. 

매우 감사드립니다. 

번역 : 황정규

출처 : https://www.thenewsignificance.com/2011/10/11/slavoj-zizek-we-are-the-awaking-occupy-wall-street-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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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opord
Elan Vital2011/10/03 04:54

월스트리트 점거가 생각 외로(!) 길어지고 있다. '인민의,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정부란 위선이고 기만이라 믿어왔던 사람들에게―우리는 음모이론에 너무 친숙한 것은 아닐까?―미국 인민의 봉기는 낯설기 그지없다. 이 낯섦은 메이데이의 기원이 1886년 5월 3일 시카고에서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이었음을 새삼 상기하는 것 이상이라고 하겠다.

월스트리트 점거와 관련해서 참고할 만한 글들.

foog,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OccupyWallStreet 운동의 시위 동영상 하나>

우석훈, <월가 농성이 왜 중요한가?>

이정환, <영화 '인사이드 잡'이 말하는 경제 위기의 본질>

이 정도로 대략의 윤곽이나마 잡을 수 있을까? 홈페이지 가보는 게 제일 빠르긴 하지만, 여전히 '정리'된 뉴스를 바라는 건 중고딩 시절의 요약 학습의 악폐라고 해야 하려나... ㅡ.ㅡ;;

http://www.adbusters.org/campaigns/occupywallstreet 

아닌 게 아니라 이제는 시청앞 광장 말고 여의도 금융가나 한국은행 앞에서 시위를 해야 할 판 아닌가? 저축은행 부도에 대한 충격 이상의 것이 올텐데 말이다.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을 때 급진적인 행동이 나온다는 말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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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opord
Elan Vital2011/08/25 05:07

1. 사실상 오세훈의 불신임 투표나 다를 바 없었던 무상급식 투표를 재정 건전성 같은 '합리성'의 문제로 보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것은 나쁜 투표 같은 '도덕성'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이다. "나쁜 투표 하지 맙시다"에 대한 우파의 대답은 간단하다. "좋은 투표가 있으면 좋은 폭력도 있게?" 논리적이기까지 한 이 조롱은 한국의 좌파 혹은 '진보개혁세력'이 관성적으로 보여주는 도덕주의를 정확하게 반증한다('나쁜 투표'의 의미를 농업과 연관시킨 우석훈의 글은 참고할만 하다. "무상급식 논쟁, 또 다른 축은 '농업'이다"). 나쁜 투표가 "애들 밥그릇 빼앗는 건 나쁜 짓이다"는 직관에서 나온 말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2. 무상급식 투표와 관련된 기사들이 하나같이 공유하는 전제는 그 이슈의 정치적 파급력이다. 오세훈에게 있어, 그리고 그의 대항마를 자처하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에게 있어 이 이슈는 철저히 (좁은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이다. 오세훈이 33.3%라는 벽을 넘느냐 넘지 못하느냐에 오세훈 개인의 정치적 영향력에 현 정권의 향방까지 점쳤던 기사들은 무상급식이 투표 결과 어떻게 진행될 것이냐에 하등 관계없다는 걸 보여줬다. 실제로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25.7%의 투표율을 기록하며 개표조차 되지 못했고, 무상급식은 서울시교육청 원안으로 추진될 예정이다(물론 여전히 법적 공방이 남아 있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정치가 사회(적인 것)를 산출할 가능성에 대한 '국민적' 믿음이 정치 그 자체에 대한 환멸에도 불구하고 여전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매개는 역시 '국가'이다. 무상급식 논쟁이 국민적 이슈로 올라간 원인을 오세훈 개인의 정치적 야망에 한해 분석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여전히 '국민'은 국가가 무언가를 해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이에 대한 합의가 현재의 무상급식 논쟁에서 반복된 것일 뿐이다. 한나라당과 우파가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선동으로 무상복지 논쟁을 조기 점화하려고 하지만, 정작 복지 포퓰리즘에 기댔던 정부가 박정희/전두환 정부였다는 것을, 지금의 한국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독재자들이 만들어놓은 국민적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려야겠다.

또 한 가지는 정치사회―정치꾼들의 투견장으로 상상되곤 하는―에서 진보적 이슈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쪽은 의회가 아니라 행정, 그 중에서도 교육 행정이라는 것이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동안, '진보 교육감들'은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조례 등의 정책을 제시하고 이슈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만큼 다음 교육감 선거는 더욱 치열할 것인데, 당연히 우파는 강남 3구를 등에 업을 것이다.

3. 이런 양상들은 진보적인 정책이 국가기구를 경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여전히 좌파의 목표는 국가를 접수하는 것이어야 하는가? '혁명적 국가기구'―그런 게 존재할 수 있다면―의 창설만이 유일한 선택지일까? 우리가 끝내 대면하는 것은 여느 '공동체들'(아나코-생디칼리스트적인 협동조합이나 공장평의회 등)이 아니라 국가라는 추상적이면서 물질적인 실재라는 게 씁쓸하다(물론 부분적으로 무상급식과 지역농업은 서로 포개져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4. 한편 이번 투표는 계급투표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추정을 더욱 강하게 하는 것 같다. 일종의 쐐기로서 1997년을 상정할 수 있다면, IMF 구제금융선언 이후는 강남 3구/부동산 부호라는 지역/계층이 꾸준히 반동성을 드러낸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른 구의 투표율이 기록적으로 낮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우파 지지층의 결속력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하지만 계급투표가 어디까지나 반동주의자reactionaries에 의해 표면화된다는 것에서, 보수세력과 개혁세력 공히 '국민'의 이름을 내걸고 있다는 것에서, 계급투표는 대항계급의 형성과는 거리가 멀다. 계급투표는 계급 형성의 결과일 뿐이다. 계급투표는 그런 점에서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닐지 모른다. 주권을 보유한 '시민'도, 변혁을 담지하는 '계급'도, 행정적 관리대상인 '주민'도 모두 국가의 담지자인 '국민'을 경유해야만 한다는 역설 속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둘러싼 역학관계 뒤에 여전히 '국가'라는 거대한 이름이 도사리고 있음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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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opord
Elan Vital2011/06/10 18:25

1. 언어는 사고를 담는 그릇인가, 아닌가. 차라리 언어는 곧 사고라고 해야 할 게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 언어를 벼리기엔 너무 많은 정보와 사건이 발생하고 소멸해, 이들을 하나하나 붙잡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이 뒷북이고, 그런 점에서 모든 글쓰기는 뒷북일 것이다.

2. 두리반의 성공을 함께 기뻐하는 입장에서, 두리반이 도시 재개발 문제에 대한 아무런 해답도 제공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거슬리지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권리금을 매개로 한 입주와 지구 단위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두리반이라는 사례를 일반화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두리반 투쟁이 다른 재개발 지역에 줄 수 있는 메시지는 '잉여들'과 함께 싸우라는 것 뿐인가? 만약 그 외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면, 두리반 투쟁에 함께 한 사람들은 두리반을 '정당화'할 필요가 있다.

3. 여기서 정당화를 '위선'이나 '합리화'로 재단하지는 말아야 한다. 지난 연대 청소 노동자 파업과 지금 연대 사회과학대 이전을 둘러싼 학내 투쟁에서 유독 눈에 띄는 구호는 '정당한 투쟁'이었다. 왜 항상 투쟁은 정당화되어야 하는가? 어떤 주장이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는 물론, 이해관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선험적인 정당성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선험적인 정당성을 주장하더라도(ex: '순수하고 진정성 있는 투쟁') 대부분 헌법이나 인권 같은 상위 개념을 끌어오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두리반 투쟁이 정당하다면 그 정당성의 토대와 한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두리반을 매개로 한 도시 재개발 반대 블록을 형성할 수 있다.

4. 비록 피상적인 관찰이지만, 두리반 투쟁에 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 정당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두리반은 특수하고 국지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 특수하고 국지적인 현상이 도시 재개발 사업이라는 사건을 어떻게 상징할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하는데, 그 설명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5. 그러나 나는 그런 물음을 던지는 방식과 태도에 거듭 문제제기를 해야겠다. 같은 말이라도 위선적으로 하느냐, 위악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차원이 아니다. 지금 '싸가지'가 있고 없고를 따지겠다는 것이 아니다. 두리반에 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이 과연 얼마만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가를 따지겠다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런 이성과 합리를 담론의 목적으로 잡는 태도의 당파성을 묻겠다는 것이다.

6. 자신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포지션에 놓았을 때, 그리고 최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추구할 때, 그는 필연적으로 사회의 지배적인 언어를 표상한다. 이성과 합리로 감성과 정념을 다스린다는 이분법은, 이성적인 엘리트가 비이성적인 대중을 다스린다는 은유를 포함한다(남성이 여성을, 백인이 흑인과 황인을,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무엇보다 도시 재개발 사업에 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이란 종종 법률의 합리성과 인간 행위의 이기심이라는 긴장관계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걸 떠올려야 한다. 모든 것을 이성과 법대로 설명하려는 태도에서 나오는 질문이 아무리 예리하고 적확하더라도, 그 질문이 도출할 결론은 지극히 체제편향적일 수밖에 없다. 말하는 방식이 내용을 결정짓는 것이다.

7. 그런 점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답변(혹은 대책)을 요구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문제다. 이것은 타자는 어리석고 자신은 현명하다는 지적 오만일 뿐 아니라("나를 설득해 봐"라는 식의), 도시 재개발 사업을 둘러싼 다양한 갈등을 개인의 이기심 문제로 환원시켜버리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도시 재개발 문제는 무엇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문제,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도시의 외곽으로 계속 물러날 수밖에 없는 빈민의 문제이다. 여기서 어느 정도까지를 빈민으로 볼 수 있느냐, 한국은 자영업자 비율이 유례없지 않느냐는 비판이 가능하다. 또, 권리금 뿐만 아니라 부동산을 매개로 자산소득 상승을 기대하던 계급, 계층이 강남 땅부자만은 아니라는 인식도 빼놓을 수 없다. '모두'가 땅놀음에 혼을 팔지 않았냐는 얘기다.

8. 하지만 모든 것을 개개인의 탐욕으로 돌리거나, '모두'의 책임이라는 식으로 확대하는 것은 논점을 흐리는 일이다. 사건의 디테일을 보자는 얘기를 지배적인 언어에 담을 때, 도시 재개발 사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오히려 막아버리고 만다. 여기서 나는 이른바 진보 운동의 맹점을 짚는 방법론으로 지배적인 언어를 끌어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생각한다. 왜 그는 자신의 계급적, 계층적 입장에서 보지 않고, '이성'과 '객관'의 눈으로 '조망'하려고 하는가? 그것은 '도덕'과 '윤리' 위에 서는 것만큼이나 기만적이지 않은가? 입장을 바꿔 보는 것과 '모든 것'을 보겠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태도가 아닌가?

9. 다시 한 번, 두리반 투쟁에 얽힌 사람들의 감정과 욕망, 기쁨과 슬픔을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감상적이 되자는 것이 아니다. 감성을 비이성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배제해버리는 담론에서 빠져나와 현장의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도시 안에서 살아간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도시'에 대한 보다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웹문서나 공문서 밖의 세계를 호흡할 필요 말이다.

10. 그럴 때에야 두리반과 홍대 앞 상가의 지구 단위 개발 문제, 그리고 더 나아가 서울의 도시 재개발 정책과 이로 인해 '빼앗긴 자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바로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말이다. 그래야 안종녀, 유채림 부부를 이 시대의 필레몬과 바우키스로 보는 데서 나아가 도시 재개발 반대 블록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사진 출처 : 칼라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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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opord
Elan Vital2011/06/07 19:55
"다시 녹색사회당으로 가자"

"사회민주당으로 당명 바꾸자"

진보신당이 사회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꾸어야 한다는 글을 올린 게 작년 이맘 때쯤이다. 당 내외의 역학관계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시피한 상태였기에, 그 글은 내 어둠을 밝힐 횃불은 커녕 촛불조차 되지 못했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내 문제의식은 같다.

중요한 것은 "새롭다"는 말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정당이 한국 사회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 내가 사회민주주의와 사민당, 보편적 복지 국가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1970년대 이전의 유럽으로 돌아가자는 데 불과한, 다분히 '보수적'이고 더러는 '반동적'인 의견이었다. 이른바 '복지파'나 '통합파'의 입장에서 해석될 여지도 다분했다. 무엇보다 복지국가전략은 노동-자본 간의 '사회적 합의'가 가능했던 조건 위에 서 있었다는 걸 생각해 볼 때, 또 유럽이 언제나 '제3세계'의 노동력과 자연을 흡입함으로써 풍요를 누려왔다는 걸 떠올려 볼 때, 지금은 너무나 자명한 전제로 공유되고 있는 복지국가론이 그렇게 간단히 헤게모니를 쥐었다고 단정지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김현우, 장석준 등의 분석이 의미 있을 게다. 그들은 (노동) 계급의 구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기존 복지국가 담론만으로는 빈곤과 생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나아가 지금의 '진보양당' 통합에 휘둘리지 말고 통합진보정당을 더욱 발전시키든, 혹은 통합에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이 새로운 정당을 창조하든 독자적인 노선을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 마디로, 녹색사회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의식에 적극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는 의문이 있다. "과연 좌파는 혹은 사회주의자는 적녹블록을 만들 수 있을까?" 물론 모든 정치적 선언은 '지금 있는 현실'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현실'을 만들어내려는 행위다. 하지만 (역사적) 블록은 여전히 블랙박스에 남겨둔 채, 녹색사회당의 창당을 이야기하는 것은 나이브하지 않은가? 김현우는 진보신당의 강령과 정치적 실천을 예로 들며, 진보신당은 오래 전부터 녹색사회당의 전신이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혹은 前 전진 그룹?)가 양당 통합을 주어진 조건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한계(약점이나 단점의 의미가 아니다)를 안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적녹블록을 생태운동이나 여성운동에서 찾는다 하더라도, "녹색이 곧 적색이다"는 구호만으로는 동맹을 구축할 수 없다. '초록사회당'은 시민단체 간의 연결을 넘어서는 조직들을 구축할 수 있을까? 조직을 구축하더라도 적녹의 가치와 지역 주민의 이해관계를 연결시킬 수 있을까? 사회주의자들은 여전히 생태주의와 여성주의 등을 '부문 운동'으로 간주하고 있지는 않은가? 비정규직, 청년/노인, 여성, 성소수자라는 다양한 계급, 젠더 정체성이 '노동자'라는 이름 위에 포개져 있는 현실에서, 대공장 노조를 견제, 견인하는 노동 조직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까?
 
여러 의문들이 고개를 드는 것은 그만큼 초록사회당―'녹색사회당'보다는 과거 '초록당'을 연상시키는 '초록사회당'이 더 낫지 않은가?―이라는 이름이 갖는 매력과 시대적 의미 때문일 게다. 진보양당 통합이 논란에 휩싸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만큼 소모적이다. 깃발은 간데 없고 동지만 넘쳐나는 때, 나는 초록사회당이라는 깃발이 그나마 진보정당이 한국 사회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제시해 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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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an Vital2011/03/22 17:47

장면 하나. 지하철역을 오가는 중 TV 모니터에서 광고 하나를 보았다. “독서기록 해야지. 봉사활동 해야지. 특별활동 챙겨야지. 어머니회 가야지. 급식당번 해야지. 참관수업 몇 시더라. 초등 엄마들은 모두 수퍼우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 제일 중요한 아이 학교 공부. 제발 좀 도와줘요.” 이 광고의 결론은 학습지가 엄마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초등학생 엄마들은 수퍼우먼이 된 것일까. 아니, 꼭 수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엄마들은 수퍼우먼이 되려고 할 것이다. 왜냐고? 그게 아이를 위한 것일 테니까.

장면 둘. 영화 <블랙 스완>에서, 엄마는 니나를 사랑스런 소녀로 키워왔다. 발레리나였던 그녀는 자신의 딸이 일류 발레리나가 되길 바랐다. 반면 딸을 자유분방한―아마도 엄마의 입장에서는 난잡하기 짝이 없었을―세계와 분리하고자 하는 이중성도 보인다. 때문에 테크니션 니나가 숙련도 이상의 연기를 해내는 한 명의 발레리나로 성장하는 데 엄마가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성장도 성공도 ‘내 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엄마의 강박은 니나의 욕망과 충돌하고 만다. 아마도 엄마는 항변했을 것이다. “모든 게 다 너를 위해서야!” 적어도 그건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게 아이를 위한 것이었을 테니까.

‘매니저 맘’이니 ‘헬리콥터 맘’이니 하는 말이 익숙한 요즘이다. 아이들의 모든 것―입시에서부터 일상생활까지―이 엄마의 관리 하에 있는 시대다. 교육이 여전히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인식되는 한국에서, 갈수록 과열되는 입시 경쟁은 더 많은 정보와 자본을 가진 쪽에 유리하게끔 진행되고 있다. 사교육을 비롯해 엄마가 ‘개입’할 여지가 늘어난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빠는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오고, 엄마는 집 안에서 아이들을 돌본다는 전형적인 구도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 것만 같다.

경제(經濟)로 번역되는 외래어 이코노미economy의 어원은 그리스어 오이코노미oeconomi다. 오이코노미는 ‘가정관리’ 쯤으로 번역된다. 가정관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경제는 가정에 대한 모든 것을 의미했다. 밥을 짓는 것에서부터 노예를 부리고 아이를 기르며 살림을 꾸리는 것 등등이 바로 오이코노미였다. 당시 오이코노미의 주인은 곧 그 집안의 남성, 즉 가부장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주인은 이른바 ‘안사람’, 즉 어머니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전근대 사회의 어머니에게는 오이코노미의 실행자로서 역할도 포함되었다.

그 점에서는 한국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것은 언제나 안사람의 몫이었다. 조선 시대를 지나 근대화된 오늘날에도 그 역할에는 큰 변함이 없는 것만 같다. 하지만 엄마의 역할은 현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후기 근대post-modern에 들어와서 좀 더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앞서 말했듯이 엄마(들)는 아이들의 삶을 철저하게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럼에 따라 ‘오이코노미’의 세계 역시 확장되었다. 그렇다면 왜 엄마들의 ‘오이코노미’는 확장된 것일까? 그 이유에는 IMF 구제금융을 겪으면서 계급 격차가 심화되고 그에 따라 신분상승의 기회가 좁혀짐에 따른 위기감이 작용한 듯하다. 비록 ‘엄마들’이라고 뭉뚱그려지지만, 이 엄마들의 계급적․지역적 기반이 중산층․서울(수도권)이라는 점을 떠올려보자면, 이 현상은 보다 구조적인 것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그 위기감이 아이들에게 비춰질 때, 지금의 ‘엄친딸’, ‘엄친아’가 나온다. 사람들이 김연아의 화려한 스핀에 환호를 지를 때, 그 이면에는 김연아를 세계 최고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키워낸 엄마에 대한 감탄 역시 숨어 있다. 김연아 뿐만 아니라, 하버드나 스탠퍼드에 입학해 우수한 학생으로 인정받는 아이들의 책에는 언제나 ‘엄마’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많은 엄마들이 이 ‘대단한 엄마’들을 보며 부러워하고, 자신의 아이도 김연아와 하버드생이 될 수 있도록 관리에 더욱 만전을 기한다. 가정이 오이코노미를 넘어 하나의 매니지먼트 기업이 되어가는 것만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들이 더욱 더 열심히 아이들을 돌봐주고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해야 한다. 이렇게 또 다시, 새로운 ‘주식회사 수퍼우먼 엄마’가 설립된다.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엄마들이 수퍼우먼일 수 있을까? 투입 대비 산출로 보았을 때, 지금의 아이들에게 매길 수 있는 상품으로서의 등급은 그다지 높지 않다. 해외 유학을 다녀와서 할 수 있는 일은 영어 학원 강사이고, 취업의 문은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너무 많은 것들이 기업화된 한국에서, 기업화된 가정이 재생산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생애 재생산이 필수적이다. 많은 '어른들'이 개탄하는, ‘제 생각도 개김성도 없는 요즘 아이들’은 어쩌면 영화 속 니나 같은지도 모른다. ‘주식회사 수퍼우먼 엄마’는 ‘니나들’의 반항으로 무너질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피를 가득 흘리며 “난 완벽했어”라고 중얼거리는 니나의 모습에서, 엄마의 욕망을 자신에게 고스란히 투사한 요즘 아이들의 모습밖엔 보지 못했다. ‘주식회사 수퍼우먼 엄마’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예감만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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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an Vital2011/02/12 01:38
<"우리는 원래 미국 민주당보다 왼쪽"> (시사IN)

여론조사 전문가 출신으로 손학규 대표가 영입한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이철희 부위원장은 이 딜레마를 거론하며 “그래서 복지 정치가 복지 정책보다 먼저다”라고 말했다. 무슨 의미일까. “복지 제도에서 이익을 얻는 지지 블록을 다수파로 구축하는 것이 예산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보다 먼저다. 이를테면 친환경 무상급식은 학부모 외에도 유기농 농산물을 다루는 농민과 유통업자를 지지 블록으로 묶어낸다. 의료에서도 보육에서도 이런 ‘이익을 얻는’ 블록을 형성해 다수 연합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지금 우리는 노동자의 90%와 중소 자영업자 전체가 조직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 복지를 매개로 해서, 이 층을 지지 블록으로 묶어내자는 거다. 이 지지 블록의 힘을 업고 국가 재정을 재구성해야 한다. 현재 재정 구조 내에서만 하자는 것도, 섣불리 증세부터 하자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인터뷰에서 그람시를 이야기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철희 부위원장이 말하는 '복지 블록'은 꼭 역사적 블록의 재생산이다. 다만 계급적 이익이 아닌 계층적·산업적 이익에 대한 접근이기 때문에 보다 보수적인 시도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계급 없는 대중'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복지 블록이라는 매개는 무척 유혹적이다. 

이는 사실상 ‘복지 전선’으로 한국 정치의 갈등 구조를 대체하자는 구상이다. 흔히 말하는 정계 개편보다도 한 단위가 더 큰, 정치의 핵심 갈등 구조를 개편하자는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두드러진 갈등축인 ‘지역 구도’에서 이익을 얻는 세력의 반발은 사실상 필연이다. 민주당에서는 호남에 뿌리를 둔 정치인들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얘기다.

'복지 블록'을 무기로 전선을 새로 짜겠다는 전략은 좌파 및 자유주의 의제를 모두 민주당 안으로 모아 양당제를 뿌리내리겠다는 뜻이기도 하다(즉, 진보 정당 말려 죽이겠다는 소리). 개혁 성향의 민주당 지지자들이야 더 바랄 것 없겠다. 하지만 기자도 지적하다시피 민주당 실세인 호남 유지들과 이들의 지지를 받는 호남 출신 정치인들과 빚을 마찰이 거듭 장애가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호남에서 민주당을 위협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학계에서도 진보·보수 양당제의 출현 가능성을 논한다. 정치 전문 출판사 후마니타스 박상훈 대표(정치학 박사)는 “정당 이론에서 정당의 개수는 ‘그 사회의 갈등축+1개’로 본다. 즉, 갈등축이 하나면 양당제가, 갈등축이 두 개 이상이면 다당제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 상충하는 이해관계 개수만큼 그를 대변하는 정당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갈등축은 갈수록 분배 문제 하나로 모이고 있다. 기존 진보 정당에는 안된 얘기지만, 장기적으로 한국 정치의 골격은 다당제보다는 양당제로 갈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망했다.

정치평론은 평론가에 의해 수행되는 현실분석인 동시에, 그가 현실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이상을 반영한다. 박상훈은 민주당이 '복지 전쟁'의 실질적인 수혜자가 될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당내 반동을 얼마만큼 뿌리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실패할 경우, 다른 보수 정당과 자유주의 정당, 좌파 정당이 반대급부를 비례적으로 가져갈 것이다(물론 비율의 편차는 크겠지만). 여기서 민주당의 '좌클릭'에 대한 시사IN의 기대와는 거리를 두고 기사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여전히 한국 진보·좌파 정당의 지지도가 민주당의 대중적 지지에 비례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역사적 블록' 형성 시도는 좌파 정당이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즉, 좌파 정당은 역사적 블록을 형성할 수 있을 때에야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르주아 정치에 대한 잡설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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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an Vital2011/02/08 23:41
트위터로, 한RSS로 최고은 작가의 죽음을 접했다. 그의 나이 서른 두 살.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 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라는 말에 내 마음도 쓰리다. 빈곤이라는 점에서 그와 나는 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 때 찍은 단편영화로 주목받던 한 작가는 차가운 방 안에서 혼자 죽어갔다. 설도 되기 전에. 그렇게.

나는 그의 죽음이 슬픈 한편, 화가 난다. 사회적 타살이라는 말도 좋고, 재원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는 마음도 좋다. 하지만 나는 화가 났다. 화를 내야 한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그는 '문화 산업'이라는 맷돌, 더 크게는 자본주의라는 '사탄의 맷돌'에 갈려버렸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작가로 산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소설이든 영화든 만화든 음악이든. 저임금에 불안정한 고용이 일상적인 동네다. 그나마 받는 임금도 떼어먹히기 일쑤다. 거기다 선후배를 강조하는 문화 속에서 '후배들'이 제 목소리를 못내는 구조는 "열심히 하면 나도 성공할 수 있어"라는 희망고문과 함께 현재의(그리고 미래의) 창작자들을 끊임없이 갈아버리는 맷돌이다.

나는 청소년보호법과 만화대여점에 반대하는 운동을 했다. 운동이 소멸하고 나서도 여전히 아쉬운 점은, 작가들이 좀 더 급진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던 데 있다. 그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출판사 등과 싸우지 못했다. 당시 한 작가는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땐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그러나 그래선 안 되었다. 왜 작품으로 말하냐며 도망치냐고, 당신 밥그릇은 당신이 책임지고 지켜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어야 했다(그 점에서 '전사'는 박무직 하나뿐이었다. 몇 년 전 나는 박무직의 에로만화계 진출을 비난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지나쳤다. 그의 '고립'은 자초한 부분도 있으나, 작가들과 운동가들은 그를 홀로 내버려두면 안 되었다).

물론 작가의 고립은 자초한 것뿐만 아니라 강요된 것이기도 하다. 저 말도 만화판에서 그나마 깨어있다는 작가가 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권위주의 문화에 절어있는 '보통 작가들'은 도무지 어떻단 말인가.

나는 작가들이 사회 참여에 전혀 무관심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악! 법이라고?』를 내는 등 정권비판에 서슴지 않으면서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작가들을 존경한다. 하지만 그들의 투쟁은 정치적인 이슈에서 맴돌 뿐이고, 경제 민주화 및 일상의 민주화에는 여전히 취약하다(이들은 '민주개혁세력'의 딜레마를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

그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몇 년 전 미국 드라마 작가들의 파업이었다. <CSI>, <히어로즈> 등의 제작을 중단시키며 헐리우드 전체를 뒤집어 놓았던 그 투쟁은 우리 작가들에게 미국 작가들의 힘을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물론 매체에 대한 영향력 측면ㅡ미국 작가들은 헐리우드라는 전지구적인 '중심'에 기반을 두고 있다ㅡ에서 미국과 한국의 작가들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에겐 '길드'가 있었다. 실질적으로는 노동조합이다. 연대만이 살 길인데, 우리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아이디어는 capcold, <2010베스트: capcold 세계만화대상 발표>를 참고하기 바란다).

한국의 작가들은 고립이 곧 죽음을 의미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동시에, 선후배 사이의 권위주의 문화와 제작자-창작자 사이의 비대칭적인 권력 관계 속에서 조합 하나 만들기도 요원한 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 그 구조를 어떻게 깰 수 있을까. 해답도 요원하기 그지없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그저 연대다. 어떤 사람(들)은 좌빨들이 이슈를 가지고 또 투쟁하자고 꾀어낸다며 비난할지 모른다. 그러나 묻고 싶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싸우지 않고 배길 수 있느냐고. 분노하지 않고 배길 수 있느냐고. 그 어느 것도 거저 얻어지지 않았다는 걸 떠올려야 한다. 

왜 우리는 길드를 갖지 못할까? 이 의문을 해소하지 못하는 한, 그리고 계속해서 작가와 독자(관객) 대중이 분노하지 않는 한, 작가들의 고립된 죽음은 거듭될 것이다.

故 최고은 작가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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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an Vital2011/02/08 01:32
<이탈리아 좌파 몰락 원인, 우리는?> (레디앙)

민주노총 김태현 정책실장의 글이다. 굴지의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의 노동 탄압이 어떤 배경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그에 대한 이탈리아 노동 계급의 저항은 어떤지에 대한 글을 먼저 읽는 걸 권한다(레디앙, <이탈리아판 노조파괴 맞선 금속 총파업>).

본문을 읽고 나니 '그람시 이후'의 이탈리아 좌파 정치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2차 대전 이후 이탈리아에서 깊게 뿌리내렸던 공산당은 어째서 몰락한 것일까? 그리고 현재의 반동 국면(베를루스코니의 극우파 정부)에 대한 노동 계급과 좌파의 대응이 왜 지리멸렬한 것일까? 이 글은 현장에 대한 크로키다, 그래서 더욱 섬세하고 세밀한 리포트가 요구된다.

구 소련 붕괴 이후 좌파의 몰락은 돌이킬 수 없는 전지구적 추세인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와 아랍의 혁명 국면, 그리고 만성적인 계급 분열은 좌파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우리가 이탈리아 좌파의 몰락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2012년 총선/대선이라는 '부르주아 정치 일정'(이상한모자의 표현에 따르자면)을 앞두고 선거연합에 몰두하고 있는 지금, 좌파의 생존 전략은 과연 무엇일까?

덧. 글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이탈리아 공산당을 이끌었고 오랫동안 그람시가 그의 그늘에 있었다는 보르디가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급진주의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공산주의 투쟁'은, 그러나 너무 고립되어 있는 듯보인다. 우리의 경우로 보자면,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같은 느낌이랄까(그래도 이탈리아는 구체적인 '조직'이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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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좌파 몰락 원인, 우리는?
[현장에서] 시장에 굴복, 무원칙 선거연합, 분열주의 등

유럽에서 좌파정당은 물리력만이 아니라 헤게모니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그람시의 고국, 4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서구에서 가장 대중적인 지지도와 영향력을 가진 공산당이 있었던 나라, 이탈리아에서 지금 좌파는 의회에 한 석도 없다.

나의 의문

이탈리아의 노동조합을 방문하면서, 나는 이들이 정권과 자본의 탄압과 노동자 투쟁을 얘기하면 할수록, 그런데 정치권은 왜 제대로 노동자를 지원하거나 함께 하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에 휩싸이면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화려했던 이탈리아 공산당의 역사는 어디 가고 지금 이렇게 되었는가?

이명박만큼, 아니 이명박보다 더 화려한 베를루스코니의 반노조 활동, 그 수많은 섹스 스캔들에도 꿋꿋이 버텨내는 '문제적 총리' 못지 않게, 내게 더 '문제적'인 것은 좌파정치의 몰락이었다.

90년대 초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더불어 이탈리아 공산당은 당명을 좌파민주당으로 바꾼 이후, 과거의 '낡은 유산'을 벗어던지고 시장 이데올로기를 전면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남은 좌파는 재건공산당의 깃발을 내걸었지만 지지층은 소수로 전락하고 그나마도 분열로 더욱 소수화됐다.

여기에 검찰의 '깨끗한 손' 운동으로 검은 정치자금 내막이 드러나면서, 수십 년간 정권을 장악했던 기민당도 몰락하고 만다. 과거의 낡은 정당들이 송두리째 몰락하는 가운데 혜성같이 등장한 인물이 방송 재벌 베를루스코니다. 방송을 장악한 그의 선전술과 우파선거연합을 바탕으로 그는 무려 3차례나 수상을 역임하는 쾌거(?)를 이룬다.

소수화된 좌파민주당은 과거의 정적이었던 기민당계까지 끌어들여 또다시 민주당으로 변신하여 한 차례 선거에 승리하지만, 선거연합의 내부 분열로 정권을 내놓아야 했다. 결국 2008년 선거에서 민주당은 좌파정당과 연합을 절대 안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했으며, 좌파연합은 3%밖에 되지 않은 지지율로 의회에서는 전멸하고 만다. 특히 선거제도가 비례대표제에서 다수득표제로 바뀌면서 소수정당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고, 이에 비해 베를루스코니는 우파연합을 통해 의석 과반수를 얻었다.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이야기

‘붉은 볼로냐’라는 별칭까지 있는 볼로냐 지방의 노동총동맹 간부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볼로냐 시장은 민주당 당원이지만, 좋은 친구다. 그러나 다수 민주당 당원들은 지금 노동자 투쟁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너무나 시장친화적이다. 아울러 베를루스코니는 복지, 교육 등의 예산을 깎아버려 지방정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그리 많지 않다.”

금속노조 간부도 시니컬하게 말한다. 노동권을 무시하고 헌법과 노동법을 무시하는 자동차 회사 피아트 사측에 대해서 민주당 내에서는 3가지 입장이 있다고. “사장에게 레드 카펫을 깔아주어야 한다는 입장, 노동자 편을 들어야 한다는 입장, 고용이 불안하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입장”이 그것이다.

토리노에서 만난 피아트 공장 대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낡은 재건공산당은 제대로 현장에 뿌리박지 못하고 있다. 우리 피아트 공장에도 당원이 한 사람도 없다.” 대신 그 친구는 '공산주의 투쟁'이라는 정당의 당원이라며 자신을 소개한다. 자신들은 과거 스탈린주의에 대항하였던 보르디가 등이 이끌어왔던 정당이라고.

보르디가는 20년대 코민테른 창립 때 레닌에게도 대항하여 의회주의 무용론을 펼쳤던 좌파계열의 맹장이며, 그람시도 한때 그 그늘 아래 있었던 인물로서 나에게는 기억되는 인물이다. 사라져간 인물로 알았던 그가 이끈 정당이 계속 활동 중이라니 놀랍기도 했다.

이 당은 현장에 뿌리박는 것을 중시하여 자신들은 토리노 피아트 공장에만도 50명의 당원이 있고, 주요 공장지대에 당원이 집중되어 있으며, 매월 기관지를 발간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집회 때도 이들은 이 기관지를 판매하고 있었다.

타산지석

내게 보여준 최신호 기관지 내용을 보니 이탈리아 재벌 분석, 유럽정치, 미국의 양극화와 선거, 인도, 남북한 긴장 관계 등의 이슈들이 눈에 띤다. 점심은 사주면서도 기관지 구입 1유로를 달라고 한다. 이들은 레닌주의를 주창하지만 보르디가 류의 의회무용론에 가깝고 소수화된 상황에 자족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주류 좌파의 시장에 대한 굴복과 무원칙한 선거연합으로 인한 정체성 위기, 비주류 좌파의 낡은 레퍼토리와 분열주의가 이탈리아 좌파정치의 총체적 몰락을 가져왔다는 것이, 본격적인 평가라기에는 너무 거친, 현장에서 느낀 나의 소회이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김태현 / 민주노총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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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an Vital2010/11/12 03:09
사실 이 얘긴 시사인 제165호(2010년 11월 13일자)에서 박권일(『88만원세대』 공저자)이 다 얘기해서 별로 할 말이 없긴 하다. 요컨대 G20은 비민주적이고(왜 G7도 아니고 G10도 아니고 G20인지 그에 대한 민주적 정당성이 제로), 실효성이 없으며(금융거래세, 은행세 등을 도입할 의지도 제로), 무엇보다 기만적(금융위기를 초래한 국가의 수장들이 모였는데도 금융위기 해소에 대한 책임감도 제로)이라는 얘기다(두 번째 부분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시사인 기사를 봐주시길). 그러나 적어도 내가 G20에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이 세 가지에 있다. 

그런데 G20에 반대하는 이유를 들기 전에 박권일이 딱 집은 게 하나 있다. 그러니까 정부의 국격 드립이나 과도한 시민의식 강요에 대한 풍자는 있어도, G20 자체에 대한 비판 같은 건 도통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아주 적절한 지적이다. 언제나 그랬듯, 이명박 개새끼, 라고 하는 건 참 쉽다. 국격 그까짓거 뭐라고 난리야, 불평하는 것도 쉽다. 그런데 풍자하고 조롱하는 게 끝이다. 이게 전국민적 카타르시스의 고양(혹은 오르가즘?)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마도 이런 말들만큼 권력에게 안전한 말은 없을 거다. 물론 억압적인 시대일수록 풍자가 발달하는 건 맞다. 과격한(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선전보다 풍자와 해학이 더 가볍고 즐거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풍자 안에서 너무나 쉽게 안주하는 건 아닌가. 게다가 조롱에는 언제나 조롱으로 맞상대할 뿐이다. 경호특별법을 비롯한 정부의 과잉반응에 대한 비난 역시 세계 정상들 모이는데 이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냐는 수준의 답변만 돌아올 뿐이지 않나.

솔직히 이건 이른바 좌파(라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들)가 G20을 얼마나 나이브하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반증이라고 생각한다(G20 반대 시위에서 '애국심' 운운하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아주 그냥 속터지겠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도 그것과 별 다를 게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G20 정상회의가 당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당신의 목소리도 전달되지 않고, 아무 것도 바꿀 의지가 없는 채 그저 지금의 '세계 질서'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국가 마케팅 하고 있는 판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게다가 자국은 양적완화 정책(간단히 말해서, 헬리콥터로 돈 뿌리는 일)을 추진하면서도 다른 나라들에는 시장 결정적 환율제도(역시 간단히 말해서, 환율을 달러의 수요와 공급에 그냥 맡기라는 것. 아니, 잠깐. 달러의 공급은 Fed가 하잖아?)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오바마는 얼마나 기만적인가. 한 마디로, 환율전쟁은 끝나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토빈세를 비롯한 금융거래세와 은행세 의제(링크한 기사에서는 한국의 정책, 그것도 올해 6월의 정보만 제시되어 있다)는 그저 들러리가 되었을 뿐이다. 환율-기축통화 문제와 투기불로소득 환수 및 부자 증세를 이야기하지 않는 G20이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부자한테 뭐 뜯어내지 못해 왜 그리도 안달이냐는 사람들도 있겠다. 도무지, 자칭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사람들이 '노블'로서 책임조차 지지 않겠다는 행보를 비판하지 않는다니. 이건 우파적으로 봐도 넌센스다)? 또, 장하준이 '사악한 삼총사'라고 부르는 IMF, 세계은행, WTO에 대한 개혁도 얘기하지 않고 무슨 개도국 성장 견인 운운한단 말인가?

백보 양보해서 G20 서울 회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면, 잘해야 G20 토론토 회의에서 합의된 '재정 건전성' 유지일 것이다. 이 재정 건전성 유지란 결국, 긴축재정을 통해 국가 부채를 줄이겠다는 건데 이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업, 가계 소비 하락, 기업 투자 감소라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을 더욱 고착화시키겠다는 얘기다. 지금은 각국이 전지구적 규모의 재정지출을 통해 겨우 금융위기를 봉합한 상황이다. 하지만 세계 경제의 더블딥 가능성이 여전한 상태에서 금융에 손대지 않고 재정 건전성만 얘기하는 지금 같은 상황은 더 큰 위기만 불러올 것이다. 한술 더 떠서 한국 정부는 비즈니스 서밋이 서울 회의 이후 정례화될 거라며 이 또한 G20 서울의 성과라고 자축한다. 국가 못지 않게 금융위기와 고용 문제에 책임이 있는 기업들에게 반성을 촉구하기는 커녕, 귀빈으로 대접하는 이 역설을 어떻게 그냥 받아들일 수 있을까. 더구나 기업은 참여하는데 제3섹터인 시민단체는 왜 거부할까. 이게 민주주의의 탈을 쓴 과두정이 아니고 무엇인가(어차피 권력은 원래 그랬다느니, '과두제의 철칙'이라느니 하는 말은 사양하겠다. 그런 말로 G20을 합리화할 거면 자신이 민주 국가의 시민이라는 말도 하지 마시라).

더욱 안타까운 건 G20에 반대하는 이른바 '좌좀'에 대한 일부의 반발이 고작 정부의 G20 추진을 옹호하는 정도에서 맴도는 데 있다. 좌파들이 말하는 게 고깝고 불편한 건 그려려니 하겠는데, 겨우 돌아서는 지점이 정부가 하는 말을 그대로 답습하는 정도라니.

요약하자. 나는 G20 서울 회의에 모인 세계 정상들(과 거기 모인 기업인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해소하는 데 어떤 진지함도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IMF, 세계은행, WTO에 대한 개혁 의지도 없고, 기축통화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않는 상태의 국제경제질서 유지에도 반대한다. G20이 자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돌아보지 않은 채 무조건 좌좀만 까고 보자는 사람들에게도 반대한다. 지금 내가 하는 말도 찻잔 속의 태풍이고, 허공에 대고 외치는 소리일 뿐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말도 하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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