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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자기만의 방 : 고시원으로 보는 청년 세대와 주거의 사회학

by parallax view 2014. 1. 15.

  『자기만의 방 : 고시원으로 보는 청년 세대와 주거의 사회학』(정민우, 이매진, 2011)은 석사학위논문의 좋은 예를 보여준다.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는 한편, 섬세하게 연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2장에 삽입된 일지는 고시원 참여관찰의 의미를 다소 과대평가하는 감이 있다. 군데군데 낭만화된 서술도 드러나 "과연 그럴까…." 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읽으면서 생각나는 것 중 하나는 텍스트이고 다른 하나는 나 자신의 경험이었다.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와 나 자신의 고시원 체류기. 박민규의 소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 합쳐 1년 6개월이 조금 안 되는 나의 고시원 생활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게 고시원은 정민우의 표현을 빌자면 "시간을 집어삼키는 공간이자, 공간에 덫을 놓는 시간(255쪽)"으로서 애써 떠올리지 않으면 좀체 생각나지 않는 기억, 무의식적으로 억압된 기억인지도 모른다. 더 나은 집을 위한 중간기착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이 되리라는 공포가 고시원 총무실 문을 두드린 스무 살의 나를 압도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민우는 고시원에 체류하는 청년을 연민과 동정의 시선으로 보는 태도와 거리를 둔다(그런 유혹을 도처에서 느끼는 듯하지만). 그는 일종의 경계지대(borderlands)에 서는 시간이자 공간으로서 청년(세대)과 고시원을 교차시킨다. 고시원은 규범적 시공간성(normative spatio-temporality)으로서의 '집'에 대한 서사와 욕망이 있기에 만들어질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청년은 부모의 자산과 교육 관리 능력에 따라 위계화/서열화된 미래를 형성하는 과도적 시간이다. 여기서 집을 가진, 그리고 가질 수 있는 사람(이성애-가부장제-정상가족에 편입되는 사람)만이 어른/시민이 된다. 그런 점에서 '캥거루족'에 대한 비난 '여론'은 부모에게 빌붙을 여지가 있는, 그리고 부모의 투자를 통해 자신의 생애를 기획할 수 있는 사람 외의 존재를 은폐한다. 이때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 특히 고시원에 살거나 고시원을 거친 청년들 역시 규범적 시공간성에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그들은 '정상적인' 집을 원하고, '정상적인' 가족을 원한다.

  그러나 정민우는 청년들이 정상적인 집과 가족을 꾸릴 수 없다는 불가능성 앞에 좌절하고 냉소하지만 않는다는 데 의미를 부여한다. 어떤 인터뷰이는 스스로를 '고아'라고 말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해석한다. '고아'는 자신의 뿌리가 없음을 자각한 사람, 뿌리를 자르고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세계에 맞서는 사람이다(서동진은 '청년'을 세계에 맞서는 개인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한다. 정민우가 해석하는 '고아'는 서동진의 해석에 가까워 보인다). 인터뷰이가 제안하는 "'고아'라는 주체 위치는 세계에 '나'를 기입하는 적극적이고 체현된(embodied) 공감을 동반하며, '나'와 '그 사람들' 사이의 상대적인 좌표를 고려하면서도 그 좌표가 놓이는 좌표축의 공통성을 이해하려고 하는 해석적 연대(interpretive solidarity)를 시도한다(363쪽)."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던가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식의 참견보다, 스스로를 '고아'로 자각하고 고아인 사람끼리 함께 살아보는 시도를 하는 것이 훨씬 '어른'이 되는 방식일 것이다.


  나는 『자기만의 방』을 읽으면서 나의 고시원 시기를 떠올리며 조금은 마음이 편해질 수 있었다. 고시원 생활을 잊고 싶은 경험으로 생각했던 사람의 말도, 부모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는 '독립'의 공간으로 느꼈던 사람의 말도 꼭 내 경험인 것만 같이 읽었다. 모든 해석은 사후적일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방살이'를 하지 않지만, 언제 다시 들어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까스로 어른거리는 고시원의 추억 속에 남아 있다. 그래도 "해석과 공감, 연대의 불/가능성이 자리한 낮고 높고 좁은 방들에서 오는 언어와 사유들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장소(364쪽)"라면, '고아'들이 어떻게 같이 살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부대끼는 편이 혼자서 두려워하기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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