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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220

반딧불의 잔존 『반딧불의 잔존』(조르주 디디-위베르만, 김홍기 옮김, 길, 2012) 왜냐하면 파솔리니가 반딧불의 소멸이라는 이런 겸허한 비유에 부여하고자 하는 극단적이고 과장적인 의미 이상으로, 그 비유는 훨씬 더 상당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리의 고유한 "희망의 원리"를 다시금 사유해야 하고, 그 사유는 '예전'이 '지금'을 만나서 우리의 '장래' 자체를 위한 어떤 형식이 마련되는 하나의 미광, 하나의 섬광, 하나의 별자리를 형성하는 방식을 거쳐 진행되어야 한다. 비록 지면에 바짝 붙어 지나가고, 비록 아주 약한 빛을 발산하고, 비록 느리게 이동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반딧불들이 그런 별자리를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반딧불이라는 작디작은 사례와 관련해서 이런 사실을 긍정하는 것.. 2013. 5. 10.
삼십세 『삼십세』(잉에보르크 바흐만, 차경아 옮김, 문예출판사, 1994) 내가 과거에 했던 어리석은 일 중 하나는 책을 소리내어 읽던 동생을 몹시 미워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가 입에서 내는 소리로 내 독서가 방해받길 원치 않았다. 바로 그 행위, 종이 위에 새겨진 문장을 또박또박 읽어내리는 것을 나는 원치 않았다. 열한 살의 나는 그렇게도 작았다. 내 작은 세계 안에서 조용히 글에 빠져들고 싶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내가 해야 했던 건 그녀의 낭독에 귀를 기울이고, 나 또한 낭독으로 화답하는 것이었다. 『삼십세』 속의 단편 「삼십세」의 마지막 문단을 읽어내려가며 그런 생각을 했다. 서른이 되리라는 생각을 좀체 해 보지 않았던, 지나온 과거를 향해 "나는 하지 않았어" 라고 말하지만 누구도 과거의 그를 잊지 않.. 2013. 5. 4.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사사키 아타루, 송태욱 옮김, 자음과모음, 2012)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읽고 별 할 말 없다면서 페이스북에 본문을 길게 인용하다 휴대전화 키패드로 쓰는 게 짜증나 아예 인상적인 문단 몇 개를 수첩에 옮겨 적었다. 적다 보니 저자가 거듭 강조했던 일을 나 또한 반복함을 떠올렸다. 저자에 따르면 읽는다는 것은 늘 불가능한 일이고 우리는 읽고 나면 미쳐버리므로 읽은 내용을 망각하거나 왜곡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광기와 자기방어 모두를 물리치는 한편, 결코 읽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 읽는다는 것은 늘 다시 읽는 것이고 고쳐 읽는 것이며 쓰고 다시 쓰는 것이다. 문학의 범위는 아주 넓고 우리의 혁명은 바로 읽고 쓰는 데 달렸다. 오직 읽고 쓰는 것만이 혁명적이다. .. 2013. 4. 28.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헬렌 야페, 류현 옮김, 김수행 감수, 실천문학사, 2012)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에서 파헤치는 체 게바라를 두고 국내 서평꾼들은 "경제 관료로서의 체 게바라" 혹은 "정치경제학자로서의 체 게바라"에 주목하는 듯하지만, 나는 "경영자로서의 체" 혹은 "경영학자로서의 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나 싶다. 체가 국가를 하나의 공장, 즉 기업으로 간주하고 국가의 모든 물적, 인적, 지적 자원을 전략적으로 동원하고 배치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그 우파적 버전을 이명박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저자 헬렌 야페는 쿠바 혁명 이후 체가 1959~1964년 사이에 국립은행 총재, 국립농업개혁원 산하 산업화부(산업부흥부) 부장, 산업부 장관 등의 요직을 거치면서 구상하.. 2013.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