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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umfabrik54

군도 : 민란의 시대 (2014)에서 눈이 가는 부분은 조윤(강동원 분)과 도치(하정우 분)로 상징되는 인물 간의 배경 설명이다. 조윤은 양반의 서출로 태어나 갖은 설움을 겪으면서 아버지를 향한 인정 욕망을 키워간다. 그 과정은 내레이션을 통해 최대한 상세하게 부각된다. 말하자면 조윤에게는 '개인사'가 있다. 서출이나마 '이름'을 가질 수 있는 양반의 일원인 조윤은 근대적인 의미의 개인으로 존재한다(여기서 영화 속 실제 역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처음부터 철종 시대 운운은 영화를 위한 설정에 불과하다). 반면 도치에게는 개인사라 할 만한 것이 없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는 서사의 전개를 통해서야 역사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이때 눈앞의 이익에 마음이 동하지만 모질지 못해 일을 그르치고 그 결과 가족을 잃는다는 서사는 .. 2014. 8. 10.
노아 는 보기보다 훨씬 가혹한 영화다. 신의 대리인으로서의 노아는 또한 '아버지의 이름'에 충실한 아들이자 그 자신이 '아버지'인 가부장이다. 잔혹함은 CG로 구현된, 살기 위해 방주로 달려드는 인간을 타락천사가 무자비하게 쓸어버리는 장면에 있지 않다(거기에도 나름대로 섬찟한 면이 있다. 관람의 주체는 스펙타클의 대상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이들의 비명이 극장을 울리고, 그들에게 밧줄이라도 던져주자는 가족들의 간청에 저들은 모두 악하다고 단호하게 거부하는 노아를 카메라가 비춘다. 영화는 그럼으로써 정의란 얼마나 가혹한가를 드러낸다. 명령에 충실한 가혹함. 가부장의 가혹함. 노아의 결정은 가부장의 결정이며, 가족은 아무리 타협과 저항을 시도해도 결국 그의 결정에 따른다. 한편 노아와 대.. 2014. 5. 2.
더 테러 라이브 말할 수 없는 자들 혹은 재현되지 못하는 자들이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폭력을 동원하고, 한 번 시작된 폭력에 끊임없이 휘말리는 과정을 담은 영화. 그만큼 이 영화를 사로잡는 정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분노와 절망이며, 그 분노와 절망이야말로 지금 시기의 언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폭력이 아니라면 누가 발전국가의 '근로자들' 혹은 잊혀진 자들을 돌아볼 것인가. 이 영화를 두고 '경제적'이라 비평할 때 영화적으로 근사한 그림을 만들어 낸 감독의 역량만을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응축과 환유라는 재현의 미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절망적인 분위기에서 파생되지 않을 수 없다. 테러리스트도 국민이라면, 사실 국가는 국민을 생산하는 만큼 테러리스트도 생산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국민의, 국.. 2014. 5. 2.
일대종사 뒤늦게 본 영화 이야기. 왕가위의 는 엽위신의 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영화지만, 이 표현하지 못하는 지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더 높이 평가받을 만한 영화다. 무상하게 흩어지는 인생을 수 천 년 무술 역사 속에서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무술에 빗대는 관조가 그렇다. 는 실존 인물 엽문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는 영화다. 이 관록 있는 배우(견자단)와 정교한 무술연출을 통해 실존 인물의 재현을 최대한도로 끌어올리려 했던 점을 생각하면 는 늦어도 너무 늦은 작품으로 보인다. 하지만 무술영화의 재현이 얼마나 '사실적'인지를 두고 영화의 장르적 완성도를 가늠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영화는 단절과 도약의 기술이기에, 무술의 재현은 편집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와 에서의 무술 합만으로 영화를 재단.. 2014.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