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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215

[서평] 위험천만 왕국 이야기 (J.R.R.톨킨, 1949) 1. 왕국의 문 앞에서 꿈은 꿈을 꾸는 자의 것이다. 노래는 노래를 부르는 자의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자의 것이다. 톨킨하면 떠오르는, 거대하고 웅장한 대서사시, 세계의 운명을 둘러싼 대전쟁, 고대와 중세의 영어와-정확하게는 켈트어의 방계인 게일어-아일랜드, 스칸디나비아의 전설을 토대로 기독교 정신을 입힌 고차원적인 노래, 그리고 반지, 이 모든 인상은 분명 톨킨의 것이 분명하지만, 네 편의 소소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위험천만 왕국 이야기(Tales from the Perilous Realm, 1949)'는 톨킨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자못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단편집에 수록된 '니글의 이파리(Leaf by Niggle)'에서의 묘사를 모방하자면, 나무에 돋아난 자그마한 이파.. 2008. 4. 7.
[서평]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한국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 (최장집, 2002) 지난 대선 때부터 특히 내 머리를 쿡쿡 쑤셨던 의문 한 가지 : 왜 우리나라 국민들은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빠삭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돈 많으면 장땡"이라는 천민자본주의의 화신이 되어버렸을까? 계약직으로 들어간 모 공기업 출근 삼일째, 회식자리에서 문득 깨달은 두 가지 : 본부장님 바로 옆에 앉은 탓에 "자네는 어떻게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나?" 라는 질문에 "모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다니고 있습니다" 라는 한 마디를 들은 본부장님, 화제를 바로 다른 사람에 돌리고 이쪽은 쳐다도 보지 않으셨다. "아~ 이래서 선배들이 정외과 나오면 취직하기 어렵다고 하는 거구나~ 앗흥♡" 이라는 것과, "정치라는 말만 들어도 이리 혐오감이 들어버리는 건가" 라는 것. 이제 정치라면 신물이 난다! 라는 사람들, 참 많이 본.. 2008. 2. 28.
[서평]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로저 젤라즈니, 1971) 젤라즈니의 이야기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교 2학년 무렵, 그 당시 나름 힘들고 어려울 때였다. 학교 생활도서관에서 그저 작가의 이름자 줏어들은 인연으로 집어든 로저 젤라즈니의 '앰버 연대기'. 그 1권 '앰버의 아홉 왕자'는 오래 전부터 한국의 토속 판타지(속칭 양판소)에 학을 뗀, 주제에 눈만 높아서 명작이 아니면 읽으려들지 않는 나쁜 버릇의 시험을 쉽게 이겨냈다. 기억을 상실했던 한 남자가 침대 위에서 일어나면서 자신을 둘러싼 음모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구성이 건조한 문체와 어우러져 이야기 속으로의 몰입을 북돋웠다. 특히,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지나치는 환경이 조금씩 왜곡되면서 진정한 세계 '앰버'로 들어가는 장면은 1권의 백미일성 싶다. 그 뒤로 2권 '아발론의 총' 이후로 젤라즈니의 책은 집어들지 .. 2008. 2. 19.
[서평] 정말, 자기 혼자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88만원 세대 / 우석훈, 박권일, 2007) . 동거 : 달콤살벌한 가정 우석훈 박사와 박권일 기자가 공저한 '88만원 세대' (2007)는 "우리나라의 10대가 동거를 선언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동거, '옥탑방 고양이' 같은 드라마 등으로 주류매체의 아이템으로 등장한데다 20대의 동거는 종종 발견되는 일이라 그리 낯설지만도 않지만, 이 나라에서 젊은 여자와 남자가 '결혼'과 '부모의 동의' 라는 매개 없이 함께 사는 것은 그 역사(?)가 꽤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정한 생활방식으로 인식된다. 하물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10대가 동거를 선언한다니! '어린 신부'도 아니고 말이지. 하지만 '88만원 세대'는 우리나라에 잔존하는 유교적 관습이나 사회인식 같은 문화적 장치는 일단 빼고 최대한 '경제학적.. 2008. 1.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