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알랭 드 보통, 생각의 나무, 2002)
- 이번엔 책 단평입니다. 왠지 단평이 쓰기 편하고 그러네요. ㅎㅎ;; 본서의 원래 출간년도는 2000년이고, 2002년은 국내출간년도입니다.
- 제겐 프랑스 철학자 하면 갖게 되는 편견이 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은 아닐테지만요. 아무래도 미셸 푸코니 질 들뢰즈니 하는 철학자들의 언저리를 기웃거렸기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죠. 사르트르, 보드리야르, 데리다, 라캉... 이런 이름들은 '현학적', '형이상학적' 이라는 수사들을 달고 오기 마련이었고, 이런 학자들을 들먹이며 이야기를 하면 친구 말마따나 곧잘 '인문학 똘똘이'가 되기 싶상이었습니다. -_-;;
- 알랭 드 보통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은 인문학 똘똘이가 아니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철학개론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 고통에 대한 인내의 미덕을 설파하는 세네카, 자유주의자 볼테르,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 파괴의 초인 니체를 알기 쉽고 간략하게 이야기합니다.
- 프랑스 철학자이면서도 뭐랄까, 영국적인 글쓰기랄까요, 간단하고 명료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그렇다고 역사상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상만을 설명하는 식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에도 들어가고, 시대의 문화,예술도 같이 접목하면서 철학을 다각도로 접근합니다.
- 학자들마다 테마와 서술방식이 각기 다릅니다. '인기 없음에 대한 위안' - 소크라테스 / '충분한 돈을 갖지 못한 데 대한 위안' - 에피쿠로스 / '좌절에 대한 위안' - 세네카 / '부적절한 존재에 대한 위안' - 볼테르 /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 - 쇼펜하우어 / '곤경에 대한 위안' - 니체 등 테마가 뚜렷하고, 쇼펜하우어의 경우엔 주로 연애와 관련한 이야기인지라 소설적인 구성도 포함시켜 놓는 등 이야기로서의 재미 또한 추구합니다.
- 주로 '무엇무엇에 대한 위안' 이라는 테마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일종의 휴식처로서의 철학입니다. 철학은 분명 삶의 본질을 묻는 것인 동시에, 보다 즐거운 삶 혹은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철학자들의 각기 다른 대답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니체가 고난, 역경, 시련, 열등감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것은 자기를 극복한 위대한 삶이란 거친 산을 오르고 내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개인적인 체험과 연결되어 있듯이 말입니다.
- 요약 : 글을 이렇게 알기 쉽고 재밌게 쓸 수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_-;;
2. 몰타의 매(대실 해밋, 열린책들, 2007)
-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대명사 '몰타의 매'. 1929년 미국 작품입니다. 건조하고 명료한 문체와 냉철한 캐릭터로 대변되는 하드보일드 스타일이 대중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첫 작품이라고 일컬어지죠. 작가 대실 해밋은 탐정 사무소에서도 일했고, 1차 대전과 2차 대전에 모두 참전한(주둔지는 미국이긴 했어도-_-;;) 독특한 경력을 가졌습니다. 일명 '1920년대의 작가'로 불리는데, 소설의 주된 배경이 금주법이 제정되고 마피아와 밀주가 횡행하던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데다 집필활동도 1930년대 초로 끝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후에는 주로 헐리우드에서 시나리오를 쓰거나 강의하거나 했다네요.
- 우리나라에는 소설보다 영화 '말타의 매'(1941)로 더 잘 알려져 있을 겁니다. 영화 '카사블랑카'(1942)의 히어로인 험프리 보가트가 탐정 샘 스페이드 역을 맡았더랬지요. 사실 이 소설이 처음 영화화된 것은 1931년이었지만 대중의 눈에 각인된 작품은 존 휴스턴이 감독하고 험프리 보가트가 출연한 세번째 작품이라는군요.
- 탐정 사무소 '스페이드 앤드 아처'에 정체불명의 미녀가 찾아오고, 매사 냉철하고 영악한 사립탐정 샘 스페이드가 그녀의 동생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아들이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이미 시대가 80년 가까이 지났고, 이 작품 이후로 탐정소설과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다작이 쏟아진 결과, 21세기를 살고 있는 독자/관객으로서는 이 작품의 스토리가 전혀 새롭게 느껴지진 않을 겁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결한 이야기 전개와 뚜렷한 캐릭터성이 작품을 살려줍니다. 특히 인물의 행동을 설명함으로써 그의 성격까지 깔끔하게 캐치하는 스타일이 돋보입니다. 물론 주인공이 지금 시대와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 교활한 마초이긴 합니다만 작가와 시대가 욕망했던 영웅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무겁고 다소 음울해도, 빠른 이야기 전개와 꽤 다양한 캐릭터들이 이야기의 무게를 적절히 잡아주고 있죠.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교과서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이후의 레이먼드 챈들러나 '앰버 연대기'의 로저 젤라즈니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인상도 듭니다.
- 요약 : 1920년대 미국인의 욕망을 알고 싶다면 적극 추천. 그냥 쉽고 간결한 이야기를 원한대도 추천.
3. 우주만화(이탈로 칼비노, 열린책들, 1994)
-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작가로 불리는 이탈로 칼비노의 1965년 작품입니다. 반파시스트 게릴라 활동을 했던 작가로, 동시대의 여느 작가들처럼 논쟁적이고 사회참여적인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기 나름의 문학 스타일을 추구했기 때문에 사회참여 작가들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네요.
- '우주만화'(Le Cosmicomiche)는 정체불명의 존재 '크프우프크'(뒤집어 읽어도 '크프우프크'-_-;;)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을 모아놓은 소설집으로, 단편마다 조금씩 다른 구성을 하고 있지만(주인공이 어떨 땐 행동가(doer)로, 어떨 땐 관찰자(seer)로 등장하는 등) 항상 크프우프크가 1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점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 '지극히 사변적이고 몽상적인' 이라는 말은 이 소설을 위해 만들어졌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언어를 비틀고 꼬아서 혼란스럽고 방대한 우주를 만들어놓았달까요. 지구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달로 퍼지고, 달에서 태양으로 이동하고 마침내 광활한 우주를 여행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원시지구의 핏빛 바다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배경만 바뀌는 게 아닙니다. 크프우프크는 어떤 단편에서는 이제 막 바다를 벗어나 육지생물로 진화해가던 과도기적 생물이었다가, 다른 이야기에서는 멸종위기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공룡이 되기도 하고, 은하계의 행성에 자기 흔적을 남기는 어떤 초월자가 되기도 합니다.
- 진화론과 빅뱅이론, 양자이론, 그 외 각종 과학서적에서 뽑아낸 듯한 과학지식을 서두에 배치하고 그 지점에서부터 이야기를 전개하는 게 기본 골격입니다. 그러나 이야기 자체는 과학이 들어갈 틈새가 없습니다. 오히려 작가는 현실의 언어를 파괴하고 그 배치를 자유자재로 조종함으로써 전혀 다른 환상세계를 만들어냅니다. 그 탓에 읽기가 무척 까다롭고 난해합니다. 사물과 언어의 관계를 모호하고 불분명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곤란한 소설이죠.
- 언어를 파괴함으로써 우주를 재구축하고자 했지만 이야기의 뼈대는 차라리 단순합니다. 주인공은 항상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고, 자신의 근본적인 결핍을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찾고자 하지만 결국 상실한 채 방황하며 그리워한다는 것이니까요. 그 점에서 어쩌면 이 소설집을 '이야기'라기보다는 하나의 예술적 구조물로 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소설 속에서 눈에 띄는 단편은 '새들의 출현'입니다. 크프우프크가 새를 쫓아 새들의 나라로 떨어져서 그 중 가장 아름다운 새(여왕 새)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인데, 문장 하나하나를 만화처럼 묘사해냅니다. 글로써 만화를 그려보고 싶었달까요. 복잡다단한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구성을 가진 이야기였습니다. 소설 자체의 완결성으로는 '공룡'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멸종위기에서 살아남은 공룡이 다른 생물들 속에서 살아가면서 정체성을 고뇌하는 이야기인데, 현실과의 연관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덜 복잡해 보이기도 합니다.
- 요약 : 난해, 현학, 몽환, 망상 이 모든 것들을 원한다면 일독을 권유함.-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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