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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Voice25

급진적 현실주의? 1. 세계 어딜가나 한줌도 안 되는 좌파판에서, 래디컬로 산다는 데에는 환희와 피로가 동시에 따라온다. 기질로 설명하든 방법론으로 설명하든, '급진'(적)이라는 구호는 매력적이면서 또한 공허하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삶의 방식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즉, 삶이 급진적이지 않다면, 래디컬한 그리고 '래디컬'이라는 주장의 급진성은 금세 소멸해 버린다. 2. '대중'은 그 대척점에 현실주의가 있다고 상상하곤 한다(혹은 상상하곤 한다고 나는 가정한다). 여기서 현실주의는 타협의 동의어이다. 적어도 갈등 조정의 온건한 방법들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급진과 현실주의라는 단어를 조합하면 어떤 개념이 도출될까? 단순한 언어유희, 모순형용에 불과할까? 잘해봐야 사회자유주의나 사회민주주의처럼 특정한 지향과 역사적 한계를 내포하.. 2011. 2. 6.
즐거운 설 되시길 가능하면 이번에는 그냥 서울에서 쉬고 싶었다. 이틀의 휴일을 혼자 조용히 책 읽으며 보내길 바랐다. 하지만 내가 하지 않은 일이 있기 때문에,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너무 오랫동안 이야기하지 않은 것들. 좀 힘들겠지만 난 이렇게 살 거다, 라는 말들. 가족에게 보이지 않은 내 솔직한 마음들. 잘 털어내면 좋겠는데. 모두들 즐거운 설 되시길. 그리고 다시 한 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설에는 설리가 진리. (응?) 2011. 2. 2.
단상 : 과학과 정치평론 (존칭생략) 1. 한윤형이 에서 염두에 둔 딜레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언'은 불가피하지 않느냐"인 것 같다. 여기에 칸트가 어설프게 개입되는 바람에 개념의 혼동이 온 게 아닐까(이 지적이야말로 어설픈지 모르겠다). 김우재는 초월적 논증과 과학적 논증 사이의 대립 구도는 순진할 뿐 아니라 무지의 소산이라고 비판하는 듯한데, 이 지점에 대해서는 김우재가 옳다(과학은 세계 '외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윤형은 여기에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2. 한윤형이 논객 내지 문사의 한계를 짚는 이유는 정치평론이란 언제나 실천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견의 과잉대표 현상과, 의견-실천의 괴리 내지는 연결점 부재에 있다. 여기서 김우재는 지적·실천적 도약으로서의 '초월'transcendent을 .. 2011. 1. 18.
[기형도] 우리는 그 긴 겨울의 通路를 비집고 걸어갔다 우리는 그 긴 겨울의 通路를 비집고 걸어갔다 기형도 그리하여 겨울이다. 자네가 바라던 대로 하늘에는 온통 먹물처럼 꿈꾼 흔적뿐이다. 눈[雪]의 실밥이 흩어지는 空中 한가운데서 타다 만 휴지처럼 한 무더기 죽은 새[鳥]들이 떨어져내리고 마을 한가운데에선 간혹씩 몇 발 처연한 총성이 울리었다 아무도 豫言하려 하지 않는 時間은 밤새 世上의 낮은 울타리를 타넘어 추운 벌판을 홀로 뒹굴다가 몽환의 빗질로 우리의 차가운 이마를 쓰다듬고 저 혼자 우리의 記憶 속에서 달아났다. 알 수 있을까, 자네 꿈꾸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굳게 빗장을 건 얼음판 위에서 조용한 깃발이 되어 둥둥 떠올라 타오르다 사라지는 몇 장 불의 냉각을 오, 또 하나의 긴 거리, 가스燈 희미한 내 기억의 迷路를 날아다니는 외투 하나만큼의 허전함. .. 2011.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