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Voice25 폭력으로서의 사랑, 사랑으로서의 혁명 "과거의 연애가 현재의 연애를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문득 연애는 매번 주사위 놀이 같은 것이라고 한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녀가 얼마나 과거에 헌신적이었든 상관없이, 누구를 만나 어떻게 연애할지는 전적으로 운에 달렸다(즉, 누군가 연애를 못하는 건 그/녀가 매력이 없다거나 돈이 없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연애는 늘 외부로부터 온다. 우리는 너무 자신에게 몰입하는 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연애는 언제나 벼락 같은 것, 순수한 의미의 폭력, 외상(trauma)이라고 해야겠다. 다만 연애를 마무리하는 방식은 종종 자기 삶의 방식에 따른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했던 연애의 성격은 바로 우리가 이별하는 습관에서 드러날 것이다. 죽은 자의 유령이 산 자의 어깨를 내리누른다는 말을 바꾸면, (시간.. 2014. 5. 2. <변호인, 노무현>에 대한 단상 허지웅의 . 진영논리에 의존해 적을 죽이고 나를 살리는 방식은 결국 나를 죽이고 적을 살리는 방식에 불과하다는 것(보다 정확하게는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을 모두 죽인다는 것). 허지웅은 여전히 진영논리를 넘어선 '상식'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적 좌파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그게 그의 강점이자 맹점이라고 생각한다. 사태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의지는 늘 그의 글을 날카롭게 벼린다. 하지만 정치란 당파와 입장, 열정이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이를 칼 슈미트의 말을 빌려 '정치적인 것'으로서의 '적대'라고 바꿔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허지웅의 글은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정치, 혹은 노무현 지지자나 민주당 지지자보다 더욱 더 리버럴한 정치를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허지웅을 비.. 2014. 5. 2. 그린비 인문플랫폼 포스팅 이전 그린비 인문플랫폼 서비스가 아쉽게도 종료된다고 한다. 몇 자 쓰지도 않았지만, 끼적여 놓은 생각의 파편들을 옮겨놓는다. 2012년 1월 18일의 메모 (2012.01.18 오전 01:58) 소련군의 종심전투이론에 대한 포스팅을 읽다가, 종심전투이론의 "지각의 병참학"을 떠올린다(『전쟁과 영화』). 전차와 야포, 항공기와 공수부대 사이의 제병합동전술이라는 개념 수준에 머물러서는 "전격전"에 대한 오해에 그칠 뿐이다. 핵심은 전술과 기계의 앙상블이 생산하는 심리적인 효과이며, 그 효과를 전선의 연속적인 확장으로 기호화-물질화하는 것이다. "전술과 기계의 앙상블"에 대한 노트 (2012.01.21 오전 04:04) 1. 앞서 "전차와 야포, 항공기와 공수부대 사이의 제병합동전술이라는 개념 수준에 머물러서는 ".. 2012. 6. 18. 110829 1. 조만간 개강이다. 날짜를 제목으로 붙인 포스팅을 하는 것도 오랫만이다. 이것이 소소한 여유를 드러내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또 다시 포스팅은 뜸해질 것이다. 2. 이론을 걷어내고 논점을 명확하게 전달할 때, 그때 가서야 무언가를 '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염두에는 두고 있지만, 나는 너무 서투르고 여전히 성급하다. 3. 무상급식과 보편적 복지 사이의 거리가, 기본소득과 보편적 복지 사이의 거리보다 더 넓은 것일까? 무상급식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얼마나 미적지근한가? 과연 한국에서 '보편적 복지'란 무엇인가? 정치와 행정은 또 어떻게 다른가? 지난 덧글 논쟁에서 이런 부분들에 대한 지적과 설명없이 너무 많은 것들을 그냥 넘겨버린 건 아닐까? 구체적인 수준에서의 분석 없이 너무 추상적인 이야.. 2011. 8. 29. 이전 1 2 3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