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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220

내가 싸우듯이 『내가 싸우듯이』(문학과지성사, 2016) 정지돈의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는 현학자의, 현학자에 의한, 현학자를 위한 소설 모음이다. 작가의 말조차 현학으로 가득 차 있다.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그게 매력이었는데, 「건축이냐 혁명이냐」를 비롯해 '우리들'로 묶인 단편들은 너무 수다스럽다. 그 수다스러움에 지치다 새벽녘이 조금 되기 전에 겨우 읽기를 마쳤다. 전체 단편 중에서는 「미래의 책」이 가장 나은 것 같다. 그의 글은 이론가가 꾸는 꿈, 혹은 이론이 꾸는 꿈 같다. 이론의 파편이 무한히 흩어지고 배열되면서 무한을 이루는, 텍스트의 퍼즐이 그 꿈의 형식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글은 영화와 닮아 있으며 영화 이미지를 쫓는 것 같다. 여기서 내러티브가 아니라 이미지라는 게 중요하다. 텍스트는 이미지가.. 2016. 8. 27.
크레디토크라시 『크레디토크라시: 부채의 지배와 부채거부』(갈무리, 2016) 의 논리는 남반구의 부채거부/저항 운동을 북반구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대입한 것이다. 이른바 저개발국은 제국주의/식민주의의 산물인 남반구의 부채를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없으며, 생태 자원과 남반구 인민의 수탈로 팽창한 북반구야말로 '생태부채'를 진 채무자이기에 기존의 채권-채무 관계는 뒤집혀야 한다는 것이다. 북반부의 주변부에 위치한 사람들, 학자금대출자, 파산자, 금치산자, 도시 빈민 역시 1%의 채권자를 위한 상환을 중단하고 채무불이행을 자유롭게 누리는 1%에게 적극적으로 책임을 묻자는 것이 '롤링 주빌리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하지만 로스 스스로도 부실채권의 폐기를 골자로 하는 롤링 주빌리는 "어떤 식으로든 부채 위기에 대한 실현 가능한 대.. 2016. 8. 26.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그리고 워크래프트 1. 존 르카레의 (열린책들, 2005)를 읽었다. 1963년도에 나온 이 '모던 클래식'은 냉소적 반공주의자가 쓴, 냉소적 반공주의자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007과 더불어 현대 스파이의 이미지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는 이 소설은 분명한 적대의 선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스파이를 보여준다. 지금 봐도 여전히 세련된 이 소설은 정치적 감상주의를 간결하고 냉소적인 문체로 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의 미덕을 간직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공산주의(자)는 적대와 광신의 다른 이름으로 동원될 뿐이다. 르카레의 최근 소설이 갈수록 나이브해진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다. 그건 적대의 선이 사라진 탈냉전 시대에 그의 정치적 감상주의가 처한 자연스런 귀결이 아닐까 억측을 해본다. 2. .. 2016. 6. 11.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돌베개, 2015) 늦은 밤에 레닌의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 읽기를 마쳤다. 돌베개에서 내는 '더 레프트 클래식' 시리즈의 두 번째 책으로 기획되었는데, 예전에 돌베개에서 냈던 '사회과학' 책을 재간하려는 것 같다. 표지를 새 장정으로 하는 건 좋은데, 인쇄 과정에서 바탕이 너무 어둡게 나와 짙은 색 글씨는 잘 안 보인다는 게 문제. 뒷날개에는 『제국주의』와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 『유물론과 경험비판론』도 재출간될 거라고 나와 있는데,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은 사서 읽어 볼까…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은 1905년 러시아 혁명의 격동기에 쓰인, 볼셰비키의 강령적인 팸플릿이다. 봉건제 왕정의 붕괴가.. 2016.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