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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디토크라시

by parallax view 2016. 8. 26.

『크레디토크라시: 부채의 지배와 부채거부』(갈무리, 2016) 


  <크레디토크라시>의 논리는 남반구의 부채거부/저항 운동을 북반구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대입한 것이다. 이른바 저개발국은 제국주의/식민주의의 산물인 남반구의 부채를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없으며, 생태 자원과 남반구 인민의 수탈로 팽창한 북반구야말로 '생태부채'를 진 채무자이기에 기존의 채권-채무 관계는 뒤집혀야 한다는 것이다. 북반부의 주변부에 위치한 사람들, 학자금대출자, 파산자, 금치산자, 도시 빈민 역시 1%의 채권자를 위한 상환을 중단하고 채무불이행을 자유롭게 누리는 1%에게 적극적으로 책임을 묻자는 것이 '롤링 주빌리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하지만 로스 스스로도 부실채권의 폐기를 골자로 하는 롤링 주빌리는 "어떤 식으로든 부채 위기에 대한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고안되지 않았"고, "폐기된 1,500만 달러어치의 채권은 채권 유통시장의 총거래량에 거의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것(309쪽)"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그는 J. K. 깁슨그레이엄의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와 비슷하게 자본주의 안에서의 대안 경제 활동(공동체 주도의 신용협동조합, 노동자협동조합, 공동체 화폐 운동 등)에 의지한다. 로스가 참여한 롤링 주빌리 프로젝트가 데이비드 소로 이래의 시민 불복종 운동과 미국의 '전통적인' 아나키즘 운동의 자장 안에 있는 것도 주의 깊게 볼 지점이다. 물론 그 시작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뒤이은 오큐파이 운동이다. 한국의 롤링 주빌리 운동이 참여연대, 경실련 주도의 시민운동과의 연결망, '진보적인' 지자체장의 지원, '중도 보수' 정당의 참여를 통해 진행되는 것은 운동의 번역이 문화적, 지리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