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싸우듯이』(문학과지성사, 2016)
정지돈의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는 현학자의, 현학자에 의한, 현학자를 위한 소설 모음이다. 작가의 말조차 현학으로 가득 차 있다.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그게 매력이었는데, 「건축이냐 혁명이냐」를 비롯해 '우리들'로 묶인 단편들은 너무 수다스럽다. 그 수다스러움에 지치다 새벽녘이 조금 되기 전에 겨우 읽기를 마쳤다. 전체 단편 중에서는 「미래의 책」이 가장 나은 것 같다. 그의 글은 이론가가 꾸는 꿈, 혹은 이론이 꾸는 꿈 같다. 이론의 파편이 무한히 흩어지고 배열되면서 무한을 이루는, 텍스트의 퍼즐이 그 꿈의 형식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글은 영화와 닮아 있으며 영화 이미지를 쫓는 것 같다. 여기서 내러티브가 아니라 이미지라는 게 중요하다. 텍스트는 이미지가 될 수 있는가? 반대로 이미지는 텍스트가 될 수 있는가? 후기구조주의 이후 이 말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우리는 텍스트-이미지 혹은 이미지-텍스트의 세계를 살아간다. 적어도 정지돈은 자기가 무슨 글을 쓰는지는 알고 있는 것 같다. 그의 두 번째 소설(집)이 나온다면 과연 이만한 인내심을 가지고 볼 수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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