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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215

노르웨이의 숲 하루키의 소설을 읽거나 그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언젠가, 하루키 소설 같은 건 소설도 아니라고 말했던 누군가가 떠오르곤 한다. 그는 제법 사회적인 지위도 있고 글 깨나 쓰는 엘리트였다. 아마도 그는 하루키 소설이 지금도 베스트셀러에 오른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뉘앙스로 말했던 것 같다(늘 그렇듯 기억은 왜곡되지만). 하지만 하루키가 당신보다는 훨씬 나은 작가일 것입니다, 라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비겁하게도 직업적인 이유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노르웨이의 숲』 이후로 너나 할 것 없이 하루키를 베꼈던 시절에는 그런 생각을 한 번쯤 해 보는 것도 괜찮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루키가 세계적인 명사 자리에 올라 노벨문학상을 받으니 마니 하는 이야기가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 2017. 10. 5.
사회주의와 전쟁 레닌의 『사회주의와 전쟁』(레닌 전집 60 / 아고라, 2017)을 읽었다. 『제국주의』를 처음 읽었을 땐 왜 이렇게 카우츠키를 못 잡아먹어 안달할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레닌에게는 1차 대전 그 자체보다 (제국주의 전쟁은 당시에도 오래전부터 예견되었으니까) '조국 방위'를 위해 국제주의와 프롤레타리아를 팔아먹은 사회주의자들의 행태가 더 충격적이었기에, 겉으로는 혁명을 외치지만 사실상 전쟁에 동조하는 기회주의자들이야말로 격렬하게 성토해야 할 맞상대였다. 레닌은 그들과 전쟁을 벌였으며, 자신이 담론의 전쟁터에 서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언뜻 보면 거칠고 섬세하지 않은 이분법에 기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라!"와 "혁명을 위해 자국의 패배를 촉구하라!"는 슬로건은.. 2017. 9. 27.
<작은 우주들> 단상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작은 우주들』(김운찬 옮김, 문학동네, 2017)이 잘 읽히지 않는 이유를 알아낸 것 같다. 그의 글이 노인의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의 경계(트리에스테),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경계(안테르셀바)를 헤매면서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군상을 그들의 복잡다단한 역사와 단조로우면서도 변화무쌍한 자연경관과 함께 조명한다. 이때 마그리스는 늙은이들을 거듭 소환한다. 온화한 늙은이, 소란스런 늙은이, 심술궂은 늙은이까지 가리지 않는다. 도나우 강의 도도한 흐름과 함께하는 『다뉴브』와 비슷한 스타일로 쓰였지만, 『작은 우주들』에는 그 제목 그대로 '작은 우주들microcosmi'에 대한 무한한 집착이 보인다. 죽어가는 것을 향한 끊임없는 탐구가 거기에 있다. 하지만 나.. 2017. 7. 7.
내가 싸우듯이 『내가 싸우듯이』(문학과지성사, 2016) 정지돈의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는 현학자의, 현학자에 의한, 현학자를 위한 소설 모음이다. 작가의 말조차 현학으로 가득 차 있다.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그게 매력이었는데, 「건축이냐 혁명이냐」를 비롯해 '우리들'로 묶인 단편들은 너무 수다스럽다. 그 수다스러움에 지치다 새벽녘이 조금 되기 전에 겨우 읽기를 마쳤다. 전체 단편 중에서는 「미래의 책」이 가장 나은 것 같다. 그의 글은 이론가가 꾸는 꿈, 혹은 이론이 꾸는 꿈 같다. 이론의 파편이 무한히 흩어지고 배열되면서 무한을 이루는, 텍스트의 퍼즐이 그 꿈의 형식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글은 영화와 닮아 있으며 영화 이미지를 쫓는 것 같다. 여기서 내러티브가 아니라 이미지라는 게 중요하다. 텍스트는 이미지가.. 2016.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