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늦은 퇴근길에 『손자병법』(손자 지음, 김원중 옮김, 휴머니스트, 2016)을 읽고 있다가 어떤 나이 든 남자가 내가 책 읽는 모습을 찍고 싶다고 말을 걸어 왔다. 멋쩍었지만 찍으셔도 된다고 말하고는 눈길을 도로 책으로 돌렸다. 그는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돌려 사진 찍는 시늉을 했지만 뜻대로 안 되었는지 안 되겠다고 중얼거리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조금은 취한 듯 들떠 있던 그 남자는 내게 하이파이브를 청하며 요즘엔 사람들이 이런 책을 잘 읽지 않는다는 말을 던졌다.
나는 그 남자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손자병법』 같은 책을 금과옥조처럼 다루는 어떤 남자들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니까 『삼국지』 같은 책을 읽고 『손자병법』에서 기업 경영과 세상살이의 이치를 찾으며 이 '난세'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궁리하는 나이 든 남자들을. 가부장적인 봉건 질서가 생생하게 살아 있던 당시의 글 속에서 그들은 타인을 속이고 자신의 생존만을 추구하던 춘추전국시대의 원리를 체화하려 한다.
오랜만에 읽은 『손자병법』에서는, 그야말로 피비린내가 났다. 『손자병법』의 핵심은 저 유명한 "전쟁은 신중해야 한다"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태롭지 않다"도 아닌 "전쟁은 속임수다"라는 명제에 있을 것이다(물론 앞선 명제들도 무시할 수는 없다). 『손자병법』이 제아무리 '동양 고전'으로 대접받고 '수천 년의 지혜'를 담고 있다고 치켜세워진다 해도, 그 책은 본질적으로 잔혹하다. 이런 책만 읽고서 세상살이의 이치를 깨우치려 든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전쟁을 통해 만들어진 이 나라에서, 폐허 위에 집과 공장을 짓고 생존과 성장을 위해 달려온 남자들에게는 삶이 곧 전쟁이기에 『손자병법』 식의 논리에 쉽게 빠져들었을 것이다. 『손자병법』을 단순히 '지혜의 보고'라고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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