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노 라투르, 『판도라의 희망: 과학기술학의 참모습에 관한 에세이』(장하원·홍성욱, 휴머니스트, 2018)
2018년 4월 19일 목요일
라투르의 '근대' '탈근대' '비근대' 등의 논의에서 빠져 있는 것 내지는 그의 사유에 있어서 넌센스인 것은 아마도 ‘반근대’일 것이다. 이는 그가 '두 문화' 사이를 치열하게 사유하고 새롭게 매개하려는(그의 식대로 말하면 그와 같은 '근대적인' 기술을 우회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변증법적 사유가 걷는 필연적인 경로 때문으로 보인다.
2018년 5월 6일 일요일
라투르가 '팩티쉬factish'라는 표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실이 구성되는 동시에 그 자체의 자율성을 가지고 작동한다는 것이다. 주체-객체 이분법을 '근대주의적 합의'라 부르면서 이를 우회 혹은 회피하는 맥락에서 '인간-비인간의 집합체collective'를 제안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데올로기를 말하지 않은 채 물신주의 비판을 재비판하고 변증법을 거치지 않은 채 모순 개념을 흡수하려는, 절단(단절)과 도약이 아니라 연결과 연속을 강조하는 사고 역시 마찬가지. 그에게 '반근대'란 불가능한 조합이며(팩티쉬를 언급할 때 잠깐 '반근대'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가듯 한다), 근대주의적 합의와 공존하되 그것과 경합하며 과학적 사실들과 '연결을 강화할' 집합체만이 존재할 뿐이다. 책이 나온 1999년 이후 (라투르의 표현을 빌자면) 집합체로서의 행위자연결망이론ANT은 과학전쟁의 포연 속에서 살아남았고 현재 과학기술학의 주된 담론이 된 것 같다. 라투르가 (하이데거를 비판하면서) 하이데거의 논의를 고스란히 흡수하고 있다는 서동진의 해석을 참고하되 그의 논의 안에 함몰되지 않도록 두 입장을 면밀하게 살펴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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