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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우주들> 단상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작은 우주들』(김운찬 옮김, 문학동네, 2017)이 잘 읽히지 않는 이유를 알아낸 것 같다. 그의 글이 노인의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의 경계(트리에스테),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경계(안테르셀바)를 헤매면서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군상을 그들의 복잡다단한 역사와 단조로우면서도 변화무쌍한 자연경관과 함께 조명한다. 이때 마그리스는 늙은이들을 거듭 소환한다. 온화한 늙은이, 소란스런 늙은이, 심술궂은 늙은이까지 가리지 않는다. 도나우 강의 도도한 흐름과 함께하는 『다뉴브』와 비슷한 스타일로 쓰였지만, 『작은 우주들』에는 그 제목 그대로 '작은 우주들microcosmi'에 대한 무한한 집착이 보인다. 죽어가는 것을 향한 끊임없는 탐구가 거기에 있다. 하지만 나.. 2017. 7. 7.
죽음, 결속, 백색왜성 죽음은 매듭을 푸는 게 아니라 반대로 묶는다. 이는 사회적 결속 의례이자 구심력이다. 죽어가는 사람은, 밀도와 질량을 얻어 다른 사회구성원을 자기 주위에 끌어당기면서 붕괴하는 자그마한 별이다. -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안테르셀바」, 『작은 우주들』, 김운찬 옮김, 문학동네, 2017, 275쪽. ======================================= 마그리스의 말을 따르자면 죽어가는 사람은 백색왜성이다. 그/녀의 오그라든 육체는 주위로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을 곁으로 불러모으면서 육체는 더욱더 쭈글쭈글해지고 작아진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의 일이다. 백색왜성은 아름다운 비유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은유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다시금 .. 2017. 7. 7.
열병 같은 봄이 지났다 열병 같은 봄이 지났다. 여름에는 어딘가 이성적인 구석이 있다. 작열하는 태양에 감성이 타들어 가기 때문이라고 둘러대 본다. 쏟아지는 비가 잠시 몸을 습기로 뒤덮지만 그때뿐이다. 아직 여름휴가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일을 핑계로 미적대다 하루이틀 짧게 어딘가 갔다 오는 게 전부일 것이다. 아직도 몸은 여름방학을 기억하고 있는지 놀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딱히 방학이라고 해서 어디 멀리 갔다 온 적이 없기 때문에 허파에 헛바람만 들락날락한다. 올해의 절반은 제법 길었다.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나는 그 안에서 도로 어려졌다. 아직도 자신이 어른이라는 자각이 없다. 어른, 꼰대, 그런 건 되고 싶지 않지만 "그만큼 나이를 먹었으면 나이값을 하란 말이다" 라고 되뇐다. 이걸 줄여서 '어른'이라고 하는 거겠지... 2017. 7. 7.
조금 늦은 전주영화제 관람 영화 단평 4/29(일) W. G. 제발트의 동명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라 했다. 거치대에 놓였을 카메라는 미동 없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찾는 관광객을 비춘다. '다크 투어리즘'의 원조라 할 만한 이 수용소를 찾아 온 다양한 관광객을 지그시 바라보는 카메라는, 역사의 유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우슈비츠를 들고 나는 이들을 그렇게 바라만 보았다. 한 테이크가 하나의 시퀀스가 되는 단순한 구조다. 더위에 지쳐 느릿느릿 돌아다니는 관광객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사운드는 통제되어 있었다. 파이프를 탕탕 두들기며 떨어지는 물소리는 테러와 고통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처럼 들린다. 같은 유태인의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선발되고 일이 끝나고 나면 처형당해 열세 번이나 바뀐 존더코만도, 그들 중 13기가 일으킨 1944년의 .. 2017. 5.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