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작은 우주들』(김운찬 옮김, 문학동네, 2017)이 잘 읽히지 않는 이유를 알아낸 것 같다. 그의 글이 노인의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의 경계(트리에스테),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경계(안테르셀바)를 헤매면서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군상을 그들의 복잡다단한 역사와 단조로우면서도 변화무쌍한 자연경관과 함께 조명한다. 이때 마그리스는 늙은이들을 거듭 소환한다. 온화한 늙은이, 소란스런 늙은이, 심술궂은 늙은이까지 가리지 않는다.
도나우 강의 도도한 흐름과 함께하는 『다뉴브』와 비슷한 스타일로 쓰였지만, 『작은 우주들』에는 그 제목 그대로 '작은 우주들microcosmi'에 대한 무한한 집착이 보인다. 죽어가는 것을 향한 끊임없는 탐구가 거기에 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공감하지 못한 채 문장과 문장 사이를 겅중겅중 건너뛸 뿐이다. 너무나 낯선 그 우주들 안에 맴도는 것이 답답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글에는 나이가 들면서 자기 안에 있을 거라고 상상하는 광대한 세계를 끄집어내지 못해 안달인 어떤 늙은 남자들에게는 없는 미덕이 있다(그런 남자들의 글은 대부분 아무것도 말해 주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내면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바로 눈앞의 작은 세계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거대한 이론을 창안하지 못해 안달하기보다 차라리, 코앞에 놓인 꽃의 냄새를 맡고 흘러가는 것들 그 자체의 무상함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태도가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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