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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Voice

열병 같은 봄이 지났다

by parallax view 2017. 7. 7.

  열병 같은 봄이 지났다. 여름에는 어딘가 이성적인 구석이 있다. 작열하는 태양에 감성이 타들어 가기 때문이라고 둘러대 본다. 쏟아지는 비가 잠시 몸을 습기로 뒤덮지만 그때뿐이다. 아직 여름휴가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일을 핑계로 미적대다 하루이틀 짧게 어딘가 갔다 오는 게 전부일 것이다. 아직도 몸은 여름방학을 기억하고 있는지 놀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딱히 방학이라고 해서 어디 멀리 갔다 온 적이 없기 때문에 허파에 헛바람만 들락날락한다. 올해의 절반은 제법 길었다.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나는 그 안에서 도로 어려졌다. 아직도 자신이 어른이라는 자각이 없다. 어른, 꼰대, 그런 건 되고 싶지 않지만 "그만큼 나이를 먹었으면 나이값을 하란 말이다" 라고 되뇐다. 이걸 줄여서 '어른'이라고 하는 거겠지.


  요즘은 홍제천에서 망원유수지로 혹은 망원유수지에서 양화대교를 찍고 도로 홍제천으로 돌아가는 식으로 걷곤 한다. 몇 년 전에 걷고 달린 이후로 한동안 갈 일이 없었던 길을 다시 걷는다. 걸을 때마다 좋은 길이다. 정돈된 하천이 있고, 잘 깔아 놓은 보도가 있고, 차들이 바삐 오가는 고가가 있고, 운동기구 위에서 늙은 몸을 굴리는 사람들의 아파트가 있다. 인공적인 자연(우리는 인공적인 자연 외의, 말 그대로 '자연'에서는 살 수가 없다. 스스로 그러한 곳自然은 인간에겐 죽음이나 다름없다)을 보고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다. 홍제천과 불광천에는 이따금씩 왜가리나 쇠백로 따위가 출퇴근을 반복한다. 양화대교 아래 가면 그들은 오도카니 서서 먼곳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들을 쳐다보는 인간들 따위는 아랑곳없이. 


  망원유수지에는 사람들이 왜가리처럼 모여든다. 한밤중에는 베개와 이불까지 챙겨 단잠을 자는 이들도 있다. 선선한 바람이 그들을 유혹했기 때문일 것이다. 올 여름은 작년과는 다를 것이다. 작년이 유난히 더웠기도 했고, 그냥, 조금은 순하게 느껴진다. 그래. 그만큼 괴롭혔으면 올해는 좀 순순해지렴. 내 별것 없는 인생도, 그렇게. (17. 06. 27.) 


ⓒ rare24c i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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