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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을 회상하며 나데주다 꼰스딴찌노브나 끄룹스까야(크룹스카야)의 (최호정 옮김, 박종철출판사, 2011) 읽기를 마쳤다. ‘레닌을 추억하며’가 좀 더 제목으로 적절할 듯한 이 회고록은 크룹스카야가 레닌을 만나 평생의 반려이자 혁명 동지로서 살아온 삶을 기억에 의존해 쓴 것이다. 책은 원래 그녀가 레닌을 처음 만난 1893년부터 1907년까지를 다룬 제1부와 1908년부터 1917년까지를 다룬 제2부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1918년부터 1919년까지를 다룬 제3부를 1933년부터 1938년에 걸쳐 덧붙임으로써 현재의 판본으로 출간되었다. 제1부가 제정 러시아의 억압적인 환경과 1905년 혁명을, 제2부가 1905년 혁명의 실패와 제1차 세계대전,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1917년 2월 혁명부터 10월 혁명 직전까지를.. 2023. 8. 15.
냉전의 지구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의 (에코리브르, 2020)를 읽었다. ‘냉전’과 ‘제3세계’를 탁월하게 연결한 저작이다. 지은이가 밝힌 대로 1970~1980년대의 제3세계 지역에 집중한 것도 옳은 선택으로 보인다. 민족해방의 열기가 어떻게 해방된 사회의 건설로 이어지지 못했는지를 더없이 잘 보여주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탈냉전’과 ‘신냉전’이라는 레토릭이 역사와 현실을 오히려 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전은 전후체제와 마찬가지로 끝나지 않았다. “‘훨씬 더 강한’ 초강대국(물론 힘의 제한은 있었지만)과 다른 초강대국 간 대결(646쪽)”이었던 시기로서 냉전은 끝났다. 하지만 ‘자유의 제국’(미국)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제3세계 전반을 조정하려는 경향과 그로부터 비롯된 개입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 2023. 5. 2.
신유물론: 인터뷰와 지도제작 릭 돌피언과 이리스 반 데어 튠의 (박준영 옮김, 교유서가, 2021)을 읽었다. 저자들은 로지 브라이도티, 마누엘 데란다, 캐런 버라드, 퀑탱 메이야수를 신유물론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설정하고, 신유물론 개념의 교집합으로 '횡단성'과 '수행성'을 지목한다. 그들이 신유물론에 관심을 갖고 이를 지지하는 까닭은 페미니즘이 처한 이론적 곤경, 즉 생물학적 본질주의와 사회구성주의 사이의 진동을 신유물론으로 돌파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으로 보인다. 저자들은 이분법을 근대의 상징으로 간주하며 격렬하게 비난하고 이원론을 일원론으로 대체하기 위해 '횡단'(들뢰즈·가타리)과 '간행'(버라드)을 거듭 강조한다. 이들의 이론적 태도는 신유물론으로 묶이는 이론적 담론이 (분과학문으로서) 철학이라기보다 (학제간연구로서) 문화연.. 2023. 3. 11.
문헌학, 극소 베르너 하마허의 (조효원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2)는 ‘문헌학philology’을 해체주의 이후의 해체주의로서 탈-언어화하는 작업이다. 하마허는 독서 불가능성의 알레고리(폴 드 만)를 반복함으로써 아이러니, 자동인형(기계장치)의 반복성, 이율배반, 반성하는 의식으로서 자기의식, ‘세계정신으로서의 니힐리즘(야콥 타우베스)’, 보편/범주에 대한 거부와 같은 해체주의의 공리를 정확하게(그리고 모호하게) 반복한다. 언어의 탈언을 ‘위한’ 투쟁은 언어의 폭력적인 규정을 통해 언어의 존재 조건(아무것도 아님)을 무화하려는 시도, 즉 나치즘과의 투쟁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 해체주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즉 유대인) 없이 말끔한 세계라는 가짜 유토피아에 맞선, 세속화된 세계의 메시아 없는 메시아주의(또는 유토피.. 2022.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