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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인 모세 얀 아스만의 (변학수 옮김, 그린비, 2010) 완독. 프로이트의 에 대한 유대인 이집트학자의 긴 주석. ‘억압된 것의 회귀‘로서의 기억에 천착하는 이 책은, 홀로코스트의 원인을 제공한 건 다름 아닌 우리 유대인이 아닌가 라는 저자의 인식을 드러낸다. 역사(또는 역사적 기억)란 고통(트라우마)의 다른 이름이다. 2024. 7. 22.
테드 창의 소설집 (김상훈 옮김, 엘리, 2019)을 다 읽었다. 는 예전에 북스피어판을 읽어서 패스. 표제작 은 문장이 정갈하니 아름답고, 과 은 각각 시간여행과 다세계 해석을 명민하게 풀어낸다. 은 매체이론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더욱 흥미롭게 볼 단편이다(또한 이 단편에는 우리 기억의 왜곡과 일그러진 자아상을 냉정하게 돌아봄에 따른 섬뜩함이 따라붙는다). 늘 그렇듯 김상훈 선생의 번역에 많이 빚진다.선집에 일관된 문제의식은 자유의지로 보인다. 우리가 물리적 객체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 주체인 것은 자유의지 때문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그것이 제아무리 허구더라도 우리에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 95쪽)”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테드 창의 소설을 하드 SF라는 범주로만 독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 2024. 7. 22.
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의 (노고운 옮김, 현실문화, 2023)는 이제 너무나 상투적인 말이 되어버린 ‘기후위기의 시대’에 인간이 망쳐놓은 세상에도 어떻게 생명이 자라나고 생존할 수 있는지를 면밀하게 탐색한 민속지다. (보통은 작가거나 신문 기자, 편집자인) 눈 밝은 독자들이 이 책의 존재를 알아보고는 기꺼이 ‘올해의 책’으로 올려놓고 있다. ‘자본주의에 철저하게 잠식당해 죽어가는 지구’라는 이미지에 절망하기보다, 폐허가 된 산업비림 속에서 더욱 잘 자라는 소나무와 공생하는 송이버섯(트리콜로마 마쓰타케)의 궤적을 추적함으로써 인간 대 비인간, 문명 대 자연이라는 이분법을 가로지르려는 서술이 그 어떤 대안보다 희망적으로 읽혔기 때문일 것이다(지은이는 ‘협력적 생존’이라는 말로 독자들을 송이버섯의 세계로 이끄는 .. 2023. 12. 25.
지배와 비지배 곽준혁의 (민음사, 2013)는 부제대로 마키아벨리의 또는 을 장별로 해설하는 책이다. 마키아벨리 전공자인 지은이는 우리가 마키아벨리의 사유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를 깊이 있게 읽어야 하며 그 밖의 다른 길은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를 위해 그는 우리에게 또는 으로 알려진 ()와 , , 희곡 등을 주석으로 삼고 여러 연구자의 견해를 참고하며 를 꼼꼼하게 독해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에 대해 받는 인상은 당혹스러운 것이다. 거칠게 말해 는 ‘오독을 고의로 불러일으키는 텍스트’ 또는 ‘오독을 적극적으로 욕망하는 텍스트’라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서두에서 제안했던 분류법에 따라 군주국을 분류하지 않았고, 서술에 있어서도 모순과 아이러니를 곳곳에 노출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는 .. 2023.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