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 아르네 베스타의 <냉전의 지구사: 미국과 소련 그리고 제3세계>(에코리브르, 2020)를 읽었다. ‘냉전’과 ‘제3세계’를 탁월하게 연결한 저작이다. 지은이가 밝힌 대로 1970~1980년대의 제3세계 지역에 집중한 것도 옳은 선택으로 보인다. 민족해방의 열기가 어떻게 해방된 사회의 건설로 이어지지 못했는지를 더없이 잘 보여주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탈냉전’과 ‘신냉전’이라는 레토릭이 역사와 현실을 오히려 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전은 전후체제와 마찬가지로 끝나지 않았다. “‘훨씬 더 강한’ 초강대국(물론 힘의 제한은 있었지만)과 다른 초강대국 간 대결(646쪽)”이었던 시기로서 냉전은 끝났다. 하지만 ‘자유의 제국’(미국)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제3세계 전반을 조정하려는 경향과 그로부터 비롯된 개입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냉전은 끝나지 않는다.
현재의 미중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냉전 질서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자유민주주의 vs. 권위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설정 또한 마찬가지다(반공주의로서의 자유민주주의). ‘정의의 제국’ (지은이는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평등의 제국’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련은 미국과의 군비 경쟁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무너졌다. 고르바초프가 레닌주의의 이상에 충실하고자 했기에 소련의 해체를 가속화했다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다. 여전히 냉전의 한복판에 놓여 있고 미국의 도움을 받아 고도경제성장을 이룬 (그러나 때로 미국과 갈등을 빚으면서 독자적인 영역을 찾으려 했던) 한국인은 자국의 특수성과 예외성에만 눈을 돌려왔다. 냉전을 지구사적 흐름으로 살피면서 역사적 기억을 객관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그런 의미에서 남북한은 여전히 ‘제3세계 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작업에 큰 도움이 된다. 옮긴이들의 노고에 감사한다.
“제3세계의 시각에서 보면 미국이 개입한 결과는 진정으로 암울했다. 미국은 선한 세력(미국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렇게 믿었겠지만)이 아니었으며, 미국의 급습은 많은 사회를 황폐화시켰다. 제3세계는 스스로 초래한 일의 결과로 향후 재난에 취약해지고 말았다. 지금까지 미국이 생각했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안정적 조합은 남한과 대만이라는 두 반쪽 국가에서만 가능했으며, 1945년부터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약 30개국에 이르는 나라에서는 현실화되지 못했다. 이 성적표가 보여주는 인간적 비극의 결과는 적에게든 친구에게든 심대했다. 게다가 이는 많은 국가에 여전히 진행 중인 비극으로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까지 파괴하고도 남을 지뢰와 그 밖의 무기가 배치되어 있는 상태다(647~6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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