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준혁의 <지배와 비지배: 마키아벨리의 <군주> 읽기>(민음사, 2013)는 부제대로 마키아벨리의 <군주> 또는 <군주론>을 장별로 해설하는 책이다. 마키아벨리 전공자인 지은이는 우리가 마키아벨리의 사유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군주>를 깊이 있게 읽어야 하며 그 밖의 다른 길은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를 위해 그는 우리에게 <로마사 논고> 또는 <정략론>으로 알려진 <리비우스의 로마사 첫 열 권에 대한 강의>(<강의>)와 <전술론>, <피렌체사>, 희곡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등을 주석으로 삼고 여러 연구자의 견해를 참고하며 <군주>를 꼼꼼하게 독해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 책을 통해 <군주>에 대해 받는 인상은 당혹스러운 것이다. 거칠게 말해 <군주>는 ‘오독을 고의로 불러일으키는 텍스트’ 또는 ‘오독을 적극적으로 욕망하는 텍스트’라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서두에서 제안했던 분류법에 따라 군주국을 분류하지 않았고, 서술에 있어서도 모순과 아이러니를 곳곳에 노출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는 교황이 이탈리아의 통일을 방해한다고 비난하면서도, 교황(특히 당시 교황의 가문이었던 메디치가)에게 이탈리아를 구원할 가능성이 주어졌다고 말할 때 절정에 이른다.
지은이의 독해를 따라가다 보면 마키아벨리가 정말로 <군주>를 메디치가에 헌정하려고 했는지 의심스러워진다(잘 알려진 대로 장자크 루소는 마키아벨리를 군주들의 음모를 폭로한 인물로 상찬했다).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는 레오 스트라우스의 지적대로 마키아벨리를 ‘악의 교사’라고 부르는 게 정당하다고 느껴질 만큼 냉혹하다. 사랑받는 게 어렵다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게 낫고, 최대한 경멸과 증오를 피하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미움을 전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지은이가 정당하게 파악했듯이 마키아벨리에게 있어 군주와 (독재자의 고대적 표현으로 간주되어온) 참주 사이의 구분도 <군주> 속에서는 흐릿해진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혐오스럽기까지 한 이 텍스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아이러니와 이율배반으로 가득한 <군주>,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군주>는 통일 이탈리아의 불가능성을 인지하면서도 불가능을 가능케 할 우연 또는 돌발을 희망한 마키아벨리의 수사 전략이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그람시가 마키아벨리에 대해 내린 ‘조숙한 자코뱅주의자’라는 평가는 이 대목에서 ‘조숙한 루소주의자’라고 바꿔도 좋을 듯하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루크레티우스)의 독자, 고대 원자론의 신봉자인 마키아벨리는 운(포르투나fortuna)을 극복하는 군주(와 인민)의 역량(비르투virtu)조차 운에 얽매여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탈리아를 통합할 만큼 강하지 않지만 분열시킬 만큼의 힘은 있는 교황과 그의 가문이라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결의다.
<지배와 비지배>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지은이가 J. G. A. 포칵이나 퀜틴 스키너 같은 지성사가(특히 케임브리지학파)의 관점과 달리, 마키아벨리를 고전적 공화주의의 계승자가 아니라 이기적 개인을 중심에 둔 새로운 공화주의자라고 해석하는 대목이다. (키케로가 대변하는) 정직과 신의 같은 공화국의 미덕이 아니라 ‘새로운 군주’의 지극히 이기적인 선택이 ‘새로운 공화국’을 세우는 데 더 적합하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관점이라는 해석이다.
‘오독을 적극적으로 욕망하는 텍스트’ <군주>는 바로 그 오독 가능성 때문에 끊임없이 읽히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그람시가 <군주>에서 ‘현대의 군주’로서의 정당을 끄집어낸 것은 <군주>가 새삼 대단해서라기보다 무솔리니의 마키아벨리 독해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했을 터이지만, 그것 또한 일종의 ‘생산적인 오독’으로 보인다. 알튀세르가 마키아벨리를 ‘마주침의 유물론’ 또는 ‘우발성의 유물론’의 계보에 넣은 것도 같은 방식의 오독이다. 피렌체 공직에 복귀하기 위해 쓰인 <군주>는 마키아벨리에게 ‘실패한 자소서’였지만, 처음부터 실패가 예정된 <군주>는 바로 그 아이러니 때문에 여전히 강력한 텍스트로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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