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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세계 끝의 버섯

by parallax view 2023. 12. 25.

애나 로웬하웁트 칭의 <세계 끝의 버섯: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노고운 옮김, 현실문화, 2023)는 이제 너무나 상투적인 말이 되어버린 ‘기후위기의 시대’에 인간이 망쳐놓은 세상에도 어떻게 생명이 자라나고 생존할 수 있는지를 면밀하게 탐색한 민속지다. (보통은 작가거나 신문 기자, 편집자인) 눈 밝은 독자들이 이 책의 존재를 알아보고는 기꺼이 ‘올해의 책’으로 올려놓고 있다. ‘자본주의에 철저하게 잠식당해 죽어가는 지구’라는 이미지에 절망하기보다, 폐허가 된 산업비림 속에서 더욱 잘 자라는 소나무와 공생하는 송이버섯(트리콜로마 마쓰타케)의 궤적을 추적함으로써 인간 대 비인간, 문명 대 자연이라는 이분법을 가로지르려는 서술이 그 어떤 대안보다 희망적으로 읽혔기 때문일 것이다(지은이는 ‘협력적 생존’이라는 말로 독자들을 송이버섯의 세계로 이끄는 데 성공한 듯하다).

 

많은 독자가 지적하듯 지은이는 자본주의의 내부이자 외부인 ‘주변자본주의적(pericapitalist)’ 장소가 자본주의로부터 완전히 해방적인 공간이라고 단언하지 않는다. 송이버섯이 보여주듯, 인간이 인위적으로 생산할 수 없고 자본주의적 생산 회로에 편입될 수 없는 생명체라도 자본주의라는 ‘번역 기계’를 통해 (마르크스가 <자본> 1권에서 이야기한, “언뜻 보면 자명하고 평범한 물건”으로 보이지만 “형이상학적인 교활함과 신학적인 변덕으로 가득 찬 매우 기묘한 물건”인) ‘상품’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간은 채집인으로서, 중간 구매자로서, 수출업자로서, 또 도매상과 소매상으로서, 마지막으로 최종 소비자로서 소나무-송이버섯의 연합 또는 ‘배치(assemblages)’에 개입하고, 그 자체로 송이버섯의 상품화 회로라는 배치의 일부로서 움직인다[비록 최종 소비자의 손에서는 ‘선물(gifts)’로 쓰인다고 하더라도]. 애나 칭은 그 과정을 특정한 도덕감정 없이 되도록 담담하게 기술하며, (도나 해러웨이와 마릴린 스트래선과의 지적 연결망 속에서) ‘패치(patches)’ 또는 ‘패치성(patchiness)’이라고 부르는 ‘부분적인 연결(partial connections)’의 배치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세계 끝의 버섯>은 내용적으로 이종간 얽힘(interspecies entanglements)을, 형식적으로 학제간 연구를 다루지만 여전히 인류학적 저작으로 남아있다. 이는 송이버섯 채취에 연루되어 있는 각기 다른 사람들(미국 오리건주의 미엔인과 몽인 등을 비롯해, 버려진 숲에 개입하는 일본의 마쓰타케 크루세이더스, 중국 윈난성의 츄슝이족 등)의 생활을 노련한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대목에서 역력하게 드러난다. 이때 여러 인간과 비인간, 공식적 지식과 비공식적 지식을 가로지르는 것은 지은이가 여러 차례 강조하는 ‘불확정성(indeterminacy)’과 ‘불안정성(precarity)’이다. 지은이의 관점을 요약하자면, 우리의 현재만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 모두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 잠식당했다고 느낄 때, 바로 이 두 가지 조건이 이 책의 부제인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물론 단일한 진보의 서사를 거부하는 지은이는 마르크스에게서 ‘소외’ 개념만을 뽑아내려 할 뿐, 어셈블리지 이론 같은 동시대 이론적 담론의 자장 안에서 작업한다. 그렇기에 애나 칭은 ‘인식(cognition)’이 아니라 ‘알아차림(noticing)’을 강조하는 것이다].

 

프레드릭 제임슨의 표현을 빌자면 ‘후기자본주의의 문화 논리’라 할 만한 불확정성과 불안정성은 지금 시대의 이데올로기적 조건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여기서 나는 지은이가 ‘알아차림의 기술’이라고 칭한, 진보에 대한 서사 없이 현재를 직시하는 태도를, 자본주의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여전히 불충분하지만 그럼에도 유효한 ‘인지적(인식적) 지도 그리기의 기술(techniques of cognitive mapping)’로 바꿔 부르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이 책을 ‘포스트휴머니즘 인류학’의 표본으로 강조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을 넘어서.

 

“내가 여러분에게 버섯을 건넬 순 없지만, 나를 따라 이 프롤로그 서두의 시에서 예찬한 ‘가을 향기’를 음미해보길 바란다. 이 향기는 일본에서 매우 귀히 여기는, 향이 진한 야생 버섯인 송이버섯 냄새다. 송이버섯은 가을의 상징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 냄새는 여름의 풍요를 상실한 슬픔을 환기시키지만, 가을의 날카로운 강렬함과 고조된 감수성 또한 불러일으킨다. 전 지구적 진보의 풍요로운 여름이 끝날 때, 이러한 감수성이 필요할 것이다. 가을 향기는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이 부재하는 보통의 삶으로 나를 데려간다. 이 책은 20세기에 안정성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던 근대화와 진보의 꿈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나보다 앞서 많은 분석가가 이미 그러한 꿈을 분석한 바 있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는 그런 꿈에 기대어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 같이 알고 있다고 여겼다. 이제 내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근대화와 진보의 꿈에 대한 비판 대신, 그런 발판 없이 사는 삶에 상상력을 동원해 도전해보는 일이다. 만약 우리가 송이버섯 진균이 갖는 매력에 마음을 연다면, 송이버섯은 우리를 호기심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그러한 호기심이야말로 불안정한 시대에 협력해 생존하기 위한 첫 번째 필요조건이다.”(23~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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