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근대세계사 이야기』(로버트 B. 마르크스, 윤영호 옮김 / 코나투스, 2007)는 유럽 중심주의에 경도된 세계사를 세계화와 생태학적인 면으로 다시 살펴보자는 콘셉트로 쓰여진 개론서다. '세계화'로 번역되었지만, 나는 지구화globalization가 더 적합한 표현이라고 본다. 언뜻 보기로는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와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섞어놓았다는 인상이다. 학부 1학년생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대중서라 깊이를 기대하기보단, 15~19세기까지의 세계사를 교과서로 다시 본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리오리엔트』에 대한 사전 작업 겸, 내가 알고 있는 세계사 지식을 재확인해 보는 작업으로 삼았다.
요점은 '서구의 부상'도, 그 근거로 들이밀어지는 경제적 우월성이나 문화적 격차들(극단적으로는 우생학적 표본까지)이 모두 허구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문화 상대주의를 당연시하는 사람들로서는 너무 뻔한 이야기일 수 있겠다. 로버트 마르크스(이름은 Robert B. Marks인데, 왜 '마르크스'라고 번역했는지 좀 의문이다. 여기서 '마륵스'를 써야 하나?-_-;)는 인간이 생태학적 구(舊)질서의 한계 안에서 생활해 왔고, 이 질서 안에서 생존하는 한 팽창의 크기도 제한되어 있다고 본다. 농업이 태양에서 에너지원을 찾는 유기적 활동이고, 인간의 몸과 사회 모두 일종의 유기적 질서를 갖추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되겠다(몸은 생물학적으로, 사회는 기능적으로 그렇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패턴으로서의 역사를 염두에 둔 것 같다. 예컨대 폴라니는『거대한 전환』에서 인류학 연구를 직접 제시하며 '시장 패턴의 진화'를 말하는데, 이건 인류학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인 듯싶다. 마찬가지로 세계사를 유기적 패턴으로 보았을 때(이 '유기적 패턴'이라는 표현은 임의로 쓴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여러 문명들은 그 패턴 안에서 생성과 소멸을 거듭해온 셈이다.
하지만 그런 패턴에 어긋나는 변화가 바로 석탄에 기반한 산업 혁명이다. 이전의 '신석기 혁명(농업 혁명)'이 유기적 패턴 안에서의 변화라면, 산업 혁명은 그 틀에서 이탈해 (반)영구적이지는 않지만 자체적인 동력으로 움직이는 매커니즘을 구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 매커니즘은 서구의 '자연적인' 성장에 기인한 게 아니라, 어쩌다 영국에 석탄이 났기 때문이라는 게 지은이의 관점이다. 18세기 중국과 영국 모두 유기적 시스템 안에서 성장의 한계에 부딪혔지만, 한계를 극복하게 된 계기는 석탄의 유무라는 역사적 우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인류는 태양 에너지와 결별하면서 더 많은 성장이 가능했지만, 그 댓가로 산업의 부침이라는 또 다른 '자연'을 겪어야 했다. 책은 시장 자본주의 혹은 자기조정 시장의 탄생과 유지를 암시한다.
유럽 이외의 문명사를 고찰하면서 동아시아사를 끄집어 내는 게 '세계사'로 중국사와 일본사를 배우는 한국인 입장에서 그리 새로운 시각은 아닐 것 같다. 그럼에도 지은이가 중국사 전공자라는 게 나름 장점이다. 다만 역사의 우연을 강조한 나머지, "'정화의 남해 원정' 이후 중국이 인도양 무역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면", "만약 식민지가 없었다면" 이라는 식의 서술이 너무 많아서 자칫 나이브해 보일 수도 있다. 또, 오세아니아와 아프리카 남부가 제외되었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한계가 있다. 어디까지나 사전 작업으로 읽어볼만 하다. 지구화 현상의 현재적 상황을 좀 더 알고 싶다면 데이비드 헬드 등의 『전지구적 변환』이 도움될 듯하다. 이 또한 유럽 중심주의 아니냐, 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지구화를 사회과학의 분석 틀로 이해하고자 하는 학제간 연구라는 측면에서 무척 유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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