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거대한 전환』(칼 폴라니, 홍기빈 옮김 / 길, 2009)을 이야기했을 때가 작년 3월이다. <시장을 사회에 착근시켜라 : 시장주의에 대한 오히려 급진적인 대안>을 통해 김대호 씨를 비판했을 때, 『거대한 전환』을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를 읽으면서 폴라니 사상을 개략적으로 잡아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거대한 전환』을 읽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다.
사실 칼 폴라니(1886-1964)의 자본주의 비판은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자본주의 (생산·유통·소비) 체제는 허구이고, 가격를 매개로 해 스스로 조절하는 시장(자기조정 시장)은 유토피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산요소인 노동, 토지, 자본은 원래 상품이 아닌 인간, 자연, 생산 조직을 억지로 상품화한 결과이기 때문이다(상품 허구commodity function). 자기조정 시장이 국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기만이며, 각 사회 계급들(토지를 보유한 지주 계급(귀족)이나 농민 계층, 노동력을 판매하는 노동 계급)은 자기조정 시장으로 인한 파국에 저항함으로써 이중적 운동을 벌인다. 게다가 자기조정 시장은 시장 자체의 논리로 인해 붕괴되기 때문에(구조적인 통화 불안정) 중앙은행 등의 기구를 통해 시장의 논리에 반함으로써 시장을 지켜내야 한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이렇게만 보면 폴라니의 주장은 지금에 와서 별 특이할 것이 없다. 게다가 아무리 자기조정 시장이 유토피아라고 주장한다 한들, "어차피 자본주의가 지금의 현실"이라는 냉소를 맞받아치기에는 역부족이다. 또, 박가분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인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윤리적인 비판이 왜 공허한지를 지적한 바 있다. 폴라니 역시 책 마지막 장에서 기독교 사회주의자로서의 인간에 대한 연민을 드러냄으로써 한계를 드러내는지도 모른다(박가분, <신고전학파의 합리성의 한계로부터 '데카르트적 코기토'를 향하여>).
하지만 폴라니의 강점은 단순명쾌한 주장이나 휴머니즘적 연민에 있지 않다. 바로 자본주의 세계의 붕괴라는 거대한 '사건'을 거시적으로 규명하면서도, 그 사건에 현미경을 들이대 미시적인 경로를 파헤치는 끈기에 있다. 여기에는 폴라니의 다양한 지적·실천적 편력이 작용하는 듯하다. '급진시민당' 초대 서기장이었고, 『오스트리아 경제』의 국제 문제 담당 선임 편집자로 수십 년 동안 활동한 저널리스트였으며, 영국으로 건너간 뒤로는 노동자 교육협회 등을 통해 교육가로 활동했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의 리오 휴버먼처럼 폴라니 역시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살았던 것이다(leopord,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당시 제2인터내셔널의 사회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국경을 넘는 연대와 교류 속에 있었다. 또,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극우 파시스트 세력을 피해 영국으로 넘어가고, 다시 미국과 캐나다로 이주하며 '유동하는 세계 시민'으로 살았기에 시야도 상당히 넓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런 점에서 폴라니는 국제정치학, 경제학(폴라니는 오스트리아 한계효용학파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경제)인류학(트로브리앙 제도의 쿨라를 소개한 말리노프스키, 투른발트, 마거릿 미드 등 인류학자들의 연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사회학 등을 넘나들며 자기조정 시장을 말끔하게 해부할 수 있었다고 본다.
한편, 폴라니를 국가주의자로 규정짓는 경향도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이건 1914년 이전까지의 세계 질서를 분석하는 『거대한 전환』 제1부에 대한 해석 때문인 듯하다. 실제로 국제 질서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냉정하고 현실주의적이다. 평화란 결국 자유 무역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는 지적이 그렇다. 그러나 폴라니는 국가가 시장을 견제할 가능성을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문제의 해결을 국민국가의 주권에만 호소하고 있지 않다. 이건 그가 오스트리아의 기능적 민주주의자로서 노동 계급이 참여하고 지도하는 혼합 경제를 이상적으로 생각했다는 걸 떠올린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노동 조합, 산업 결사체, 협동 조합, 사회주의적 자치 단체, 사회주의 정당 등이 경제 생활의 조망에 기여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은, 노동 계급 운동의 궁극적 목적과 목표가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제4장 우리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몇 가지 의견들>, p.117-118).
다시 『거대한 전환』으로 돌아가자. 폴라니가 자기조정 시장의 도래와 그로 인한 파괴가 상징적으로 드러난 사건으로 지목하는 것은 스피넘랜드 법이다. 원래는 농촌의 빈민들이 도시 노동자와의 임금 격차로 인해 도시로 이주하는 것을 방지하고 빈곤의 심화를 막기 위해 1795년에 영국에서 제정된 법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그 후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 오히려 빈곤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빈민들은 몇 푼 안 되는 급여에 얽매여 짐승같은 삶을 살았고(기본소득 논의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문제다), 지주들은 이를 이용해 노동력을 착취했다. 빈곤은 도시로 확장되고 또 심화되었다. 빈민의 거대한 물결은 이후 정치경제학의 탄생과 직결된다(leopord, <정치경제학의 탄생>).
1834년 이전까지는 영국에 경쟁적 노동 시장이 확립되지 않았고, 따라서 산업 자본주의도 사회 체제로서 그 후에야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경쟁적 노동 시장이 생기자마자, 그 즉시 사회의 자기 보호 또한 시작되었다. 각종 공장법과 사회법의 제정, 정치적 측면과 산업적 측면 모두에서의 노동계급 운동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시장 매커니즘이라는 전대미문의 위험을 막기 위한 바로 이러한 시도들 속에서 노동 보호 활동이 사회의 자기조정 기능과 충돌하여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고 말았다. 일단 1834년의 개혁 구빈법이 발효한 이후로는 시장 체제의 고유한 논리가 19세기의 사회사 전체를 결정해버렸다고 말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역동성의 출발점이 스피넘랜드 법이었다. (p.260-261)
그런데 폴라니는 스피넘랜드 법이나 구빈법 논쟁(정치경제학의 역사에서 구빈법 논쟁은 아주 중요하다. 리카도 vs 맬서스 등등)을 서술하는 데 있어 아주 냉정하게 기술할 뿐더러, 각 국면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부각시키면서 독자로 하여금 당혹감을 안겨 준다. 이 점이 재밌는데 나는 폴라니가 자기조정 시장과 이중적 운동이 동시에 출현하고, 또 이중적 운동 역시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본다. 즉, 이중적 운동double movement은 일종의 도플갱어double walker다. 이중적 운동은 단순히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미셸 푸코는 동명의 강의집에서 신자유주의 지구화로 인한 파괴성을 일찌감치 통찰한 것 같다)는 신호만이 아니라, 자기조정 시장과 갈등하면서 위기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둘 사이의 긴장을 틈타 파시즘이 도래한다. 흔히들 파시즘은 이탈리아 무솔리니 정권과 독일 히틀러 정권(조금 더 확장하면 에스파냐 프랑코 정권과 칠레 피노체트 정권, 더 악의적으로는 소비에트 스탈린 체제까지)에 국한된 것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폴라니는 파시즘이 자기조정 시장 붕괴로 인한 대응 중 하나이며, 그 현상은 전지구적인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점에서 파시즘을 지배 계급(자본 계급)과 피지배 계급(노동 계급) 사이의 교착 상태에서 등장한 '카이사리즘'으로 본 그람시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듯하다. 그람시가 역사유물론의 입장에서 파시즘을 다룬 것과 달리, 폴라니는 자기조정 시장 실패의 결과로 보기 때문이다(leopord, <그람시의 옥중수고1>).
여기서 잠시 폴라니와 그람시 사이의 지적 긴장을 확인해 보는 것도 좋겠다. 폴라니는 맑스주의의 경제결정론과 역사유물론에 비판적이었던 오언주의자였고(그는 로버트 오언을 '사회'를 발견한 천재이자 예언자로 보았다), 『경제학 철학 수고』를 쓰던 시기의 청년 맑스에 동의했으며, 오스트리아 사회주의자이면서, 볼셰비키 중 하나인 니콜라이 부하린과 이론적으로 일치(혼합 경제)했다고 한다. 반면에 그람시는 맑스-레닌주의자로서 관념론적인 오스트리아 사회주의에 비판적이었고, 맑스의『정치경제학 비판』을 자주 인용했으며, 『대중 독본』을 쓴 부하린을 가차없이 비판하기도 했다(leopord, <그람시의 옥중수고2>).
그런 한편, 노동 계급의 지적·도덕적 지도(헤게모니)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이 둘은 일치한다. 둘 다 정치적 실천을 매우 중시했다는 점에서, '인터내셔널'의 사회주의자들이라는 점에서 공통 분모가 있는 듯하다(이 둘은 연배도 비슷하다. 그야말로 '세기말의 인간들'이었다). 또, 속류 맑스주의의 경제결정론에 매우 비판적이었으며(그러나 그 이전부터 엥겔스는 경제결정론은 맑스의 주장이 아니었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에 회의적이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폴라니는 스탈린이 지도력을 확보했던 데에는 '일국 사회주의 노선'이 현실적으로 유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마찬가지로 그람시 역시 이탈리아라는 지역 문제를 방기한 국제주의 노선은 실현불가능하고, 노동자-농민의 동맹 없는 사회주의 역시 무력한 것이라고 보았다(이것이 바로 '남부 문제'이며, 그람시의 사유는 탈식민주의와 연결된다). 이들은 그람시의 '진지전' 개념에서도 조우하는 듯하다. 이후 국제정치경제체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 폴라니의 사상과 그람시의 사유는 네오그람시안의 입장에서 재회한다. 이야기는 이쯤 하고 다시 파시즘으로 돌아가자.
그런데 이러한 전반적 혼란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로 결단을 내린 집단들 중에는 기존 국제 체제의 권력 배분 상태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여러 강대국들도 있었다. (…) 독일은 무너져가는 국제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해 아직도 발판이 되어주던 전통적 세계 경제의 몰락 또한 가속시키려 기를 쓰고 있었으며, 또 적대국들보다 빨리 시장경제의 몰락을 예측하고 준비하여 기선을 제압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독일은 자신이 대외적으로 지고 있는 정치적 의무를 저버리는 게 더 편리하다고 보이자 의도적으로 국제적인 자본과 상품, 통화 체제에서 스스로를 끊어내버렸다. 외부 세계가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장악력을 줄이는 것이 그 목표였다. 독일은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추구하는 데에 필요한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경제적 자급자족을 육성했다. (p.579)
파시즘의 코포라티즘 계획 경제가 탄생한 배경이다. 폴라니는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각국이 국제 금본위제를 차례로 포기한 것이야말로 자기조정 시장 붕괴의 신호로 보았고, 실제로 1929년 세계 대공황이 발생하면서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파국을 맞았다. 폴라니가 스피넘랜드 법의 제정과 함께 금본위제 도입을 자기조정 시장의 탄생과 붕괴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본 이유다. 화폐 가치를 금에 고정시키고 교환율을 정한(금태환) 금본위제도는 고정환율제로서 국제무역과 자본이동의 안정성을 위한 전제 조건이었다. 하지만 국가는 화폐 가치를 고정시켜야 했기에 언제나 재정 건전성 압력에 봉착하기 마련이었다(이건 변동환율제가 보편화된 현재도 마찬가지다). 세계 경제가 번영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는 듯보였지만, 화폐가 시장에 의해 조절되는 매커니즘은 구조적인 불안정성을 갖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1차 대전과 2차 대전은 경제 위기(2차 대전에는 파시즘이 덧대어졌다)의 결과였지, 원인은 아닌 것이다.
폴라니의 진단은 미국의 1971년 금태환 정지 선언에서도 다시 확인된다. 폴라니가 우려했던 대로(그는 종전이 얼마 남지 않은 1945년 1월에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를 통해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의 재편 가능성을 지적했다), 2차 대전 후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질서가 재편되면서 금본위제도는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제도로 바뀌었다(알려진 바대로, 케인스는 금에 가치가 연결되지만 완전히 고정되지는 않은 국제통화 방코르bancor의 도입을 주장했다. 그러나 국제금융질서의 주도권을 쥐려는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오일 쇼크가 발생했고, 평가절하된 달러화가 위기를 심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레이건 행정부가, 영국에서는 대처의 보수당 내각이 출범하면서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렸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G20 회의는 지난 2008년부터 본격화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자기조정 시장 붕괴의 징후라는 걸 반증하는 것 같다.
사실 이쯤 오면 폴라니가 말하는 '대안'이 뭔지 궁금해질 것이다. 폴라니는 결론부에서 파시즘과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 미국의 뉴딜 정책이 자기조정 시장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온 반응들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이들을 모두 환영하고 있지는 않다. 특히 파시즘에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그가 지향하는 경제 체제는 시장이 사회에 묻어들어가는embeded 시스템이었다. 즉, '혼합 경제'로서 굳이 시장을 제거하지 않더라도 국가와 노동 계급의 개입을 통해 조절 가능한 계획 경제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낡은 계획 경제를 반복하는 데 불과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폴라니가 말하는 바의 핵심은 행간에 있다. 즉, '거대한 전환'은 지금 가능하다는 것이다. 첫 번째 거대한 전환인 자기조정 시장도, 두 번째 거대한 전환인 파시즘도 모두 파괴적인 결과를 낳았지만, 세 번째 거대한 전환은 보다 인간적이고 자유로운 경제 체제 탄생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만들어내야 한다는) 낙관이고 의지다. 나는 폴라니가 천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믿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시장 체제를 일종의 사회·경제·문화적인 패턴으로 분석하는 방법론이 힘을 발휘한다. 바로 경제인류학이다.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 이후로 '실체 경제학'을 선도하고, 이후 문명사로 연구 방향이 바뀐 데에는 인류학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세력 균형 체제와 제국주의-1차 대전-대공황과 파시즘-2차 대전이라는 거대한 흐름은 하나의 문명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은 어떨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쟁을 계기로 기사회생한 자기조정 시장이 막을 내리고 '새로운 문명'이 꽃피는 계기가 될까? 혹시라도 1·2차 대전의 비극을 반복하지는 않을까? 그런 점에서 현재의 위기는 '자유'의 위기이기도 하다.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시장 자유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자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책의 마지막 문단을 인용한다. 조금 길지만,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 지금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따라서 사회의 발견은 자유의 종말일 수도 있고 그것의 재탄생일 수도 있다. 파시스트들은 스스로를 체념하여 자유를 포기하고 권력을 사회 실재의 현실로서 찬양하게 된다. 반면 사회주의자의 경우에는 그러한 현실 앞에서 스스로를 체념하는 것은 파시스트들과 동일하지만, 그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자유에 대한 주장을 드높이 들어올린다. 인류는 더욱 성숙해질 것이며, 복합 사회 안에서도 여전히 인간의 형상을 갖춘 채 존재할 수 있다. 한 번 더 오언의 영감 어린 말들을 인용해본다. "인간은 지금 여러 새로운 종류의 권능을 얻으려는 찰나에 서 있다. 하지만 만약 그러한 권력으로도 근원적으로 제거할 수 없는 사회악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그것이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악이라는 것을 인식할 것이며, 현실에 도움도 되지 않는 어린애 같은 불평불만을 그만둘 것이다."
체념은 항상 인간에게 힘과 새로운 희망의 샘이었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였고, 오히려 그것을 기초로 삼아 자신의 이승에서의 삶의 의미를 쌓아올리는 법을 배웠다. 인간은 자신의 영혼은 언젠가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현실, 하지만 죽음보다 더 끔찍한 상태가 존재한다는 진리 앞에서 스스로를 체념했고, 그러한 진리를 자신의 자유의 기초로 삼은 것이다. 우리 시대에서 이제 인간은 사회 실재의 현실 앞에서 스스로 체념하게 되었으며, 이는 인간이 예전에 믿었던 모습의 자유가 종말을 고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렇게 가장 밑바닥의 체념을 받아들이게 되면 다시 새로운 생명이 솟구치게 된다. 사회 실재의 현실을 불평 없이 묵묵하게 받아들인 이상, 인간은 이제 자신의 힘으로 제거할 수 있는 종류의 불의와 비(非)자유라면 모조리 제거해내고 말겠다는 그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용기와 힘을 얻게 된다. 이제 인간은 자신의 모든 동료들이 누릴 수 있도록 풍족한 자유를 창조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인간이 그러한 스스로의 과제에 충실하기만 한다면, 권력이나 계획과 같은 것들을 도구로 삼아 자유를 건설하려 한다고 해도 그것들이 인간의 원수로 변하여 자유를 파괴할 것이라고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복합 사회에서의 자유의 의미이다. 이것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확신을 얻을 수 있다. (p.60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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