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모 루두스』(톰 지그프리드, 이정국 옮김 / 자음과모음, 2010)는 게임이론을 다룬 대중 교양서다. 하지만 게임이론보다 학계(특히, 물리학)의 최신 경향을 소개하는 데 급급해 정작 게임이론과 관련된 내용은 적다. 최정규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을 먼저 읽은 독자라면 굳이 집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2. 톰 지그프리드는 게임이론의 미래를 몹시 낙관한다. 과학 저널리스트라는데,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에 소개된 '심리역사학'이라는 아이템을 활용한 건 적절한 '전략'이다. 그리고 "인간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최적의 전략을 탐색하는가?"라는 테마가 고대 로마의 자연법code of nature에서부터 아시모프, 폰 노이만, 존 내쉬 같은 천재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심 속에서 탐색되었다는 통찰도 흥미를 돋군다.
3. 하지만 거기까지다.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 분량에 비해 지나치게 방대하기 때문이다. 고전 경제학, 게임이론, 진화론, (인지)신경과학, 행동경제학, (문화)인류학, 통계물리학, 네트워크 이론, 양자역학 등 개별적으로 다뤄도 지면이 모자랄 것들을 한꺼번에 다루고 있다. 이건 욕심이 지나치다. 또, 주요 인물에 대한 곁가지 이야기가 무척 산만하게 전개된다. 그 정도의 '야부리'는 좀 털어줘야 대중서 같고 읽는 맛도 있는 건 맞다. 문제는 너무 야부리만 터는 거 같다는 데 있다. 일관된 기획 아래 쓰여졌다기보다 이곳저곳 흩어져 있던 칼럼을 한데 모아놓은 느낌마저 든다.
4. 이를 과학 저널리즘의 한계라고 단정지을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책의 한계는 다른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계는 저 다양한 분야들을 게임이론이라는 이론적 도구 하나로 묶으려는 시도 자체에 있다. 나도 『이타적 인간의 출현』 서평에서 게임이론의 활용 범위를 무척 긍정한 적이 있다. 디테일하게 들어갈수록 허술했기에 차라리 선언에 가까운 말이었다. 지그프리드는 그 '선언'을 좀 더 멀리 끌고 간다. 지그프리드 본인도 게임이론의 난점을 언뜻 제시하지만, 그보다 다른 분야와의 유사성을 밝히는 데 더 치우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통섭'의 유행을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5. 경제학설사적 관점에서 보면 『호모 루두스』는 개인의 효용을 극대화하면 모두의 효용도 극대화된다는 공리주의를 에둘러 공박하고 있다. 완전히 정보가 공개된 상태에서 온전히 합리적인 개인들이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적의 전략을 탐색한다. 게임이론의 초창기 명제는 공리주의적이었고,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었다. 이에 지그프리드는 이론과 현실 사이의 모순을 다른 연구와의 접촉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6. 공공재 게임이나 진화 게임이론 등과 관련된 서술은 최정규 책과 거의 일치한다. 지그프리드는 더 나아가 최신 경향에 편승해 주장을 전개하는 감이 강하다. 그런데 정작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물리학이 짱이라능!"이 아닌가 싶다.
이 과정에서 기반이 되었던 물리학 모델은 애초의 뉴턴 결정론에서 맥스웰의 통계적 방법-사회현상을 수치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케틀레와 그 추종자들이 사용했던 통계학과 똑같은 방법-으로 서서히 옮겨가기 시작했다. 자연의 코드를 향한 여정은 20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통계학을 이용해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하려는 물리학자들의 몫으로 흡수되었다. 결국 모든 과학의 종착역은 물리학인 것이다(모든 물리학자들이 이에 동의할 것이다). (p.321)
하지만 이론 사이의 연관성과 효용에 대해 섣불리 낙관하고 있어 도리어 의구심을 키운다. 그 밖에도 지그프리드는 엔트로피와 정보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엔트로피의 법칙(열역학 제2법칙)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개별 환경은 열린 계이기 때문에(오직 전체 우주만이 닫힌 계이다.), 엔트로피가 반드시 증가하지만은 않는다(내가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를 제대로 이해했다는 전제 아래.). 그게 너무 당연해서 생략한 건가?
7. 한편, 게임이론의 맹점을 짚어줄 유력한 도구로 신경과학이 거론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최신 신경과학은 심지어 인간의 두뇌가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과 똑같이 모듈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두뇌가 얼마나 유연한지도 보여주고 있어 진화심리학의 패러다임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특정행동을 위해 설계된 두뇌의 신경세포망은 말 그대로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인간의 두뇌는 다양한 상황에 적응해가며 놀라운 유연성(정확한 용어로 가소성可塑性)을 보여주고 있다. (p.180)
진화심리학도 지나가면서 살짝 밟아주고 있다.
8. 과학자의 욕망은 현상 속에서 '일반 원리'를 도출하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수량화·정량화는 과학이라는 영혼을 담는 그릇이다. 그걸 인정하더라도, 이론에서 도출된 균형의 정적인 측면을 부각하는 것이 종종 불만스럽다. 왜냐하면 투표 같은 정치 행위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사상의 내용이나 현상의 역동성 등을 간과하고 있지 않나 싶어서다. 이건 도출 과정의 동적인 측면과 대비되는데, 균형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특수한 정치구조와 형태(영미식 민주주의 등)를 보편 원리로 추상화시키곤 하지 않나. 한편으론 사상의 내용 같은 게 과학자들의 관심 밖이라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이건 '두 문화'를 너무 강조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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