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은 이기적이다. 이건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 기본적인데다 필수적인 명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남을 위해 행동한다. 단순히 남을 위해 기부를 한다던가 하는 것 뿐만 아니다. 좋든 싫든 운동movement의 역사는 자기희생의 시공간이었다. 어떤 이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몸에 불을 질렀고, 누군가는 광주학살을 보다 못 견딘 나머지 허공 중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까지 했다. 누구나 자기 이익을 위해 살아가고, 자기 이익을 위해 살야만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데도 불구하고, 왜, 어째서 인간은 그런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것일까?
2. 인간의 이타적인 행동 또한 이기심에서 왔다고 보는 시각이 그나마 합리적으로 보인다. 애시당초 자기 이익 극대화란 합리성을 근거로 하지 않으면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런 해석은 불가피하기도 하다. (주류)경제학에서는 학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 합리성 가정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인간은 얼마나 합리적인가? 그렇다고 자기 이익을 서슴없이 포기하고 타인의, 더 나아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주장하듯 우리 몸 속에 깊숙이 새겨져 있는 유전자의 명령-자기 보전을 위한 일종의 이기적인 정언명령-때문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3. <이타적 인간의 출현>(최정규 / 뿌리와이파리, 2009 개정증보판)은 '진화적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이타적 인간'이 어떻게 이기적 인간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를 설명한다. 지은이 최정규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메사추세츠 주립대학에서 게임이론을 공부하고 복잡계 연구로 알려져 있는 산타페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는 <자기집단중심적 이타성과 전쟁의 공진화>The Coevolution of Parochial Altruism and War라는 논문(공저)을 사이언스에 게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4. 도입부에서는 게임이론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시도하고, 그 뒤엔 인간의 이기적 속성을 가정해 만들어진 실험들이 예상에서 크게 벗어난 사례를 소개한다. 책에서도 제시된 '공공재 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여기 열 사람이 있다. 그들은 각자 1000원씩 갹출해 일종의 펀드를 만들 수 있다(이 때 돈은 내도 되고, 내지 않아도 된다.). 펀드에 쌓인 돈은 x2로 불어나고, 불어난 돈은 1/n만큼, 즉 사람 수만큼 공평하게 분배된다. 이 때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행위자라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까? 경제학적 설명에 따르면 내지 않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만약 나를 제외한 9명의 사람들이 펀드에 기부하지 않았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나 혼자 1000원을 낼 것이고, 펀드 적립금은 2000원(1000원x2)이 된 뒤 나를 포함한 10명에게 공평하게 분배된다. 즉, 200원씩 나눠갖는 것이다. 나는 800원의 손해를 보게 될 것이고(수입 200원-지출 1000원=-800원), 다른 9명은 원금을 유지한 채 200원의 이익을 보게 될 것이다. 반대로 나 혼자 내지 않고 9명 모두 낸다면?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각자 800원씩을 얻을 것이고(수입 1800원-지출 1000원=800원), 나는 역시 원금손실 없이 1800원을 얻게 될 것이다(수입 1800원-지출 0원=1800원). 문제는 이게 공공재 게임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아무도 기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공공재는 공급될 수 없다. 그런데 과연 실제는 어땠을까?
첫째,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대부분의 경우는 대학생들이 실험 대상으로 참가했다) 반복되지 않는 공공재 게임(단 한 차례만 진행되는)에서도 상당 부분을 기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가자들은 반복되지 않는 공공재 게임에서도 자기가 가진 돈의 40~60%에 달하는 금액을 기부했다(Marwell and Ames, 1981). (p.127)
5. 흥미롭게도 게임에서는 기부하는 사람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횟수를 늘려도 보고 구성원을 바꾸는 등 실험방식에 변화를 가해도 전반적인 경향은 유지되는 편이었다(재밌는 건 같은 실험자들이 위스콘신 주립대의 경제학과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평균기부금은 20%에 불과했고, 지은이 역시 메사추세츠 주립대에서 같은 실험을 진행했는데 이들의 기부금도 25% 정도였다는 것이다. 정말로 경제학은 인간을 이기적으로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이기적인 사람들이 주로 경제학을 공부하는 것일까?).
최정규 교수는 뒤이어 인간의 이타성을 설명하는 다양한 가설과 실험사례를 하나하나 설명해나간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주장과 맞닿아 있는 '혈연선택 가설'부터 베블런의 과시소비 개념을 연상시키는 '값비싼 신호 보내기 가설' 등 다양하게 제시한다. '진화적 게임이론'이라는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이론은 진화론에 바탕을 둔 학제간 연구의 결과다. 앞서 살펴본 공공재 게임의 작동원리를 따라가 보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보다 더 우월한 전략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를 집합(공동체)의 원소(구성원)가 갖는 특성(이기적 전략과 이타적 전략)으로 본다면, 이타적 전략은 이기적 전략에 비해 진화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게 진화론적인 설명이다. 왜냐하면 이타적 전략을 사용하는 구성원은 이기적 전략을 가진 구성원보다 낮은 이익을 얻을 수밖에 없고, 낮은 이익을 반복하는 전략은 자연도태될 것이기 때문이다.
6. 여기서 지은이는 이타적 전략이 자연도태되지 않는 여러 이유(즉, 이타적 전략이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되는 이유) 중에서 '반복-상호성 가설'과 '집단선택 가설'에 힘을 실어준다. '반복-상호성 가설'은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가 <협력의 진화>에서 유력한 전략으로 제시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Tit-for-Tat을 통해 잘 알려져 있는데, 반복-상호성 가설은 꼭 반복게임 상황이 아니더라도 구성원이 서로 협력하며 규범을 지키지 않은 사람에겐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보복하는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반면 '집단선택 가설'은 진화가 개개인의 유전적 형질과 문화적 선택에 따른다는 '개인선택 가설'에서 더 나아가 집단(공동체) 역시 개인선택의 과정과 마찬가지 방식으로(주로 문화적 선택 과정을 통해) 진화한다고 가정한다. 이런 가정은 개인 단위에서는 이기적 전략이 더 우월한 전략임에도 불구하고, 이타적인 전략이 주류인 집단이 이기적인 전략이 주류인 집단을 상대로 했을 때 더 우월하지 않느냐는 추정으로 연결된다(여기에 구성원 간의 잦은 의사소통 및 규범을 유지하는 제도(민주주의)와 이웃 간의 잦은 교류(공간으로서의 지역local)가 이타적 전략의 집단선택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결국 이 책은 그의 논문 <자기집단중심적 이타성과 전쟁의 공진화>로 이어지는 셈이다(권가야의 만화 <남자이야기>에서 노골적으로 묘사되듯이 이타적인 집단은 종종 타집단에 대해 배타적이 되곤 하지 않는가 : "만약 적들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었겠는가.").
7. <이타적 인간의 출현>이라는 제목만 보고 따뜻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해서는 안 된다. 아쉽게도 이 책은 이타적 인간에 대한 규범적인 논의가 아니다(최정규 교수는 개정판 서문에서 규범적인 당위가 이타적 인간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이 아닌 상호적(호혜적) 인간Homo Reciprocan이 인간의 미래라고 무조건 단정짓지도 않는다. 지은이는 이타적 전략이 우월한 집단의 배타성이 갖는 위험 또한 간과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울한 학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경제학에 활력과 전망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이타적 인간의 출현>은 무척 흥미로운 책이다. 게임이론에 전혀 문외한이라 해도 이해하기 쉽도록 노력했고(부록으로 '게임이론 입문' 수록.), 게임이론을 공부하는 학부생이라면 경제학과 수업에서도 잘 나오지 않는 최신 연구가 제시된다는 점에서 더 흥미를 돋울만 하다(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오스트롬 역시 짧게 언급되었다.). 경제학과 경영학 뿐만 아니라 정치학, 심리학, 인류학, 생물학 등과 연결되면서 학제간 연구의 유력한 언어로 쓰이는 게임이론과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겐 필독서다.
2. 인간의 이타적인 행동 또한 이기심에서 왔다고 보는 시각이 그나마 합리적으로 보인다. 애시당초 자기 이익 극대화란 합리성을 근거로 하지 않으면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런 해석은 불가피하기도 하다. (주류)경제학에서는 학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 합리성 가정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인간은 얼마나 합리적인가? 그렇다고 자기 이익을 서슴없이 포기하고 타인의, 더 나아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주장하듯 우리 몸 속에 깊숙이 새겨져 있는 유전자의 명령-자기 보전을 위한 일종의 이기적인 정언명령-때문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3. <이타적 인간의 출현>(최정규 / 뿌리와이파리, 2009 개정증보판)은 '진화적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이타적 인간'이 어떻게 이기적 인간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를 설명한다. 지은이 최정규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메사추세츠 주립대학에서 게임이론을 공부하고 복잡계 연구로 알려져 있는 산타페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는 <자기집단중심적 이타성과 전쟁의 공진화>The Coevolution of Parochial Altruism and War라는 논문(공저)을 사이언스에 게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4. 도입부에서는 게임이론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시도하고, 그 뒤엔 인간의 이기적 속성을 가정해 만들어진 실험들이 예상에서 크게 벗어난 사례를 소개한다. 책에서도 제시된 '공공재 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여기 열 사람이 있다. 그들은 각자 1000원씩 갹출해 일종의 펀드를 만들 수 있다(이 때 돈은 내도 되고, 내지 않아도 된다.). 펀드에 쌓인 돈은 x2로 불어나고, 불어난 돈은 1/n만큼, 즉 사람 수만큼 공평하게 분배된다. 이 때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행위자라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까? 경제학적 설명에 따르면 내지 않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만약 나를 제외한 9명의 사람들이 펀드에 기부하지 않았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나 혼자 1000원을 낼 것이고, 펀드 적립금은 2000원(1000원x2)이 된 뒤 나를 포함한 10명에게 공평하게 분배된다. 즉, 200원씩 나눠갖는 것이다. 나는 800원의 손해를 보게 될 것이고(수입 200원-지출 1000원=-800원), 다른 9명은 원금을 유지한 채 200원의 이익을 보게 될 것이다. 반대로 나 혼자 내지 않고 9명 모두 낸다면?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각자 800원씩을 얻을 것이고(수입 1800원-지출 1000원=800원), 나는 역시 원금손실 없이 1800원을 얻게 될 것이다(수입 1800원-지출 0원=1800원). 문제는 이게 공공재 게임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아무도 기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공공재는 공급될 수 없다. 그런데 과연 실제는 어땠을까?
첫째,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대부분의 경우는 대학생들이 실험 대상으로 참가했다) 반복되지 않는 공공재 게임(단 한 차례만 진행되는)에서도 상당 부분을 기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가자들은 반복되지 않는 공공재 게임에서도 자기가 가진 돈의 40~60%에 달하는 금액을 기부했다(Marwell and Ames, 1981). (p.127)
5. 흥미롭게도 게임에서는 기부하는 사람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횟수를 늘려도 보고 구성원을 바꾸는 등 실험방식에 변화를 가해도 전반적인 경향은 유지되는 편이었다(재밌는 건 같은 실험자들이 위스콘신 주립대의 경제학과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평균기부금은 20%에 불과했고, 지은이 역시 메사추세츠 주립대에서 같은 실험을 진행했는데 이들의 기부금도 25% 정도였다는 것이다. 정말로 경제학은 인간을 이기적으로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이기적인 사람들이 주로 경제학을 공부하는 것일까?).
최정규 교수는 뒤이어 인간의 이타성을 설명하는 다양한 가설과 실험사례를 하나하나 설명해나간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주장과 맞닿아 있는 '혈연선택 가설'부터 베블런의 과시소비 개념을 연상시키는 '값비싼 신호 보내기 가설' 등 다양하게 제시한다. '진화적 게임이론'이라는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이론은 진화론에 바탕을 둔 학제간 연구의 결과다. 앞서 살펴본 공공재 게임의 작동원리를 따라가 보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보다 더 우월한 전략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를 집합(공동체)의 원소(구성원)가 갖는 특성(이기적 전략과 이타적 전략)으로 본다면, 이타적 전략은 이기적 전략에 비해 진화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게 진화론적인 설명이다. 왜냐하면 이타적 전략을 사용하는 구성원은 이기적 전략을 가진 구성원보다 낮은 이익을 얻을 수밖에 없고, 낮은 이익을 반복하는 전략은 자연도태될 것이기 때문이다.
6. 여기서 지은이는 이타적 전략이 자연도태되지 않는 여러 이유(즉, 이타적 전략이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되는 이유) 중에서 '반복-상호성 가설'과 '집단선택 가설'에 힘을 실어준다. '반복-상호성 가설'은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가 <협력의 진화>에서 유력한 전략으로 제시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Tit-for-Tat을 통해 잘 알려져 있는데, 반복-상호성 가설은 꼭 반복게임 상황이 아니더라도 구성원이 서로 협력하며 규범을 지키지 않은 사람에겐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보복하는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반면 '집단선택 가설'은 진화가 개개인의 유전적 형질과 문화적 선택에 따른다는 '개인선택 가설'에서 더 나아가 집단(공동체) 역시 개인선택의 과정과 마찬가지 방식으로(주로 문화적 선택 과정을 통해) 진화한다고 가정한다. 이런 가정은 개인 단위에서는 이기적 전략이 더 우월한 전략임에도 불구하고, 이타적인 전략이 주류인 집단이 이기적인 전략이 주류인 집단을 상대로 했을 때 더 우월하지 않느냐는 추정으로 연결된다(여기에 구성원 간의 잦은 의사소통 및 규범을 유지하는 제도(민주주의)와 이웃 간의 잦은 교류(공간으로서의 지역local)가 이타적 전략의 집단선택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결국 이 책은 그의 논문 <자기집단중심적 이타성과 전쟁의 공진화>로 이어지는 셈이다(권가야의 만화 <남자이야기>에서 노골적으로 묘사되듯이 이타적인 집단은 종종 타집단에 대해 배타적이 되곤 하지 않는가 : "만약 적들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었겠는가.").
7. <이타적 인간의 출현>이라는 제목만 보고 따뜻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해서는 안 된다. 아쉽게도 이 책은 이타적 인간에 대한 규범적인 논의가 아니다(최정규 교수는 개정판 서문에서 규범적인 당위가 이타적 인간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이 아닌 상호적(호혜적) 인간Homo Reciprocan이 인간의 미래라고 무조건 단정짓지도 않는다. 지은이는 이타적 전략이 우월한 집단의 배타성이 갖는 위험 또한 간과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울한 학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경제학에 활력과 전망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이타적 인간의 출현>은 무척 흥미로운 책이다. 게임이론에 전혀 문외한이라 해도 이해하기 쉽도록 노력했고(부록으로 '게임이론 입문' 수록.), 게임이론을 공부하는 학부생이라면 경제학과 수업에서도 잘 나오지 않는 최신 연구가 제시된다는 점에서 더 흥미를 돋울만 하다(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오스트롬 역시 짧게 언급되었다.). 경제학과 경영학 뿐만 아니라 정치학, 심리학, 인류학, 생물학 등과 연결되면서 학제간 연구의 유력한 언어로 쓰이는 게임이론과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겐 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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