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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와 문화이론

by parallax view 2010. 9. 8.
『문화연구와 문화이론』(존 스토리, 박모 옮김 / 현실문화연구, 1999)은 제목 그대로 문화연구와 문화이론에 대한 입문서다. 저자 존 스토리는 영국의 현대문화연구센터The Centre for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와 관계를 맺었던 듯하다. 그러나 정확한 사실관계는 모르겠다. 매튜 아놀드와 F. R. 리비스의 '문화와 문명'의 전통에서부터 레이먼드 윌리엄스 등의 문화주의, 구조주의 및 후기 구조주의, 맑스주의, 여성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을 개략적으로 짚고 있다. 책에서는 문화연구 뿐만 아니라 철학과 정치학 등 각 분야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후기)구조주의 장에서는 레비-스트로스와 라깡, 데리다, 푸코와 에드워드 사이드가 소개되고, 맑스주의 장에서는 알튀세르와 그람시, 포스트모더니즘 장에서는 리요타르와 보드리야르, 프레드릭 제임슨 등을 상당히 도식적으로 그려낸다. 도식화는 입문서가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자 단점이다. 그리고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찾아 읽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그람시의 『옥중수고 2』와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기나긴 혁명』, 푸코의 The birth of biopolitics를 도서목록에 추가.

대중문화연구에 있어 지배계급의 '순수문화'와 피지배계급(노동계급)의 '대중문화' 사이의 갈등은 고질적인 화두인 듯하다. 덧붙여 대중문화에 대한 좌파의 입장도 다양하게 갈린다. 근대 문화연구의 효시를 쏘아올린 매튜 아놀드의 '순수문화' 아이디어는 시대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면서 문화연구자와 이론에 스며들었다. 윌리엄스 등의 문화연구는 그에 대한 저항이었다. 대중문화는 자본주의에 의한 대중(노동계급)의 부패를 상징하는가? 혹은 과시적 소비에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저항의 징후로 나타나는가? 존 스토리는 이 두 극단 사이에 균형을 잡는 방법으로 네오그람시안의 헤게모니 이론을 지지하는 걸로 마무리를 짓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 종말의 징후로 국내에 선전되던 1990년대 초반에 씌여진 탓(1993년)에 지금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꽤 뒤쳐진 느낌이 든다. 그리고 실천적 준거로 소개되는 장은 대부분이 영미 문화라는 한계가 있다(이 책은 계급성이 강한 영국 정치사회 지형을 머릿속에 그려야 좀 더 이해하기 수월한 듯하다.). 그래도 문화연구의 다양한 틀을 가능한 쉽게 엮어냈다는 점에서 입문서로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추. 옮긴이 박모는 몇 년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새삼 고인의 명복을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