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 이순희 옮김 / 부키, 2007)은 기존의 개발경제학과 신자유주의 지구화를 날카롭게 비판한 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어떻게 해야 저개발국의 빈곤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개발경제학의 거듭된 고민이다. 그 점에서 장하준은 윌리엄 이스터리의 『성장, 그 새빨간 거짓말』과 같은 선상에 선다. 두 사람의 결론도 비슷하다. 저개발국의 경제 성장을 향상시키도록 도와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이는 국민소득 증대와 중산층의 증가를 포함한다.). 하지만 성장을 위한 해법은 정반대다. 이스터리는 시장 개방과 자유 무역을 통해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장하준은 유치산업 보호와 지적소유권 완화, 국민국가의 경제정책 수행능력 강화로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전작 『사다리 걷어차기』와 『국가의 역할』을 한데 엮어 좀 더 대중적으로 풀어썼다는 인상이 든다(leopord, <091115>). 영국, 미국을 비롯한 '부자 나라들'이 신자유주의자들과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보호무역과 유치산업, 다른 나라 제품의 모방을 통해 성장했다는 주장이 거듭된다. 저개발국을 위한 조언은 『국가의 역할』과 관련되어 있을 듯한데, 아직 읽지 않아 잘 모르겠다. 장하준도 거듭 강조하듯이, 한국은 IMF 구제금융 이전까지 자율적인 경제정책 수행을 통해 경제 성장을 달성했다. 부자 나라들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말이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후발 주자들에게 "우리가 한 대로 하지 말고, 우리가 말하는 대로 하라."고 말한다며, 그들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장하준은 IMF와 세계은행, WTO를 '사악한 삼총사'라고 부른다. 실제로 이 세 국제기구가 저개발국에 대해 취한 조치-생산물 시장 및 자본시장의 무조건적인 개방 요구, 기업 구조조정과 노동 유연화 정책 강화, 공기업의 민영화 등-를 생각해 보면 지구적 공치global governance가 지구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신장시킨다고 보기 힘들 것 같다. 오히려 부자 나라들과 초국적 기업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비대칭적 공간으로 자리잡은 게 아닌가 싶다(그래서 정치학자 데이비드 헬드가 '지구화의 민주화'를 주장하는 것일테지만.). 지구적 공치를 이상화하기 이전에, 저개발국이 '제대로 된 민주적 국민국가', 즉, 정책 자율성을 보유하고 민주주의를 신장시키는 체제가 되도록 만드는 게 우선 아닌가 싶다. 이건 좀 답이 안 나오는 부분이다. 이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한 장하준조차도 부자 나라들의 호의와 선처가 저개발국 경제 성장의 요건이라고 주장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그러니까 '나쁜 사마리아인'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라는 이야기인데, 과연 부자 나라들이 선뜻 움직여 줄 지가 문제다. 이명박조차 신자유주의가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시대다. 장하준은 신자유주의가 최절정이던(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계기로 급격히 추락하기 이전이던) 2007년에 이미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강력하게 지적했고, 또 그 지적은 유효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책은 또 다른 질문을 불러 일으킨다. G20 등 부자 나라들 간의 협력으로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선진국들과 초국적 기업들은 신자유주의 도그마에서 온전히 벗어났는가? 아직도 구제금융과 경제 성장의 조건으로 공기업 민영화와 자본시장 개방, 지적소유권 강화를 강제하고 있지는 않은가? 무엇보다 우리는 여전히 신자유주의의 거시적이고 경제적인 측면만을 신자유주의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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