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번에 읽은 책은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리오 휴버먼, 장상환 옮김 / 책벌레, 2000)다.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읽기 전에 경제사적 흐름을 어느 정도 다시 살펴보고 싶었다. 다음 단계로 『다시 쓰는 근대세계사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다.
2.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독자층을 분명하게 잡고 있다. 바로 노동계급이다. 리오 휴버먼은 미국의 좌파 잡지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의 창간자 겸 편집자로서 평생을 살았다. 노동자 대중이 근대 경제사를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 흥미로운 사례를 인용하고, 경제학적 개념은 최대한 성실하게 풀어 썼다. 자본주의의 형성 과정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휴버먼의 입담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 것 같다. 이야기꾼의 재능과 지적 성실성이 대중을 향해 결합할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를 보여주는 선례일 게다.
3. 책은 크게 '제1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와 '제2부 자본주의에서 어디로?'로 나뉜다. 1부는 경제사적 흐름에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봉건제에서 태동했는지를 밝히고, 2부는 경제학설사적 관점에서 고전경제학과 한계효용학파를 비판하고 있다. 여기서 책이 쓰여진 시대 배경을 살펴보자.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Man's Worldly Goods: The Story of the Wealth of Nations라는 제목으로 1933년 출간되었다. 1930년대는 어떤 시대였을까? 제1차 세계대전으로 제국주의가 쇠퇴하고 대공황을 맞아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균열이 격렬하게 드러난 시대다. 사회주의자들과 노동계급으로서는 오히려 환영할만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당대의 위기는 자본주의를 넘어선 세계를 건설할 절호의 기회로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제의 균열을 거칠게 봉합하는 시도가 더욱 두드러졌다. 바로 파시즘이다.
이 책을 쓰고 있는 동안 나치 군대가 행군하고 있지는 않지만, 머지 않아 그렇게 하리라는 것은 누가 보아도 명백하다. 독일은 재무장을 위해, 그리고 그에 뒤따르는 전쟁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고통스러운 희생을 치르고, 국가가 모든 활동을 그쪽으로 돌리도록 하면서 무서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 파시즘은 전쟁을 뜻한다. (pp.346-347)
리오 휴버먼은 무솔리니와 히틀러 등 파시스트 지도자들이 산업 자본과 결탁하고 대중을 동원해 체제를 유지하는 과정을 걱정스럽게 지켜본다.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책이 쓰여진 지 약 6년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4. 휴버먼의 입담은 '제1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에서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 중 인상깊은 부분 몇 가지를 짚어본다.
화폐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에 반대한 주된 이유 중 몇 가지는 오레슴이 제기한 것이었다. "군주가 자기 왕국 화폐 가치를 고정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바꾸는 것은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화폐를 변조해 버리면 사람들은 흔히 금화나 은화 한 닢의 가치가 얼마 정도인지 알 수 없어서 상품을 흥정하듯이 화폐도 흥정해야만 한다. 그것은 화폐의 본성에 어긋나는 일이다. 또, 매우 분명해야 할 화폐 가치가 매우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워진다. ……화폐를 변조하고 가치를 떨어뜨린 결과, 왕국 안에 있는 금과 은의 양이 줄어든다. 예방 조치를 한다 해도 금과 은은 그것이 높게 평가되는 곳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p.113)
리지외의 주교 니콜라스 오레슴은 1377년에 화폐 가치 절하가 어떤 문제를 낳는지 통찰했다. 그는 금과 은이 부의 척도라는 관념을 일찌감치 비판하고 있는 듯하다. 데이비드 흄은 그로부터 약 400년 뒤에 중상주의자mercantilist의 주장을 통렬하게 반박했다. 중상주의자들은 그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금과 은의 양에 국부the wealth of nations가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흄은 화폐 가치가 물가와 연동되기 때문에 한 나라에 금이 많이 유입되면 물가가 높아져 수출보다 수입이 많아지므로 금의 유출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오레슴은 흄의 price spicie flow mechanism 개념을 선취한 게 아닐까.
또, 천문학자로 알려진 코페르니쿠스가 화폐에도 관심을 가졌다는 기록도 흥미롭다.
아마 여러분은 1530년에 처음으로 지동설을 제기한 위대한 과학자 코페르니쿠스를 알 것이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화폐를 연구하기도 했다. 그는 자기 나라 폴란드의 화폐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통화의 종류가 많으면 상업에 지장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고, 여러 호족들이 저마다 주화를 주조하도록 놔두기보다 하나의 통일된 주화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 절대로 없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보통은 왕국, 공국, 공화국의 쇠퇴를 낳는 재앙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내가 보기에는 다음 네 가지가 가장 무섭다. 전쟁, 전염병, 쓸모 없는 땅,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 (pp.112-113)
5. 이런 기록들은 인간, 자연, 화폐가 상품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필요가 아니라 이윤에 의해 작동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상품으로 가정된 상품', 그것이 바로 노동, 토지, 자본이다. 폴라니의 상품 허구commodity fiction 개념이 여기서 이어진다(leopord,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6. 휴버먼의 경제사/경제학설사적 관점은 헤겔의 변증법에 기반한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맑스의 역사유물론의 영향 아래 있다. 즉, 낡은 체제는 새로운 체제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제2부 자본주의에서 어디로?'의 핵심은 맑스의 '과학적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분석(『자본』등)에 있다.
맑스가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였다. 맑스는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꿈꾸었던 식으로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맑스는 사회에 분명한 힘[세력]들이 작용할 때만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노동자 계급만이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전 경제학을 자본가의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맑스의 경제학은 노동자의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가가 고전 경제학에서 도움과 위안을 얻을 수 있었듯이, 노동자는 맑스 경제학에서 자기 존재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p.267)
'사회에 분명한 힘(세력)'이라는 표현은 맑스의 시대인 19세기가 과학의 시대였다는 하나의 반증인 듯하다. 맑스는 과학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답게, 혹은 그 이상으로 자연과학(주로 물리학)의 아이디어를 인간 사회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게 아닐까. 그렇지만 주체의 '개입'이라는 행위를 결코 방기하지 않았다. 맑스가 양자역학의 '포개짐 현상'(관찰자의 관찰이 개입하지 않았을 때 두 가지 고유상태가 포개진 상황. 대표적인 역설로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있다.) 등을 선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맑스는 인간 사회에서 '자연히'라는 부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통찰하고 있었다.
7. 한편 이 '포개짐'이라는 개념을 일종의 은유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가 국민 경제를 계획하면 소수의 손에 결정권을 집중함으로써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추구한다. 수많은 개인의 판단과 결정이 기업을 이끌면서 국민 전체의 기술·정보·지식을 활용할 때 경제와 사회는 최고로 발전한다. 소수 집단은 결코 모든 국민의 활동을 성공적으로 계획하고 지도하고 촉진하는 데 필요한 지혜·선견지명·통찰력을 지닐 수 없다."
위의 마지막 문단을 쓴 사람들이, 그들의 산업체 내부에서는 아마도 세계 최대의 계획자로 인정받을 제조업자들이라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세계 여러 나라보다 재원이 더 많고 전세계에 자회사를 둔 기업에서 조직과 계획으로 기적을 성취한 산업가들이 바로 그들이다. 주요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신의 산업체를 위해서는 너무나 능숙하게 해 왔던 것을 국민 전체의 산업을 위해서 한다면 격렬하게 반대하는 계획의 대가들이 바로 그들이다.
왜 자본가들은 계획 경제를 그토록 반대할까?
계획 경제는 불가피하게 사유 재산, 즉 그들의 사유 재산을 폐지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이것이 바로 G D H 콜이 《경제 계획의 원리》라는 책에서 시사하는 바다. "매우 많은 자본가들은……계획 경제를 옹호하는 동료 자본가들을 위험한 이단자로 여긴다. ……말주변이 있는 지도적인 자본가들은 대부분 무계획 경제를 강력하게 옹호한다. 왜냐하면 그 결함이 무엇이든, 무계획 경제야말로 믿음직하고 유일한 재산권의 지주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pp.341-342)
이제 오해는 많이 줄었겠지만, 부연하자면 맑스는 계획경제를 제시하지 않았다. 휴버먼은 계획경제에 대한 1930년대의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계획경제가 실패한 원인을 계획의 경직성과 중앙통제의 한계로 지목하는 것을 넘어, 시장경제에 대한 일종의 악(惡)으로 보는 관점은 어디까지나 구 소련 붕괴 이후의 것이다. 계획경제가 진행 중이던 1930년대에 "초국적 기업도 계획으로 운영되는데, 국민경제는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질 법하다. 계획경제가 시장경제에 대한 대안으로 실험되던 당시를 여러 가지 가능성이 '포개진' 상태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스탈린 통치 시대의 언론통제로 인한 거품이 있으리라는 것은 감안해야겠지만 말이다.
8. 끝으로 책에 소개된 맑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과 '과잉생산공황'을 살펴보자. 고정자본의 비율이 증가함에 따라 이윤율은 떨어진다. 그러므로 자본은 보다 높은 이윤을 찾아 방황하다 끝내 수요-공급의 불일치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것이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이고, 그 결과가 과잉생산공황이다(이런 '법칙'이라는 표현 또한 과학 시대의 산물이다.). 현대의 독자들로서는 이 '법칙'이 전체 산업의 제조업 비중이 감소하고, 서비스 및 금융·IT 산업의 비중이 증가한 현대에도 적합한지 의문이 들 것이다(이에 대해 『제국』의 저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비물질적 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 노동계급의 범위를 확대하고자 시도한다. 네그리는 '새로운 노동계급', 저항의 주체를 '다중'multitude이라고 부른다.).
한편으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폭발하고 그 여파가 여전히 강한 2010년의 '지금 여기'를 대공황의 여파로 고통받았던 1930년과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은 제조업에서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금융으로 관심을 돌렸고, 자본의 과잉투자로 인해 결국 위기가 폭발했다는 맑스주의자들의 진단이 힘을 얻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그람시가 지적했듯이 공황이 공격 세력에게 시공적으로 전광석화처럼 조직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방어자의 사기 또한 떨어지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버리지 않으며, 자신의 힘이나 미래에 대한 자신감도 쉬이 잃지는 않을 것이다(leopord, <그람시의 옥중수고 1>). 섣불리 자본주의의 몰락을 단언하기 전에, 자본주의가 어떤 역사를 밟아왔는지 천천히 숨을 고르며 살펴봐야 할 일이다.
2.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독자층을 분명하게 잡고 있다. 바로 노동계급이다. 리오 휴버먼은 미국의 좌파 잡지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의 창간자 겸 편집자로서 평생을 살았다. 노동자 대중이 근대 경제사를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 흥미로운 사례를 인용하고, 경제학적 개념은 최대한 성실하게 풀어 썼다. 자본주의의 형성 과정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휴버먼의 입담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 것 같다. 이야기꾼의 재능과 지적 성실성이 대중을 향해 결합할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를 보여주는 선례일 게다.
3. 책은 크게 '제1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와 '제2부 자본주의에서 어디로?'로 나뉜다. 1부는 경제사적 흐름에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봉건제에서 태동했는지를 밝히고, 2부는 경제학설사적 관점에서 고전경제학과 한계효용학파를 비판하고 있다. 여기서 책이 쓰여진 시대 배경을 살펴보자.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Man's Worldly Goods: The Story of the Wealth of Nations라는 제목으로 1933년 출간되었다. 1930년대는 어떤 시대였을까? 제1차 세계대전으로 제국주의가 쇠퇴하고 대공황을 맞아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균열이 격렬하게 드러난 시대다. 사회주의자들과 노동계급으로서는 오히려 환영할만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당대의 위기는 자본주의를 넘어선 세계를 건설할 절호의 기회로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제의 균열을 거칠게 봉합하는 시도가 더욱 두드러졌다. 바로 파시즘이다.
이 책을 쓰고 있는 동안 나치 군대가 행군하고 있지는 않지만, 머지 않아 그렇게 하리라는 것은 누가 보아도 명백하다. 독일은 재무장을 위해, 그리고 그에 뒤따르는 전쟁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고통스러운 희생을 치르고, 국가가 모든 활동을 그쪽으로 돌리도록 하면서 무서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 파시즘은 전쟁을 뜻한다. (pp.346-347)
리오 휴버먼은 무솔리니와 히틀러 등 파시스트 지도자들이 산업 자본과 결탁하고 대중을 동원해 체제를 유지하는 과정을 걱정스럽게 지켜본다.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책이 쓰여진 지 약 6년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4. 휴버먼의 입담은 '제1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에서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 중 인상깊은 부분 몇 가지를 짚어본다.
화폐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에 반대한 주된 이유 중 몇 가지는 오레슴이 제기한 것이었다. "군주가 자기 왕국 화폐 가치를 고정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바꾸는 것은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화폐를 변조해 버리면 사람들은 흔히 금화나 은화 한 닢의 가치가 얼마 정도인지 알 수 없어서 상품을 흥정하듯이 화폐도 흥정해야만 한다. 그것은 화폐의 본성에 어긋나는 일이다. 또, 매우 분명해야 할 화폐 가치가 매우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워진다. ……화폐를 변조하고 가치를 떨어뜨린 결과, 왕국 안에 있는 금과 은의 양이 줄어든다. 예방 조치를 한다 해도 금과 은은 그것이 높게 평가되는 곳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p.113)
리지외의 주교 니콜라스 오레슴은 1377년에 화폐 가치 절하가 어떤 문제를 낳는지 통찰했다. 그는 금과 은이 부의 척도라는 관념을 일찌감치 비판하고 있는 듯하다. 데이비드 흄은 그로부터 약 400년 뒤에 중상주의자mercantilist의 주장을 통렬하게 반박했다. 중상주의자들은 그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금과 은의 양에 국부the wealth of nations가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흄은 화폐 가치가 물가와 연동되기 때문에 한 나라에 금이 많이 유입되면 물가가 높아져 수출보다 수입이 많아지므로 금의 유출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오레슴은 흄의 price spicie flow mechanism 개념을 선취한 게 아닐까.
또, 천문학자로 알려진 코페르니쿠스가 화폐에도 관심을 가졌다는 기록도 흥미롭다.
아마 여러분은 1530년에 처음으로 지동설을 제기한 위대한 과학자 코페르니쿠스를 알 것이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화폐를 연구하기도 했다. 그는 자기 나라 폴란드의 화폐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통화의 종류가 많으면 상업에 지장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고, 여러 호족들이 저마다 주화를 주조하도록 놔두기보다 하나의 통일된 주화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 절대로 없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보통은 왕국, 공국, 공화국의 쇠퇴를 낳는 재앙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내가 보기에는 다음 네 가지가 가장 무섭다. 전쟁, 전염병, 쓸모 없는 땅,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 (pp.112-113)
5. 이런 기록들은 인간, 자연, 화폐가 상품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필요가 아니라 이윤에 의해 작동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상품으로 가정된 상품', 그것이 바로 노동, 토지, 자본이다. 폴라니의 상품 허구commodity fiction 개념이 여기서 이어진다(leopord,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6. 휴버먼의 경제사/경제학설사적 관점은 헤겔의 변증법에 기반한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맑스의 역사유물론의 영향 아래 있다. 즉, 낡은 체제는 새로운 체제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제2부 자본주의에서 어디로?'의 핵심은 맑스의 '과학적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분석(『자본』등)에 있다.
맑스가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였다. 맑스는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꿈꾸었던 식으로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맑스는 사회에 분명한 힘[세력]들이 작용할 때만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노동자 계급만이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전 경제학을 자본가의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맑스의 경제학은 노동자의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가가 고전 경제학에서 도움과 위안을 얻을 수 있었듯이, 노동자는 맑스 경제학에서 자기 존재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p.267)
'사회에 분명한 힘(세력)'이라는 표현은 맑스의 시대인 19세기가 과학의 시대였다는 하나의 반증인 듯하다. 맑스는 과학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답게, 혹은 그 이상으로 자연과학(주로 물리학)의 아이디어를 인간 사회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게 아닐까. 그렇지만 주체의 '개입'이라는 행위를 결코 방기하지 않았다. 맑스가 양자역학의 '포개짐 현상'(관찰자의 관찰이 개입하지 않았을 때 두 가지 고유상태가 포개진 상황. 대표적인 역설로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있다.) 등을 선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맑스는 인간 사회에서 '자연히'라는 부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통찰하고 있었다.
7. 한편 이 '포개짐'이라는 개념을 일종의 은유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가 국민 경제를 계획하면 소수의 손에 결정권을 집중함으로써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추구한다. 수많은 개인의 판단과 결정이 기업을 이끌면서 국민 전체의 기술·정보·지식을 활용할 때 경제와 사회는 최고로 발전한다. 소수 집단은 결코 모든 국민의 활동을 성공적으로 계획하고 지도하고 촉진하는 데 필요한 지혜·선견지명·통찰력을 지닐 수 없다."
위의 마지막 문단을 쓴 사람들이, 그들의 산업체 내부에서는 아마도 세계 최대의 계획자로 인정받을 제조업자들이라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세계 여러 나라보다 재원이 더 많고 전세계에 자회사를 둔 기업에서 조직과 계획으로 기적을 성취한 산업가들이 바로 그들이다. 주요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신의 산업체를 위해서는 너무나 능숙하게 해 왔던 것을 국민 전체의 산업을 위해서 한다면 격렬하게 반대하는 계획의 대가들이 바로 그들이다.
왜 자본가들은 계획 경제를 그토록 반대할까?
계획 경제는 불가피하게 사유 재산, 즉 그들의 사유 재산을 폐지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이것이 바로 G D H 콜이 《경제 계획의 원리》라는 책에서 시사하는 바다. "매우 많은 자본가들은……계획 경제를 옹호하는 동료 자본가들을 위험한 이단자로 여긴다. ……말주변이 있는 지도적인 자본가들은 대부분 무계획 경제를 강력하게 옹호한다. 왜냐하면 그 결함이 무엇이든, 무계획 경제야말로 믿음직하고 유일한 재산권의 지주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pp.341-342)
이제 오해는 많이 줄었겠지만, 부연하자면 맑스는 계획경제를 제시하지 않았다. 휴버먼은 계획경제에 대한 1930년대의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계획경제가 실패한 원인을 계획의 경직성과 중앙통제의 한계로 지목하는 것을 넘어, 시장경제에 대한 일종의 악(惡)으로 보는 관점은 어디까지나 구 소련 붕괴 이후의 것이다. 계획경제가 진행 중이던 1930년대에 "초국적 기업도 계획으로 운영되는데, 국민경제는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질 법하다. 계획경제가 시장경제에 대한 대안으로 실험되던 당시를 여러 가지 가능성이 '포개진' 상태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스탈린 통치 시대의 언론통제로 인한 거품이 있으리라는 것은 감안해야겠지만 말이다.
8. 끝으로 책에 소개된 맑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과 '과잉생산공황'을 살펴보자. 고정자본의 비율이 증가함에 따라 이윤율은 떨어진다. 그러므로 자본은 보다 높은 이윤을 찾아 방황하다 끝내 수요-공급의 불일치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것이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이고, 그 결과가 과잉생산공황이다(이런 '법칙'이라는 표현 또한 과학 시대의 산물이다.). 현대의 독자들로서는 이 '법칙'이 전체 산업의 제조업 비중이 감소하고, 서비스 및 금융·IT 산업의 비중이 증가한 현대에도 적합한지 의문이 들 것이다(이에 대해 『제국』의 저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비물질적 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 노동계급의 범위를 확대하고자 시도한다. 네그리는 '새로운 노동계급', 저항의 주체를 '다중'multitude이라고 부른다.).
한편으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폭발하고 그 여파가 여전히 강한 2010년의 '지금 여기'를 대공황의 여파로 고통받았던 1930년과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은 제조업에서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금융으로 관심을 돌렸고, 자본의 과잉투자로 인해 결국 위기가 폭발했다는 맑스주의자들의 진단이 힘을 얻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그람시가 지적했듯이 공황이 공격 세력에게 시공적으로 전광석화처럼 조직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방어자의 사기 또한 떨어지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버리지 않으며, 자신의 힘이나 미래에 대한 자신감도 쉬이 잃지는 않을 것이다(leopord, <그람시의 옥중수고 1>). 섣불리 자본주의의 몰락을 단언하기 전에, 자본주의가 어떤 역사를 밟아왔는지 천천히 숨을 고르며 살펴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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