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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by parallax view 2010. 8. 5.
1.『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이창신 옮김 / 김영사, 2010). 올 여름 최고의 베스트셀러다. 어쩌면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될지도 모르겠다. 정의justice. 이제는 너무나 진부하다고 생각해 왔던 가치다. 어째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주목하는 걸까? 독자 대중이 '하버드대 20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라는 카피에 낚였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게다.

책 자체는 확실히 쉽다. '소수인종우대정책'처럼 아직 우리 일상에 와닿지 않는 이슈도 있다(이주여성, 이주노동자 문제는 바로 코앞에 있는데도!). 그러나 징병제와 낙태 등 한국 사회에서 첨예한 이슈를 통해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질문에 저마다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강의를 책으로 편집한 것이니만큼, 강의 현장의 역동성은 거의 드러나지 못한다는 게 단점이다. 책이 선풍적으로 팔려나가면서 CD를 부록으로 붙인 듯하다. 강의와 책의 인기 때문인지 홈페이지도 개설되어 있다(Justice with Michael Sandel).

2. 책은 딜레마를 소개하는 편과, 정의에 관한 사상을 소개하는 편으로 나뉠 수 있다. 합의 하에 사람을 살해하고 시체를 먹은 남자, 표류하는 배에서 죽어가던 소년을 죽이고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소년을 먹은 뱃사람 등 극단적인 사례들이 인상적이다. 샌델은 묻는다. 만약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딜레마가 고통스러운 것은 그 상황에 처함으로써 자신의 일관성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다음으로 연결된다. 어떤 행동이 정당한(정의로운) 행동인가? 정치사상은 이에 대한 나름의 답변이다.

3. 제목으로 돌아가자. 정의란 무엇인가? 무엇을 정의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인가? 크게 세 가지가 제시된다. 행복, 자유, 미덕. 행복은 주로 공리주의(벤담)의 테마이고, 자유는 자유지상주의와 칸트 및 롤즈, 미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이라는 도식이 성립한다. 공리주의적 행복happiness이란 경제학적 효용utility을 말한다. 효용은 양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효용을 극대화하면 사회 전체의 효용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정의로운 것이다. 공리주의의 한계는 천박함에 있다. 물질의 충족이 모든 가치에 앞서기 때문이다.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은 극단적인 주장을 편다. 모든 선택과 행위는 자유로워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사물은 자유롭게 거래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의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장기를 파는 행위에 자유가 있는가? 자유지상주의는 생존의 필연성을 무시한다.

칸트와 롤즈는 개인의 자유의지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같다. 칸트는 이성에 기반한 자기원칙에 따라 행동할 때 진정 자유롭고, 이것이 곧 정의라고 한다. 칸트에게 자유와 윤리는 같은 것이다. 한편 롤즈는 모든 사람들의 상황이 똑같고 어떤 정보도 주어지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가장 평등한 분배를 선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가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본다. 홍기빈의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에서도 나타나듯이 공동체polis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미덕이 지켜져야 한다.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헌신하는 행위가 곧 정의로운 삶으로 이어진다(leopord, <책세상문고 서평>). 주요 사상들을 도식화하자면 대략 이와 같다.

4. 샌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제 옹호를 비판하는 한편, 공동체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을 확장한다. 그는 롤즈의 정의론에서 빠져나오는 실마리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얻은 듯하다. 샌델은 매킨타이어 등과 함께 '공동체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는 개인 선택이 과연 정당한가를 묻는다. 매킨타이어의 『덕의 상실』이 인용되는 맥락이 여기에 있다. 이들이 말하는 정의로운 인간은 서사적 인간, 즉 역사적 인간이다. 선조의 잘못을 사과하고 성공을 찬양하는 행위를 미덕으로 간주하는 이유다. 샌델이 롤즈를 비판하는 이유는 인간이 '개체'가 아니라는 데 있다. 서사적 인간은 공동체의 기억을 공유하고 이를 이어나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샌델 등의 공동체주의는 미국적인 가치를 끌어안고 있다. 애국심과 마을 공동체town의 유지 등은 미합중국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유지해 온 동력이다(leopord, <혁명론>). 이 입장에서 보면 공화당도 민주당도, 보수주의자도 리버럴도 모두 끌어모을 수 있다. 여기서 좌파적 입장을 통해 책에 소개된 사상들을 비판할 수 있다. 공리주의적 효용과 자유지상주의의 자유는 '계급'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허구다. 인간을 '개체'로 전제할 때의 맹점은 세계의 여러 환경적·경제적 조건을 무시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서사적(역사적, 공동체적) 인간은 공동체의 미덕을 정의의 조건으로 본다는 점에서 공산주의communism와도 맞닿는 듯하다. 그러나 공동체주의는 계급(인종)갈등을 봉합하고자 하는 너무나 미국적인(특수하고, 일국적인) 시도가 아닐까 싶다. 계급갈등에 관해서는 공화주의에 비해 오히려 퇴보한 면도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현재 민주당(오바마) 정부의 가치를 대변하는 듯한 이 사상이 한국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5. 책에서 주요한 딜레마로 제시된 징병제 문제는 그런 점에서 한국에도 유의미한 이슈다. 책에서는 '모병의 시장화'가 갖는 딜레마를 주로 소개하고 있다. 징병제 국가인 한국에서는 여전히 낯선 이슈이지만, 전쟁 기업의 활성화와 용병의 등장은 군사적 지구화라는 측면에서 무시할 수 없는 흐름이다. 한국은 주로 무기의 개발과 생산, 판매를 통해 군사적 지구화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여기서 "모병제가 징병제보다 더 나은 제도인가?"라는 의문을 던질 수 있다. 한 때 모병제 전환이 이른바 진보진영의 평화정책으로 제시된 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모병제를 통해 '용병화'된 군대는 시민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쉽다. 이는 파병 문제로 이어진다. 아직까지 한국은 분단이라는 조건으로 인해 타국으로 보낼 병력이 제한적이지만, 북한 군사력에 비해 비대칭적인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군사력으로 조건을 제한하면 파병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프간과 이라크 파병에서도 나타나듯 파병은 여전히 국민적인 이슈다. 그런데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된다면 어떻게 될까? '직업 군인'의 파병은 국민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6. 샌델은 정의의 문제가 곧 윤리의 문제임을 드러낸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효용)이 곧 모든 것이라는 관념이 세계 경제위기를 계기로 무너지고 있는 듯하다. 책의 극적인 판매는 정의가 그 자체로 전지구적인 테마라는 것을 증명하는 지도 모르겠다. 샌델의 공동체주의는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그런 점에서 이 책을 "CEO가 여름 휴가 때 읽어야 할 필독서"로 선전한다는 것은 역설이다.). 이명박은 왜 정의롭지 못한가. 책을 읽고 나면 여기서 끝낼 것이 아니라, 이명박 시대가 지나고 나서도 정의를 고민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