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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혁명사

by parallax view 2009. 6. 22.
역사는 승자의 것이다. 승자의 사관들은 이 명제에 충실하게 승자의 콧대를 세우고, 패자의 무릎을 꺾어 이를 후세에 전하고 싶은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당대 사람들은 승자의 오만과 기만을 대번에 꿰뚫어보았다. 동시에 이들은 종종 무기력해서 역사에 대한 자신의 절망과 회의감을 말과 글로 밖에는 풀어내지 못한다. 때문에 조조의 역사에 저항한 유비의 역사가 살아숨쉴 수 있었고, 프랑코 독재권력과 싸운 인민전선의 까딸루냐가 기억에 새겨질 수 있었을 것이다. 패자의 역사가 승자의 역사보다 빛나보이는 이유는 당대에 대한 회한 때문일 게다.

로널드 사임의 <로마혁명사>(로널드 사임, 허승일, 김덕수 옮김 / 한길사, 2006)는 로마 제국 격동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로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로마 공화정 말기 ~ 제정 초기를 무대로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브루투스, 키케로, 아그리파 등 독재관 카이사르 사후 혼란의 시대를 헤쳐간 인물들이 중심에 서 있다. 사임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의 이동을 '혁명'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그 변화가 정치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기 때문에 제시한 개념이다. 하지만 계급적·경제적인 변화를 수반하는 근대의 혁명 개념과는 좀 거리가 있다. 고대사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 따른 약간 나이브한 시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로 놓고 보자면 에이드리언 골즈워디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2006) 이후의 사건을 다룬다. 흡사 삼국지연의가 제갈량 사후의 강유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듯이, 작품은 카이사르 사후의 아우구스투스가 이야기의 중심이다.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 5 : 율리우스 카이사르(하)> 후반부에서 대충 얼버무린 감이 있는 카이사르파와 공화정파 사이의 대립을 자세하게 조명한다는 점에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흥미로운 점은 카이사르를 암살한 '해방자들'과 카이사르파의 수장인 안토니우스 사이의 밀월관계인데, 공화정 말기가 카이사르파 vs 공화정파라는 단순한 도식과는 거리가 먼 시대라는 것이다.

사임은 로마사 연구의 전통인 집단전기학(prosopography)에 기반해 로마의 정치를 당파(붕당, faction) 간의 경쟁과 갈등으로 파악한다. 이런 연구방법은 파트리키이 귀족가문(전통적인 세습귀족)과 노빌레스 귀족가문(평민 출신 귀족)끼리 결혼, 파혼과 입양 등으로 복잡다단하게 얽힌 로마 상류사회를 파악하는데 어느 정도 불가피한, 복잡한 방법이다. 사임의 관점은 '과두제의 철칙'(어떠한 정치체제든 소수에 의한 지배가 발생하는 경향)에 기반한, 로베르트 미헬스의 <정당사회학>을 연상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인물의 이름만으로 로마사를 서술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장애에 부딪힌다. 예컨대 시오노 나나미처럼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의 개인적인 역량과 특징이 로마 전체 역사를 바꿨다는 식의 서술은 그들이 어떤 가문 출신이고,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권력을 획득하려고 했는지 얼버무리는 경향을 보인다. 과연 그녀가 말한대로 로마 제정은 카이사르가 청사진을 그리고, 아우구스투스가 토대를 닦았고, 티베리우스가 완성했으며, 클라우디우스가 다듬었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카이사르도, 아우구스투스도 당파적인 인물들이고 당파 구성원들의 압력과 상호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 점에서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들은 파트리키이 귀족가문과 노부스 호모(신인) 모두다.

요컨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의 이행은 도시국가 로마에 대한 이탈리아 및 속주의 복수였으며, 파트리키이 귀족가문의 몰락과, 노부스 호모를 포함한 기사계급(일종의 중간계급) 부흥이 교차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기존 계급사회가 완전히 전복되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볼 수 없는 것은 로마 사회가 본질적으로 보수적이기에 최소한 껍데기(공화정)는 씌워야 했고, 또 새로운 가문의 부흥은 피라미드식 계급의 철폐가 아니라 피라미드 꼭대기의 대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우구스투스의 프린키파투스(원수정) 체제의 기반이다.
 
한편, 사임은 아우구스투스보다 안토니우스에게 보다 호의적이다. 시오노 나나미가 안토니우스를 '카이사르의 우직한 레가투스급 이상이하도 아닌 범부'로 묘사하는 것과는 달리, 사임이 바라보는 안토니우스는 패배에 쉽게 굴하지 않고 냉철하게 사태를 수습하고 세력을 굳힌 카이사르파 수장이다. 적어도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기원전 44년 3월 15일부터 옥타비아누스와 제2차 삼두정치를 시작한 해(기원전 43년)까지의 안토니우스는 노련한 장군이었고 뛰어난 정치가였다. '애송이' 옥타비아누스가 19살에 정계에 첫발을 디뎠을 때 안토니우스는 38살. 혈기와 경륜을 고루 갖춘 당파 지도자였던 만큼 권력은 이미 안토니우스에게 있었다. 카이사르 암살자인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었다. 옥타비아누스 카이사르는 자신의 이름('카이사르의 아들')과 행운의 덕을 충분히 활용해 최고 권력에 오를 수 있었던 '능력 있는 위선자'라는 게 작품의 해설이다.

여기서 프린키파투스 체제의 핵심은 권력의 독점이다. <로마인 이야기 6 : 팍스 로마나>에서도 나와 있듯이 아우구스투스는 원로원 귀족을 지칭하던 '프린켑스'라는 이름을 독점하고, 군사력을 독점하고(임페라토르), 로마 인민의 보호자로서의 영향력을 독점했다(호민관 특권). 그 동안 로마 공화정을 팽창시킨 동시에 분란을 조장했던 귀족들의 리베르타스(자유)와 비르투스(역량)의 시대는 끝났다. 프린켑스의 아욱토리타스(권위)와 클리엔텔라이(피호관계)가 제국의 꼭대기에서 원로원 귀족과 제국 인민을 다스린다. 이와 반대로 로마 공화정은 모든 귀족가문 하나하나가 일종의 왕이었기에 서로 경쟁할 수 밖에 없었던 체제였고, 공화정의 몰락에는 불가피한 면이 있는 것만 같다. 그 활기 넘치는 시대는 질서와 팍스(평화) 아래 끝났지만, 그럼에도 과연 공화정에서 제정으로의 변화는 필연이었을까. 사임은 당대의 관점에서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한다. 사회과학과는 달리 역사는 우연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로마사와 그에 관계된 역사가를 살펴보면 공화정 옹호자와 제정 옹호자 사이의 균열이 현대에도 고스란히 반복되는 것만 같다(<로마인 이야기>만 놓고 보면 시오노 나나미 역시 제정 옹호자로 보일 정도다.). 사임은 공화정과 제정 그 어느 쪽에도 역사적 우선순위나 가치평가를 매기지 않지만, 작품에서는 공화정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아우구스투스의 평화(팍스 아우구스타)는 피 비린내 나는 평화"라는 역사가이자 원로원 의원 타키투스의 관점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는 선에서, 사임은 정치적 자유가 질서의 이름 아래 사라진 프린키파투스 체제에 비판적이다.

히틀러와 무솔리니 같은 파시스트 당파 지도자의 권력이 하늘을 찌르던 1930년대, 역사학계마저도 지도자의 모범으로서 아우구스투스를 높이 평가하던 시대에 대한 반대인 셈이다. 사임의 시도는, 로마사가 으레 그렇듯이 독자들에게 현재형인 물음을 던진다. 평화와 질서를 위해 시민적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 로마 귀족의 리베르타스가 현대 시민의 자유와 똑같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로마혁명사 1
로널드 사임 지음, 허승일.김덕수 옮김 / 한길사
나의 점수 : ★★★★★

'로마사의 프린켑스' 로널드 사임의 역작.
격동의 고대 로마와 현재에 대한 냉철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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