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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떡밥춘추 리뷰

by parallax view 2009. 6. 26.
0. 드디어 <떡밥춘추> 제1호 서평을 쓴다. 이 리뷰는 회지 볼륨에 맞는 슬림한 단평을 추구한다. (과연?)

1. <떡밥춘추>의 멤버인 경군 님의 부탁을 받아 축전을 썼다. 회지의 방향이고 뭐고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막연히 '재밌는 이야기' 라는 컨셉으로 썼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역사밸리를 떠도는 떡밥을 하나하나 청소하는 방향이어서 내껀 좀 거리가 있는 축전이 아니었나 싶었다. 에라 모르겠다.

2. 하나하나 내용 짚어보기

1) rumic 71 님의 <초고대비사와 다케우치 문헌> : 이 글은 '초고대문명설'에 대한 일종의 풍자인데, 고대 4대 문명 이전에 그보다 더 위대한 문명이 존재했다는 초고대문명설은 그 자체의 허구성 때문에 도리어 더 많은 호기심을 자아내곤 한다. 일본의 수많은 역사 위작들 중 하나인 '다케우치 문헌'은 그 스케일이 여러 위작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대륙도 넘어 지구를 포괄한 우주적인 내용-원시신인 모토후미쿠라이누시노오오미카미가 원시우주를 창성, 2대신이 은하계 우주 창성... 여기까지-이어서 이건 마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세계관이 아닌가. 읽으면서 낄낄대기에 좋은 가십성 기사.

2) Show 님의 <로마사> : 동양사서의 어휘를 차용해 카이사르 시대를 설명한, <초고대비사와 다케우치 문헌>과는 약간 다른 의미에서의 풍자, 패러디다. 로마 공화정 말기에 대해 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내용인데, 당대의 명사들이나 민족을 동양식으로 표현한 것이 재밌다('로마사 열전 역신전 카토'라던가 '속주열전 서융 갈리아'라던지). 전체적으로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연상케 한다.

3) 耿君(경군) 님의 <팔린통Bingo! : 내가 천일창의 아들이라 이 말인가> : <떡밥춘추>가 왜 <떡밥춘추>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냐면 바로 경군 님의 블로그 耿君春秋(경군춘추) 때문. 곤도 세이쿄의 <팔린통빙고>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또 그 내용은 어떠한지에 대해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다. <팔린통빙고>의 요점(?) 중 하나는 삼국시대 신라 초대 부족장(거서간 혹은 차차웅) 중 하나인 석탈해가 일본으로 귀순한 신라 귀족 천일창의 아들이란 주장. 일제 강점기인 1931년에 출간된 <팔린통빙고>는 당시 조선을 비롯해 중국, 몽골 등에 진출해 여러가지 가설-핵심은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들이 아닐까 싶음-을 짜냈던 당시 (말 그대로) 허당 지식인들의 면면을 드러내고 있다.

4) 야스페르츠 님의 <귀축석호(鬼畜石虎)> : 예의 야스페르츠 님의 주된 포스팅꺼리인 중국 5호 16국 시대(A.D 304 ~ 439)를 배경으로, 이민족이 화북(양쯔강 북쪽의 평야지역)을 휩쓸던 당시 갈족이 세운 후조(後趙)의 임금이던 석호(石虎)의 잔혹상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명색이 귀축(짐승)이라는 별칭이 붙었건만 석호의 행동은 짐승이라고 하기엔 그 강도(?)가 약하다. 석호의 악행여부를 가늠하는 세 가지 기준 : 무리한 전쟁, 사치와 향락, 참혹한 살인 이것들은 대부분의 전제왕권국가 지배자들이 해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즉, 석호 또한 폭군(tyrant)이기는 하나, 역사상 수많은 폭군들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는 진시황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다양한 지식을 국가단위로 파괴하고 과잉된 법률로 민초를 살해했다는 점에서 특히-이며, 조선의 태종이나 세조에 비할까 말까 한 정도인 것 같다. 또, 석호보다 그의 아들들인 석수와 석도의 악행이 더 눈에 띄는데, 자신에게 지나치게 적대적이거나 아예 암살하려고 작정한 아들들을 냉혹하게 처리하는 것은 동양적 전제정에서는 차라리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과연 석호를 귀축으로 몰아붙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역사는 패자에 냉정하고, 이민족의 국가에 대한 한족(漢族)의 역사기술이 반드시 공정하지는 않다는 점 역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5) 한단인 님의 <중대 신라 왕실 전제 권력에 대한 사소한 떡밥 : 경덕왕 16년 녹읍 부활의 의미> : 묘하게 논문스러운 글을 올리신 한단인 교수님께 우선 묵념. 수고하셨습니다. 신라 경덕왕 당시 녹읍의 부활을 진골귀족의 부상(전제권력의 약화)으로 해석하는 역사학계의 주장에 반해, 국왕이 귀족계급과의 정치적 거래의 일환으로 녹읍을 부활시켰고 그 댓가로 궁궐 수리, 행정기구 재편성 등을 이뤘다는 점에 미루어 녹읍이 전제권력의 약화가 아니라 강화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주장을 펼친다(녹읍의 성격도 진골귀족보다는 국왕세력에게 더 유리하게 바뀌었다는 점도 부각시킨다.). 흥미로운 주장이지만 기왕 논문류의 글로 갔다면 이 주장의 원저자인 전덕재 교수의 글을 삽입해 주장을 보강하는 작업이 필요했을 것 같다.

한편 고구려 멸망 뒤 당나라가 김유신 등 가야계 장군들에게 평양지역의 말 목장 소유권을 분배함-당시 말은 주요한 재산이었으며, 말 목장은 기병의 공급지로서 고대국가의 군사력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으로써 신라의 지배계급내 갈등을 유도했다는 강경구 교수의 주장이나, 본문 중에 언급된 가야계 장군 김군관의 숙청이 국왕세력의 정치적 야심과 재정확보를 배경으로 이뤄지지 않았는가 하는 한단인 님의 추측 역시 역사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6) 自重自愛(자중자애) 님의 <공민왕 암살사건의 진상에 대하여> : 드라마 <신돈>과 영화 <쌍화점> 등으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확보된 고려 말 공민왕 이야기. 자중자애 님은 공민왕을 둘러싼 난잡한 소문-대리성교와 엿보기, 동성애 등-이 후대의 사서(특히 '고려사')에 오르내린 이유는 이인임을 비롯한 신돈 잔당이 공민왕 살해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날조한 주장을 고려 입장에서 역신(逆臣)인 이성계가 조선 건국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에 적극적으로 동참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정조 암살떡밥보다 정도는 덜하지만-적어도 공민왕 암살은 공식적으로 기록에 남아있으니까-역사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소재이고, 또 '암살사건의 진상'이라는 강렬한 제목을 걸어놓은 만큼 상당히 의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특히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움직이는 손가락>에서 실마리를 찾았다는 대목에서는 자신감이 드러난다.). 그러나 과잉된 의욕에 반해 내용은 좀 부실한 감이 있는데, "모든 정치인의 죽음 뒤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깔려있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명제에서 놀다 보니 다소 빤한 결론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또, 공민왕의 죽음에 선행하는 핵심인물 신돈에 대한 이야기가 생략되었고, 공민왕 암살사건 날조의 또 다른 주요인물 이성계에 대해서도 설명이 부족하다는 인상이 든다. 한편 공민왕의 죽음에 연루된 홍륜, 홍관, 한안, 권진, 노선 등과 홍륜의 아이를 잉태했다는 누명을 쓴 익비 한씨의 배경으로 고려말 권문세족이 있다는 집단전기적 설명은 좀 더 보충이 필요하긴 하지만 좋은 참고가 되었던 것 같다.

7) 惡戱(악희) 님의 <모녀(母女), 마수(魔手)에 빠지다> : 역시나 악희 님답게(?) 역사상 존재하는 가십-특히 섹스와 관련된-을 가벼운 톤으로 신랄하게 묘사했다. 이번 소재는 조선 초기의 세도가였던 이순몽. 비록 첩의 딸이라 해도 사람을 발로 차 죽일 정도로 대범한(?) 위인-야스페르츠 님의 '귀축'이라는 표현은 차라리 그에게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인 이순몽이 일찍이 과부가 된 권씨를 얻기 위해 권씨 집안이 이순몽에게서 꾼 곡식으로 협박하고 더 나아가 그녀의 어머니를 측실로 삼겠다고 엄포를 놓아 결국 권씨를 불러들이고 말았다는 기술. 이 이야기의 결말은 다음 실제 기록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장가간 지 며칠 후에 잔치를 베풀었는데 순몽이 여러 사람이 있는 데서 찬물(饌物, 반찬)을 들고 권씨에게 이르기를, '만일 나를 사랑한다면 이 음식을 먹으라' 하매, 권씨가 곧 받아먹으니, 만좌(滿座, 잔치손님들)가 소매를 가리었다. 그 음흉하고 방증스러움이 이와 같았다……. - 세종 125권, 31년(1449 기사 / 명 정통(正統) 14년) 8월 20일(정묘) 첫번째 기사 영중추원사 이순몽의 졸기 中에서)

당대의 기록이 절절하다. 지못미...

3. 얇은 분량에 상당히 많은 내용을 담았는데 그럼에도 과욕을 부리지 않은 글도 있고, 분량에 비해 욕심을 좀 부렸다 싶은 것도 있다. 한편 야스페르츠 님이나 자중자애 님, 악희 님은 당대의 성관념과 현대의 관점을 다소 혼동하고 있지 않나 싶은데, 물론 현대적 관점 뿐만 아니라 당대에도 용서 못할 죄들이 있긴 하지만 동성애나 일부다처(혹은 그 반대)가 반드시 사회악은 아니었다는 점-물론 조선의 경우, 왕조 초기를 넘어서면서 더욱 엄격해지지만-은 고려해야 하지 않나 싶다.

4. 단평을 쓴다더니 기어이 길게 쓰고 말았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한줄평까지.

rumic 71, <초고대비사와 다케우치 문헌> : 다케우치 문헌=월드오브워크래프트.
Shaw, <로마사> : 대진국 가이사 열전.
耿君(경군), <팔린통Bingo! : 내가 천일창의 아들이라 이 말인가> : 소쿠타루해쨩은 니혼노사라무데스.
야스페르츠, <귀축석호(鬼畜石虎)> : 귀축이 되기엔 2% 모자란.
한단인, <중대 신라 왕실 전제 권력에 대한 사소한 떡밥 : 경덕왕 16년 녹읍 부활의 의미> : 교수님 만세.
自重自愛(자중자애), <공민왕 암살사건의 진상에 대하여> : 이 죽일 놈의 쌍화점.
惡戱(악희), <모녀(母女), 마수(魔手)에 빠지다> : 지못미 권씨...

5. 이렇게 블로거들이 모여서 공동작업을 거쳐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좋은 시도라고 본다. 하물며 역사에 대해 잘못 알려져 있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떡밥'을 분리수거하는 작업 아닌가. 더 좋은 내용이 담길 <떡밥춘추> 제2호를 기대하며.


덧 : 경군 님 덕분에(경군 님을 처음 만났을 때였음) 일본 전국무장 중 하나인 우에스기 겐신에 대한 낭설에 혹하지 않을 수 있었음. (위키백과, <우에스기 겐신>) 한국 위키백과의 우에스기 겐신 내용이 일본 위키백과 번역인데다, 우에스기 겐신 여성설이 아주 신빙성 있게(?) 역사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떡밥이다 보니... 경군님 다시 한 번 ㄱ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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