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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오랫만에 책 얘기

by parallax view 2009. 6. 13.
0. 과제한다는 핑계로 책을 게을리 읽은 것 같다. 하지만 독서시간을 까먹는 건 팔 할이 멍 때리기.

1. 김정희가 엮은 <공정무역 희망무역>(김정희/동연, 2009)은 공정무역에 대한 책이다. 엮은이는 에코 페미니즘(Eco feminism)의 관점에서 아시아의 공정무역 현황을 제시하는데, 사실 <경제사와 세계경제> 수업의 자율과제 주제로 공정무역을 선택했기 때문에 읽은 것. 막상 이를 토대로 하기엔 여러모로 한계가 있었다. 공정무역에 대한 희망적인 전망 뿐 아니라, 거기서 생명과 여성주의 관점도 뽑아내려다 보니 오히려 공정무역의 전체상을 보는데 장애가 되지 않았나 싶다. 애초 이 책과 일부 자료만 가지고서 내용을 뽑아낸 게 실수였다. 이 약점은 한국공정무역연합 박창순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고스란히 노출되었는데, 박창순 대표는 공정무역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인터뷰를 오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는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꼭 이 책 때문이라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일본에서 공정무역운동이 그나마 활발하게 전개되는 만큼 그 쪽 경험이 많이 소개되는데, 일본 공정무역운동 10년의 배경에 생활협동조합이 있다는 게 흥미롭다. 공정무역 관련한 사전지식이 있는 분들에게 좀 다른 관점을 제공할 수 있는 책.




2. <로마혁명사1>(로널드 사임, 허승일, 김덕수 옮김/한길사, 2006)에서 혁명은 근대적이고 계급적인 의미에서의 혁명이라기보다 로마 정치체제의 변화와 관련된 약간 헐거운 개념이다. 즉, 로마 공화정에서 제정으로의 이행 자체를 말한다. 로널드 사임은 1930년대 파시즘에 대한 지지가 역사학계에도 만연했던, 파시스트 지도자들을 로마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에 빗대곤 했던 시기에 아우구스투스를 비판적으로 묘사한 도전을 감행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에 출간된 덕분에 학계의 비난을 모면했을 뿐더러 로마사 연구에 대한 또 다른 전례를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추측된다. 집단인물사적인 관점에서 공화정 말기 로마 귀족들의 계보가 복잡다단하게 펼쳐지는데, 책을 읽기 전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4~7권까지는 미리 읽어두는 게 좋을 것이다. 이 책까지 읽었다면 시오노 나나미가 묘사한 카이사르나 로마 제정에 대한 환상 쯤은 일찌감치 사라질 게다. 로마 공화정은 귀족들의 붕당(당파)에 기반한 과두제였고, 카이사르의 후계자 아우구스투스 역시 이런 전통을 따라가지만, 권력을 차츰차츰 독점하면서 전통적인 귀족들을 억누르고 또 회유했다. 사임은 이를 프린키파투스(원수정) 체제라고 부른다. 요새 2권을 읽는 중.



3. 조한혜정과 연세대 문화인류학 수업을 같이 들은 학생들의 공동창작물인 <교실이 돌아왔다 : 신자유주의 시대 대학생의 글읽기와 삶읽기>(조한혜정 외/또하나의문화, 2009)는 2006년 가을학기 수업의 경험을 고스란히 꺼내놓는다. 조한의 실험방식은 판을 깔아주는 교육자와 판에서 노는 기획자 간의 유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책은 학생들의 글이 앞서고 조한의 정리글이 뒤서는 형식으로 짜여져 있으며, 중반을 지나면서 학생들의 설익은 문제의식이 점점 뚜렷해지는 것이 보인다. 그럼에도 학생들의 글보다 조한의 글이 눈에 더 잘 들어오는데 나는 글의 완결된 형식에 익숙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포인트(아이들의 성장)는 제대로 못 짚지 않았나 싶다. 조한의 실험방식 자체에는 이의가 없지만, 이 실험이 가능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배경-특히, 연세대라는 학벌브랜드-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는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배움 공동체의 복원이 '지금/여기'에서 갖는 의미는 소중하지만,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좀 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게다. 우리학교 <한국경제론> 강의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는데, 그 이유가 여기에 일부 나와있지 않을까 싶다.

4. 그나저나 <떡밥춘추>는 언제 리뷰 쓰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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