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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6

노르웨이의 숲 하루키의 소설을 읽거나 그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언젠가, 하루키 소설 같은 건 소설도 아니라고 말했던 누군가가 떠오르곤 한다. 그는 제법 사회적인 지위도 있고 글 깨나 쓰는 엘리트였다. 아마도 그는 하루키 소설이 지금도 베스트셀러에 오른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뉘앙스로 말했던 것 같다(늘 그렇듯 기억은 왜곡되지만). 하지만 하루키가 당신보다는 훨씬 나은 작가일 것입니다, 라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비겁하게도 직업적인 이유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노르웨이의 숲』 이후로 너나 할 것 없이 하루키를 베꼈던 시절에는 그런 생각을 한 번쯤 해 보는 것도 괜찮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루키가 세계적인 명사 자리에 올라 노벨문학상을 받으니 마니 하는 이야기가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 2017. 10. 5.
내가 싸우듯이 『내가 싸우듯이』(문학과지성사, 2016) 정지돈의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는 현학자의, 현학자에 의한, 현학자를 위한 소설 모음이다. 작가의 말조차 현학으로 가득 차 있다.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그게 매력이었는데, 「건축이냐 혁명이냐」를 비롯해 '우리들'로 묶인 단편들은 너무 수다스럽다. 그 수다스러움에 지치다 새벽녘이 조금 되기 전에 겨우 읽기를 마쳤다. 전체 단편 중에서는 「미래의 책」이 가장 나은 것 같다. 그의 글은 이론가가 꾸는 꿈, 혹은 이론이 꾸는 꿈 같다. 이론의 파편이 무한히 흩어지고 배열되면서 무한을 이루는, 텍스트의 퍼즐이 그 꿈의 형식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글은 영화와 닮아 있으며 영화 이미지를 쫓는 것 같다. 여기서 내러티브가 아니라 이미지라는 게 중요하다. 텍스트는 이미지가.. 2016. 8. 27.
160614 정지돈의 『내가 싸우듯이』(문학과지성사, 2016)와 한병철의 『아름다움의 구원』(문학과지성사, 2016), 임성순의 『자기 개발의 정석』(민음사, 2016)을 샀다. 알라딘에서 『내가 싸우듯이』 유리잔과 『아름다움의 구원』 안경닦이 천, 이학사 세계철학사 연표를 붙여 주길래 그것도 골랐다(유리잔은 2,000 마일리지였다. 갈수록 내가 책을 사서 사은품을 덤으로 받는 건지, 사은품을 샀더니 책을 덤으로 받는지 모르겠다는 독자들이 나올 만하다). 『내가 싸우듯이』는 무선 제책인데도 덧싸개를 씌웠다. 덧싸개는 유산지 같은 재질로 되어 있고 뒷면에 글씨가 빼곡히 적혔다. 편집자와 디자이너 죽어 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한병철 책은 이젠 의무감에 산다. 좋든 싫든 지금 와선 그냥 모으는 시리즈가 되었다. 앞.. 2016. 6. 14.
인생사용법 『인생사용법』(2012, 문학동네) 2015년 12월 중순에 조르주 페렉의 『인생사용법』을 다 읽었다. 원래는 하루에 한 챕터씩 모두 99챕터를 매일 거르지 않고 읽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못 읽는 날도, 읽기를 미루는 날도 있다 보니 몰아서 읽을 때가 더 많았다. 그럴수록 조바심이 나서 서둘러 읽으려 했다. 페렉은 『인생사용법』을 침대에 엎드려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염두에 두며 썼다고 했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리 만만치 않다. 그가 사물의 세계를 편집증적으로 파고들 때 이를 제대로 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사물의 세계는 곧 상품의 세계이기도 하다. 페렉은 마르크스에 이어 상품의 세계로 내려간 작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사물에서 삶을, 이야기를 끄집어 내고 다시 인물과 사물을.. 2016.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