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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노르웨이의 숲

by parallax view 2017. 10. 5.

하루키의 소설을 읽거나 그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언젠가, 하루키 소설 같은 건 소설도 아니라고 말했던 누군가가 떠오르곤 한다. 그는 제법 사회적인 지위도 있고 글 깨나 쓰는 엘리트였다. 아마도 그는 하루키 소설이 지금도 베스트셀러에 오른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뉘앙스로 말했던 것 같다(늘 그렇듯 기억은 왜곡되지만). 하지만 하루키가 당신보다는 훨씬 나은 작가일 것입니다, 라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비겁하게도 직업적인 이유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노르웨이의 숲』 이후로 너나 할 것 없이 하루키를 베꼈던 시절에는 그런 생각을 한 번쯤 해 보는 것도 괜찮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루키가 세계적인 명사 자리에 올라 노벨문학상을 받으니 마니 하는 이야기가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지금도, 과연 하루키 소설이 '세계문학'의 반열에 오르는 게 맞느냐는 물음은 던져 볼 수 있는 일이다(진짜 던져야 할 물음은 따로 있다. 과연 '세계문학'이란 무엇이며, 거기에 이토록 큰 권위를 부여하는 건 어떤 이데올로기냐고). 그러나 나는 하루키 소설의 유행이란 그저 이 무너져 내리는 세계의 징후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에 동의를 표하고 싶다. 징후에게 원인을 전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선前線이 무너져 더 이상 너는 누구의 편이냐고 물을 수 없는 세계에 실망한 동시에 안도한 사람들은, 지나간 시간을 몇 곡의 흘러간 노래(비틀스, 마일스 데이비스, 조지 거슈윈 따위)와 스콧 피츠제럴드, 토마스 만의 소설로 회상하는 『노르웨이의 숲』 같은 소설에 열광했다. 사실 '열광'이라는 말은 하루키 소설에는 전혀는 아니더라도 거의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긴 하다. 열광조차 빛바래게 하는, 심심하고 잠잠한 세계가 바로 '하루키 월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특유의 '분위기' '기분'에 휩싸여, 우리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연휴 동안 지방을 오가며 틈틈이 『노르웨이의 숲』을 읽으면서, 그럼에도 나는 이 소설도 별수 없이 '근대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기와 세계 사이의 갈등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근대 소설은 그 이전 시대의 이야기들과 달랐다고 나는 알고 있다. 하루키 이후의 일본 소설을 두고 '사소설적 경향'이니 '탈근대'니 운운한 이들이 많았지만, 『노르웨이의 숲』은 파편적으로나마 '풍경'을 전경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풍경 속에 선 자신을 돌아본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소설로 보였다(근대성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돌아봄', 바로 반성이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주인공의 심상으로 떠오르는 것은 자신의 삶에서 일찌감치 퇴장했던 나오코와 함께 걸었던 풀숲의 풍경이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에게 던져진 물음, "너, 지금 어디야?"를 들은 주인공은 자신의 위치를 좀체 가늠하지 못해 당혹스러워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자신이 선 곳을 돌아보면서(혹은 둘러보면서) '유아' 혹은 '소녀(년)' 시절을 끝마치고 '어른'이 된다. 그런 식으로 풍경과 마주치고 세계를 대면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라고 질문을 던지며(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라는 질문은 결코 스스로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 지금 어디야?"라는 외부의 물음 혹은 부름만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여전히 하루키는 그를 비웃는 이들보다는 훨씬 나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나도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나이와 비슷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문장들이 나의 흐린 기억을 툭툭 건드려 다시 깨어나게 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어쩌면 앞서 언급한 부분들은 소설로서의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소설이 여전히 역사의 징후일 수 있다면, 하루키 소설은 그 역할에 나름대로 충실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하루키가 노벨상을 받든 말든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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