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 Archive

예술가, 토박이, 활동가, 창의적 자영업자… 이들은 공존할 수 있을까?

by parallax view 2016. 6. 27.

리뷰 아카이브 기고문(16.05.20)

<예술가, 토박이, 활동가, 창의적 자영업자… 이들은 공존할 수 있을까?>

 

 

예술가, 토박이, 활동가, 창의적 자영업자… 이들은 공존할 수 있을까?

서촌/세종마을의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진정한 도시 동네' 만들기의 어려움을 보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그리 입에 잘 익지 않는 이 외래어는 지대의 상승과 그로 인한 동네의 사회적·문화적 변화를 나타낸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뉴욕이나 런던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티’ 서울에서도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신현준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의 「오래된 서울에서 진정한 도시 동네(authentic village) 만들기의 곤란: 서촌/세종마을의 젠트리피케이션 혹은 복합적 장소형성」(도시연구: 역사·사회·문화 14호, 2015년 10월)은 서울의 서촌 혹은 세종마을을 무대로 ‘도시 동네’를 만들고자 하는 여러 행위 주체를 살핌으로써 젠트리피케이션의 복합적인 성격을 밝히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노동계급 및 방기된 주택이 소생되어 그 결과 그 지역이 중간계급 동네로 변환되는 것”이라는 게 통상적인 정의다. 이 말은 1960년대 런던의 노동자 지구가 개발되어 중산층 주거지로 변화된 것을 설명하는 데 쓰였다. 하지만 서울을 포함한 아시아 대도시 연구에서는 아파트 재개발을 논하기 위해 젠트리피케이션을 원용하면서 그 의미가 다소 희석되었다. 

 

  연구자가 참여관찰과 심층면접을 통해 연구를 진행한 곳은 서울 종로구의 통의동과 효자동, 통인동, 옥인동 등 경복궁 서쪽과 인왕산 기슭의 15개 법정동이다. 이 일대는 권력의 중심인 청와대와 역사 유적인 경복궁이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개발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재개발 사업이 산발적으로 추진되고, 이명박, 오세훈 전 시장 재임기를 거치며 재개발을 통한 도시 마케팅 혹은 도시 브랜딩이 수행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서울 곳곳이 ‘역사문화도시’라는 명분 아래 ‘문화공간’으로 개발되었다. “도시가 잘 팔려야 나라가 부자가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시의 브랜드입니다”라는 오세훈 전 시장의 발언은 도시가 전 세계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연예 기계entertainment machine’가 된, 신자유주의 도시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촌이냐, 세종마을이냐
경합하는 주민들

 

  통의동과 효자동 일대는 인사동이나 북촌 같은 ‘문화지구’와 비교하면 개발이 덜된 곳이다. 그러나 연구자는 이 일대의 다양한 행위주체가 특유의 젠트리피케이션을 형성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서촌’이라는 명칭을 고수하는 행위자와 ‘세종마을’이라는 명칭을 강조하는 행위자 사이에 갈등이 나타나 흥미롭다. 2010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서촌 조사보고서』를 출간하고, 공공 출간물 외에도 『조선의 중인들』(2008)이나 『오래된 서울』(2013) 같은 책이 출간되면서 이 지역의 정체성을 ‘서촌’으로 규정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냈다. 건축가, 디자이너, 출판인, 미술가 등 ‘창조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지식인들은 서촌의 새로운 주민이 되어 지역 문화를 일구고자 한다.

 

 

서촌은 복합적인 장소 형성이 진행 중인 '핫 플레이스'다. (사진: http://yozmidea.tistory.com)

 

  반면 이 ‘예술가들’과 경합하는 ‘토박이’가 있다. 서촌이라는 명칭에 반발해 ‘지명 바로잡기 운동’을 펼치는 이들은 세종대왕이 이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를 들어 ‘세종마을’이라는 명명을 고수했다. 종로구 지명위원회는 경복궁 서측 일대를 서촌이라고 부르는 것은 “역사적 근거가 없는 잘못된 명칭”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종마을은 관청이 지원하는 장소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토박이들 모두가 세종마을이라는 명칭을 반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연구자와 면접을 한 토박이 주민들은 “한편으로는 갑작스러운 동네의 상업적 변화에 낯설어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동네의 가치의 상승을 원하는 양가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서촌과 세종마을이라는 명명은 공간의 역사와 정체성이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지역의 문제를 지역운동과 사회운동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활동가들’이 예술가들과 토박이들 사이의 경합에 개입하면서 서촌의 장소 형성은 더욱 복잡해졌다. 활동가들은 2012년 이상李箱 기념관 설립 반대운동과 2014년 사직단 복원 반대운동을 펼치면서 역사문화 유산을 복원한다는 명분으로 기존 건물을 철거하는 데 반대했다. 연구자와 면담한 활동가는 “한옥 등 기존 건물이 물리적으로 보존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재개발된 후에 주민들이 이 동네에서 계속 사느냐 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말에는 그동안의 도시 재개발이 주민의 사회적 연결망을 파괴해 왔다는 성찰이 담겨 있었다.

 

‘살짝 대한민국 같지 않은’
서촌의 분위기
 

 

  그리고 여기에 예술가들과 비슷한 맥락에서 창조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창조적 자영업자’가 진입했다. 이들은 2010년 이후 자하문로7길에서 옥인길로 이어지는 골목길에 소규모 카페와 상점을 열었다. 이곳에 바bar를 연 인터뷰이는 자신의 가게가 “트렌디하고 쌔끈한 게 아니라 평온한데 살짝 대한민국 같지 않은 분위기”로 느껴지길 원했다. ‘대한민국 같지 않은 분위기’는 이들이 서촌에서 기대하고 또 만들고자 하는 공간감을 표현한다. 하지만 이들은 토박이들의 ‘텃세’에 시달렸고, 상승하는 임대료 때문에 곧 다가올 재계약을 걱정하고 있었다. 한 인터뷰이는 이렇게 말한다.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토박이들, 건물주의 아들·딸이거나 건물주겠죠. 동네가 떠서 지가가 3배 이상 상승하면 그 이득을 보는 사람은 그들이죠. 저희는 또 쫓겨날 거예요.”

 

  예술가, 토박이, 활동가, 창의적 자영업자 등 서촌 일대의 행위주체는 저마다 서촌에 대한 그림을 그리면서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공존은 일시적이다.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지가와 임대료 때문에 기존 세입자는 나가는데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올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경제는 문화적 실천을 추동하면서도 제약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서촌’이란 실제의 물리적 장소일 뿐만 아니라 도시의 진정한 동네(authentic village)라는 이상을 지칭한다. 앞서 보았듯 ‘서촌의 젠트리피케이션’은 행위자들마다 상이하게 인식, 경험, 감각되고 있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저런 이상이 침식되어 간다는 공통의 불안이 실존한다는 뜻이다.” (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