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카이브 기고문(16.05.08)
우리는 우리의 늙은 몸을 멸시한다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된 '노쇠한 사이보그'로 일본 사회를 들여다보다
늙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늙음은 피할 수 없다. 영양섭취와 위생기술의 증진으로 평균수명은 전근대에 비해 비약적으로 상승했지만, 이젠 수명의 증가에 만족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건강이 최고의 미덕이 된 현대에서, 우리 몸의 노화를 최대한 늦추고 활동적이며 생산적인 육체를 만들려는 노력은 여러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늙은이는 더 이상 지혜를 가진 어른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그들은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덩어리’가 되어 간다. 은희경의 단편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의 제목을 따서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의 늙은 몸을 멸시한다.
이때 갈수록 향상되는 현대 의학과 의료기술은 욕망과 자연 사이의 괴리를 메울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의료기술은 보청기나 휠체어 같은 초보적인 형태의 보철물을 넘어, 이제는 성형수술이라는 형태로 늙은 몸을 젊어 보이게 하는 데 활용된다. 보톡스, 주름살 제거 수술은 성형외과 병원 광고의 전면에서 홍보되고 있다. 그런데 늙은 몸을 멸시하고 젊은 몸을 양산하는 데 골몰하는 의료기술은 인공과 자연 사이의 경계를 의문시할뿐더러, 기술의 사회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성격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노쇠한 사이보그: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로 본 노화와 과학기술」(박형욱, 과학기술학연구 13권 1호, 2013년 6월)은 갈수록 정체상태를 향해 치닫는 일본 사회에 대한 재현을 분석한 논문이다. 연구자는 논문을 통해 노화와 과학기술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고, ‘사이보그’ 논의의 복잡성을 밝히고자 한다.
우리는 이미
사이보그다
사이보그cyborg는 ‘사이버네틱 유기체cybernetic organism’를 뜻한다. 사이보그는 인간과 동물, 기계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과 통제의 일반 이론인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이보그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쓰인 건 만프레드 클라인즈와 네이던 클라인이 공저한 1960년 논문 이후의 일이다. 그들은 논문에서 인간이 우주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신체 일부를 기계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사이버네틱스와 생명체라는 말을 혼합해 사이보그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하지만 사이보그는 단지 이론에 머물거나 소설이나 영화의 재현 속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여성주의 과학사가 다나 해러웨이는 1985년 발표한 「사이보그 선언」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대립이라는 이원론은 20세기 후반의 기술논리에서는 더 이상 성립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해러웨이는 여성이 일종의 혼종이자 사이보그라고 주장했다. 연구자는 해러웨이의 논의를 이어받아 “예컨대 아시아 저개발국에 위치한 공장에서 북미와 유럽의 마트에서 싸게 팔릴 물건들을 조립 라인의 속도에 맞추어 기계처럼 만드는 젊은 여성들은 기계에 의해 삶, 즉 생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사이보그라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간이 기계 그리고 기술과 새로운 관계를 맺은 산업사회 이후로, 자연과 인간 사이의 경계는 갈수록 모호해져 간다. 그리고 기술적 성과는 자본주의와 접합하면서 여러 가지 긴장과 갈등 또한 빚고 있다. 연구자는 켈리 조이스와 로라 매모의 논문 「사이보그의 노화」를 참조하면서 이들이 “과학기술에 의해 진행되는 노년기의 사이보그화가 연령주의를 강화하고 있으며 생의학적 개입biomedical intervention을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예를 들어 성기능 회복제로 알려진 비아그라는 중·노년 남성들에게 왕성한 성생활을 정상적인 규범으로 인식하게 한다. 반면 노화에 따른 점진적인 성기능 감퇴는 “비극적이며 병리적인 현상”이 되었다. 한편 의료기술은 노화조차 일종의 선택 가능한 옵션으로 만든다. 그러나 그런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 이들은 충분한 자산을 갖추고 기술에 대한 접근권을 보유한 백인 남성이 다수라는 점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조이스와 매모가 강조하는 바다. 여기서 기술이 누구에게나 열린 것이 아니라 특정한 젠더와 인종, 계층에 편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 Solid State Society>(2006) ⓒ Production I.G
〈공각기동대〉에서 재현되는
고독사와 무연사회
이렇게 젊음을 강조하고 늙음을 멸시하는 풍조는 사회적이면서 정치적인 긴장과 갈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기서 연구자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의 에피소드 <Solid State Society>에 등장하는 노인들을 통해 ‘노쇠한 사이보그’에 대한 해석을 전개한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시로 마사무네의 만화를 각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는 정보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미래를 배경으로 기계와 인간의 만남을 통해 인간성 그 자체를 의문에 부치며 고뇌하는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세기말적 분위기와 맞물리며 수많은 논평을 낳았고, <매트릭스> 같은 영화에도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는 극장판과 동일한 인물을 공유하지만, TV 시리즈로 제작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전개를 보여주었다.
시리즈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Solid State Society>에서는 괴뢰회傀儡廻라는 정체불명의 해커가 등장한다. 인간의 신체 중 상당 부분이 기계화되고 두뇌 역시 네트워크와 연결된 전뇌화全腦化 시대에, 은퇴한 뒤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의 몸 역시 기계화되었지만 이들은 간호넷이라는 건강관리 시스템에 의존해 연명한다. 이들은 NHK 특집 방송 <무연사회>에서 재현되는, 혼자 살다 아무도 모르게 죽어버리고 마는 ‘고독사’를 앞두고 있다. 애니메이션에서 악역을 맡은 우익 관료는 이들 노인이 나라를 위해 가족도 아이도 만들지 않으면서 혜택은 혜택대로 받으려 한다며 비난한다. 독거노인들이 저출산과 고령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것이다. 갈수록 난민이 유입되면서 ‘일본인의 순혈’이 오염될 것을 우려하던 우익 관료는 괴뢰회를 이용해 가정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을 몰래 빼돌려 ‘건강하고 순수한 일본인’으로 성장시키고자 한다. 이런 전개는 현실을 과장하기는 하지만, 노화를 멸시하는 담론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괴뢰회는 우익 관료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괴뢰회는 “노화로 몸이 쇠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돈은 어느 정도 있으며, 노년기에도 계속 무언가의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귀부노인貴腐老人의 의식이 우연히 모여 형성된 일종의 집단지성이었기 때문이다. 귀부노인들은 학대받는 아이들을 괴뢰회가 만든 시스템인 Solid State Society를 통해 제 호적에 등록시킨 뒤 자신의 재산을 물려주고자 한다. 죽어가는 한 귀부노인은 수사관에게 재산을 “나라에 빼앗길 거라면 누군가에게 물려주는 것이 훨씬 나아”라면서 “이건 Solid State에 사는 자의 뜻이며 작은 의무이고, 정당한 경제 행위”라고 강변하기까지 한다. 연구자는 분명 불법적인 행위인데도 이를 ‘정당한 경제 행위’라고 간주한다는 점에서 이들 귀부노인이 지극히 신자유주의적인 주체라고 해석한다.
노쇠한 사이보그와
기술에 기입된 자본의 논리
전통적인 의미의 가정이 붕괴한 ‘포스트모던한 삶의 궤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이 에피소드는 정체사회Solid State Society가 되어 가는 오늘날의 일본을 반영하고 있다. 연구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애니메이션이 노인들을 재현할 때 늙어 가는 육체를 ‘점점 굳어 가는 것’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연령주의적 혐의가 있지만, 이들 귀부노인에게 일본 민족의 순혈주의는 거의 보이지 않으며 “자신의 DNA를 남기지 못한 대신에 기록상의 후손을 남겨 재산을 넘기는 것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들의 욕망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면서 자본주의적인 것으로서 오늘날의 지배적인 경제 논리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들 ‘노쇠한 사이보그’는 노화와 기술 사이의 연계에는 항상 자본의 논리가 기입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를 낳아서 기를 여유와 직업적 안정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국경 없는 자본의 시대, 이 시대에 테크놀로지가 늙어가는 몸과 만나서 만들어진 노쇠한 사이보그는 시대의 문제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69쪽)
연구자의 매체비평은 갈수록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지는 일본 사회에 대한 재현을 통해, 자연과 인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오늘날의 세계를 돌아보고 기술의 정치적인 의미를 밝히려 한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의 재현을 과대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 문제의식이 정확하게 드러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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