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카이브 기고문(16.04.25)
<'여성 전용 대출'로 성매매 여성들은 자유로워졌는가>
'여성 전용 대출'로 성매매 여성들은 자유로워졌는가
금융을 매개로 한 성매매 여성들의 '자유'의 확대를 비판하다
성매매는 대부분 그것이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기에 누구나 이를 드러내 놓고 비판한다. 하지만 그런 비판은 종종 도덕적인 표현에 함몰되곤 한다. 그건 성매매 여성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고, 성매매 여성을 피해자로 규정하고 그녀들을 ‘보호’하는 걸 앞세우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도덕적이고 규범적인 비판은 성매매 여성을 대상화하는 문제가 있을뿐더러, 그녀들이 놓인 물적 회로를 간파하지 못하기에 무력하다는 문제를 노출한다.
「일상적 재생산의 금융화와 성매매 여성들의 ‘자유’의 확대」(김주희, 여성학논집 32집 2호, 2015년)는 성매매 여성의 몸이 상품으로 착취되는 과정을 자본주의의 금융화와 연결하면서 성매매 여성의 일상이 금융적으로 재조직되는 한편, 그녀들이 금융화를 계기로 자신을 합리적이고 주체적이며 자유로운 개인으로 형성하게 되었음을 밝힌 논문이다. 연구자는 성매매 현장에 대한 참여관찰과 성매매 여성들과의 심층면접을 통해 기존 반反성매매 운동이 여성의 물질적·도덕적 비참에 주목하면서도 자본주의 비판과 연결되지 못한 것을 성찰하면서, ‘한국 사회 성매매 산업의 정치경제학’을 분석하고자 한다.
금융적 주체로서의
성매매 여성
연구자는 최근 ‘여성 전용 대출’이 증가하고 성매매 관련 상담에서 제3금융권의 부채 문제나 파산에 관한 상담이 급증한 현실에 주목한다. ‘빚을 통해 여성의 몸을 수탈하는 악덕 포주’라는 형상이 아니라, 언제든지 쉽고 간편하게 ‘전화 한 번이면’ 대출을 해 주는 금융업자가 성매매 여성의 일상에 끼어든 새로운 형상으로 등장한다. 신용카드 발급이 자유로워지고 은행의 가계대출 문턱이 낮아지는 이른바 ‘금융의 민주화’, ‘신용의 민주화’가 일반화되면서 성매매 여성 역시 이런 금융화된 일상에 노출되고 적극적으로 편입되고 있다. 성매매 여성 스스로도 이와 같은 변화를 수월하게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자신의 생애 기획을 능동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금융적 주체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금융의 민주화’는 국민국가가 탈규제, 민영화, 시장화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펼치고 IMF와 세계은행이 추진하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으로 체제의 불안정성이 강화되는 경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회의 시장화와 불안정성으로 인해 저임금 노동력이 급증하고 이들 ‘임금 없는 삶’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저소득층·빈민이 새로이 금융 회로에 투입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 현상이 폭력적으로 내파하면서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했고, 그 주된 피해자가 여성과 흑인, 히스패닉이라는 건 다분히 상징적이다.
한국 역시 부채 주도 경기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신용카드 발급을 자유화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보다 먼저 금융 대란을 겪었다. 국가와 자본의 공모로 중산층뿐만 아니라 다수의 저소득층이 카드를 발급함으로써 부실 위험이 커졌고, 급기야 2003년 카드 대란이 발생하면서 ‘새로운 빈민 주체’인 신용불량자가 급증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난점은 오늘날의 ‘부채 경제’가 빈곤을 통해 수익을 벌어들이는 ‘빈곤 산업’으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주체성을 재조직함으로써 정당화된다는 데 있다. 여기에 성매매 여성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심층면접에 연구참여자로 함께한 성매매 여성들 중 20대는 학자금대출과 각종 생계형 대출로 인해 이미 빚을 지고 있었다. 학자금대출은 갈수록 비싸지는 대학 등록금으로 인해 고등교육에 진입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저리의 융자를 제공해 교육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을 명분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학자금대출 상환이 개인의 문제로 치환되면서 청년들은 이를 자기 책임의 문제로 인식하고 점점 더 위험한 노동을 하도록 강요당한다. 여기에 성매매 현장이 이미 빚을 갖고 있는 여성을 선호함에 따라 이와 같은 경향은 강화된다. 이때 젊은 여성들은 학자금대출을 갚기 위해 성매매 현장에 뛰어들면 성 윤리가 약화되었다며 비난받기까지 한다.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 기록화 작업. 서수연, <불온한 확신, 끝나지 않은 천일야화> 중에서 ⓒ 이룸
그러나 연구자는 자기 주도적으로 소득과 부채를 관리하면서 합리적인 개인으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오늘날의 도덕적 정언명령이며, 그에 따라 성매매 여성들은 업소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습득해 어디서 어떻게 돈을 벌어야 소득을 늘리고 부채를 갚을 수 있는지 계산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때 학자금대출 채권이 증권화되고 부실 채권이 제3금융기관에 의해 추심되는 등 학자금대출이 유동화되면서 학생들의 빚은 누군가의 소득으로 탈바꿈한다.
그러므로 부채로 충당되는 교육은 최소한의 자산을 가진 이들로부터 가장 부유한 사람들에게 순자산을 이전하는 데 가장 효과적으로 기여하고 있다(Ross, 2014:1183). 학자금 대출은 대출을 받은 학생들의 삶 전체를 금융 자본의 이윤을 실현시킬 부채의 회로에 포박시키게 된다. 동시에 대학생들을 성매매 업소를 포함하는 다양한 종류의 ‘위험한 노동 시장’에 인입하는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41~42쪽)
‘자유롭고’
‘파산 불가능한’ 주체
그런데 성매매 여성은 단순히 시스템의 피해자로 표상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주체적인 개인으로 자신을 상상하고 시스템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금융적 주체로 등장한다. 포주를 대신해 금융업자가 대출을 제공하지만, 성매매 여성은 전화와 인터넷 등의 매개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들과 관계를 맺는다. 이들은 주택담보대출과 자동차 할부 대출 등으로 막대한 부채를 지고 있었지만,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이자비용에서 자신이 매달 벌어야 할 소득을 소급해 계산하면서 자신의 신용을 관리한다. 이 과정에서 성매매 여성은 자신의 주체성을 재확인하고 자신감을 얻기도 한다. 이때 그녀는 “성 노동을 통해 비로소 이 사회의 경제적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적인 파탄의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연구에 참여한 성매매 여성 중에는 신용카드 연체로 인해 ‘카드 돌려막기’를 하면서 신용불량자가 된 사례가 있었다. 무엇보다 성매매 여성들은 당장 부채는 갚을 수 있어도 노동을 멈추거나 노동량을 줄이는 순간 부채가 소득을 초과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에 즉각 노출된다. 그럼으로써 그녀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성매매 현장에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파산 불가능한’ 주체가 된다. 성매매 여성의 몸은 대출의 조건이자 소득의 원천으로서 금융 시장에 포섭되고, 채권 유동화라는 형식으로 자본의 전 지구적 회로와 연결된다. 이때 성매매 여성은 대출을 통해 일상을 유지하면서 ‘악덕 포주’와의 대면적 관계에서 비롯된 빚이 아니라 자신이 금융사를 통해 ‘자유롭게’ 질 수 있는 부채를 선호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일상적 재생산의 금융화’는 성매매 여성의 몸과 노동이 금융화된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원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채무자인 성매매 여성들은 자신의 금융 스코어를 관리해야 한다는 명령에 의해 ‘유순한 아가씨’로서의 태도를 체현하고 자신의 몸값이 가장 높은 가격으로 빠르게 지급될 수 있는 성 시장을 찾아 떠돌고 있다. ‘신용의 민주화’를 통해 확대된 신용은 개인들에게 자신의 신용을 관리하고 조절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여성들은 부채와 신용이 제공하는 자유의 공간 속에서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금융적 실천을 통해 삶을 지속한다. (53쪽)
이들이 누리는 ‘자유’는 기만적이지만, 그 ‘자유’는 금융화라는 물적 회로를 통해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적이다. 연구자는 성매매 여성이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돌파하기 위해서는 금융화에 대한 분석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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