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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Archive

치열한 종편 경쟁, 그 한복판에는 탈북자가 있다

by parallax view 2016. 6. 15.

리뷰 아카이브 기고문(2016.04.18)

<치열한 종편 경쟁, 그 한복판에는 탈북자가 있다>

 

 

치열한 종편 경쟁, 그 한복판에는 탈북자가 있다

남북한 정보 네트워크의 주요 매개자로서의 탈북자

 

  북한 고위급 장교의 귀순에, 중국에 있는 북한 식당의 이른바 ‘외화벌이 일꾼들’이 대거 남한으로 이탈하면서 한동안 시끄러웠다. 이런 사건들을 통해 ‘북한 김정은 정권의 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도 탈북 소식이 들릴 때마다 ‘김정일 정권의 위기’ 역시 심심찮게 거론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정부가 탈북이라는 이슈를 안보 의식 강화와 그 밖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얼마나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가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대중매체를 통해 탈북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재는 과거의 통제 일변도에 비해 북한 정보의 유통 경로가 보다 ‘민주화’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탈북자 혹은 ‘새터민’의 방송 출연도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종합편성채널은 탈북자를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초대하거나 예능 프로그램의 주 출연자로 채용해 북한 관련 정보를 시청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김명준·임종섭 서강대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의 「탈북자의 미디어 등장과 ‘북한정보’ 흐름의 변화: ‘통제’에서 ‘경쟁’으로」(『사회과학연구』 23권 2호, 2015년)는 종편채널에서 탈북자의 입을 통해 북한 정보를 전하고 그 ‘실태’를 재현하는 방식을 연구함으로써 북한 정보의 매개자로서 탈북자의 위치를 탐색하고 있다.

 

북한 정보 유통 구조의 변화

 

  오랫동안 민간에서는 정부가 북한 정보 통제를 주도했기 때문에 관련 정보를 접하는 데 제한이 많았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정보의 전달 경로가 다양해지고 남북한 간 정보 교류의 기술 장벽이 낮아짐에 따라 북한 정보가 보다 쉽게 전달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는 통일을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은 북한 정보의 확산 양태가 통제에서 경쟁으로 변모하는 중이라고 진단하면서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제시한다.

 

  첫 번째로 네트워크 사회가 도래하면서 남한 주민들이 북한 방송을 직간접적으로 볼 수 있고 북한에서도 남한의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등 남북한 주민 간의 정보 교류가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연구자들은 스마트폰과 인터넷, 사회연결망서비스(SNS)의 보급과 확대로 인해, 정부에서 정보를 직접 통제하기보다 교류로 나아가는 것이 통일을 이루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두 번째로 연구자들은 언론 통폐합 등을 통해 언론을 통제했던 제5공화국의 권위주의 체제가 1987년 민주화 운동으로 막을 내렸고, 국내 방송 역시 소수 독과점 체제에서 경쟁 체제로 전환하면서 언론·방송의 경쟁 구도가 강화되고 있음을 제시한다.

 

  세 번째로 권력이 네트워크를 통해 작동하는 네트워크 사회의 특성상, 남한 네트워크와 북한 네트워크의 교차점에 있는 탈북자들이 정보를 매개하는 주요 행위자로 출현하면서 종편채널이 이들을 정보원으로 채택하는 빈도가 늘고 있다는 점을 든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 중 한 장면 ⓒ NK chosun

 

근거이론방법을 통해 분석한

종편 프로그램의 탈북자 출연

 

  연구자들은 북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있어 탈북자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는 실태를 연구하기 위해 근거이론방법GTM, Grounded Theory Method을 채택해 채널A, TV조선, JTBC, MBN 등 4개 종편채널의 프로그램을 분석했다. 근거이론방법은 지속적인 비교방법CCM, Constant Comparative Method으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해 의미 있는 이론적 개념을 뽑아내는 방법으로서, 텍스트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의미를 일컫는 코드code와 이들 코드의 관계를 개념화한 유목category으로 텍스트를 분석하는 연구방법론이다. 연구자들은 주요 유목을 정보(일상/권력층의 정보, 안보 정보), 판단(체제 비판, 개선 등 기타), 비교(남북 문화, 삶의 방식의 차이점, 유사점 등), 의지(이주 과정에서의 노력, 난관 및 극복 등), 경험(북송, 탈북 과정 등의 고난 체험 등), 정서(동정, 염원 등의 감정 표현), 재능(예능 등 표출), 기타(환영 등)의 여덟 가지로 분류했다.

 

  여기서 이들이 근거이론방법을 통해 분석한 TV 프로그램은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예능), <이언경의 직언직설>(시사)과 TV조선의 <대찬인생>(예능), <장성민의 시사탱크>(시사), JTBC의 <유자식 상팔자>(예능), MBN의 <황금알>(예능)이다. 연구자들은 북한의 장성택이 처형된 2013년 12월 12일부터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 이전까지 약 4개월을 연구 기간으로 설정했는데, 종편에서 장성택 처형을 둘러싼 내용을 프로그램에서 주로 다루다가 세월호 참사 때는 그 사건으로 관심이 이동했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제 각 프로그램의 분석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는 탈북 여성을 주로 초빙했고 권력층 정보의 비중이 컸다. 하지만 대부분의 출연자가 북한 내 정치권 동향을 알 수 있는 배경과 네트워크를 확보했다고 보기 어려워 정보의 신뢰성에서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이언경의 직언직설>에서는 북한의 ‘도발’과 ‘국내 정치권’에 대한 견해 등 판단이나 비판이 가장 많았다.

 

  한편 TV조선의 <대찬인생>에서는 특이한 배경을 가진 국내 인사와 북한 출신 인사가 출연했는데, 김정일의 전직 경호 담당자나 북한에서 영웅 칭호를 받은 예술인 등이 권력층 정보를 전달했다. 여기에 체제 비판이 따라 왔다. <장성민의 시사탱크>는 시사 프로그램의 특성상 안보정보와 체제, 도발에 대한 비판을 많이 제공했으며 북한의 일상도 많이 다루었다. 

 

  그리고 JTBC의 <유자식 상팔자>는 주로 연예인 가족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지만, 연구자들이 분석한 방송분에서는 탈북 가족을 초빙해 북한 사회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전했다. 또 MBN의 <황금알>은 전형적인 집단 토크쇼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출연하는데 특정 이슈가 있을 때 탈북자 등 관련 전문가를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다. 연구자들이 분석한 방송분에서는 남한 쪽에서 잘 모르는 북한 생활상 등 일상생활에 대한 정보가 가장 많이 소개되었다. 이때 북한 체제 비판도 함께 등장했다.

 

탈북자의 종편 출연,

상업화된 방식의 유연한 통제는 아닌가

 

  연구자들은 분석을 마치면서 이런 프로그램에서 탈북자가 직접 자신의 경험을 재현하는 과정에 몇 가지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첫째, 방송에 출연하는 탈북자 출연진의 폭이 다양하지 못해 제한된 사람들이 고정 출연하거나 이들의 겹치기 출연이 빈번하다. 둘째, 탈북자 본인도 간접적으로 얻은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정보의 신뢰성이 떨어진다. 셋째, 흥미와 웃음을 위해 자극적인 정보를 우선적으로 전달하다 보니 프로그램의 상업성이 더 강조된다. 넷째, 주제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초대될 수 있기 때문에 적절성과 공정성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아울러 국내 북한정보 시장이 확대되는 현실에서 탈북자들의 역할은 일정 부분 존재할 수밖에 없다. 즉, 이들은 양 체제의 경험자이자 남-북 네트워크 간 교차점에 있는 연결고리이기 때문에 과거 동독과 서독 수준의 정보교류가 한반도에 부재한 상황에서 탈북자들의 역할은 일정 부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83~84쪽)

 

  여기서 연구자들은 탈북자들이 전달하는 정보의 폭이 좁은 문제가 있지만, 탈북자들의 시각에서 시청자들에게 직접 이야기한다는 건 큰 변화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변화한 언론·방송 환경에서 탈북자의 자기 재현이 갖는 선정성에 대해 깊게 파고들지는 못해 아쉽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재현이 상업화된 방식의 유연한 통제는 아닌지 되짚어 볼 필요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어 추후 보다 비판적인 관점의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