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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Archive

농촌의 새로운 주체, 결혼 이주 여성

by parallax view 2016. 6. 14.

리뷰 아카이브 기고문(2016.04.14)

<농촌의 새로운 주체, 결혼 이주 여성>

 

 

  한국은 남성 이주 노동자에 못지않게 결혼 이주 여성이 증가하고 그들의 자녀가 늘면서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에 진입했다. 하지만 다문화를 ‘글로벌 표준’으로 보는 관점과 별개로, 실제 이주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관심을 가진 연구가 적은 게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는 우리가 이주를 산업적·인구학적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실제로 이주민들이 어떤 생각과 욕망을 가지고 한국을 찾으며 예상과 실제 사이의 괴리에 봉착했을 때 어떤 해결책을 모색하는지에 관심을 두지 못했음을 반영한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와 류유선 연세대 문화학협동과정 박사과정이 공동 연구한  『재생산적 전환 과정 속의 농촌지역 결혼이주자의 생산/재생산 활동』(여성학논집 제30집 2호, 2013년)은 결혼 이주 여성을 농촌 인구난의 해결책으로만 보던 관점을 비판하면서 이들이 한국 사회에 진입한 이후 겪게 된 경험들을 토대로 이들의 주체성을 탐색한 논문이다. 연구자들은 충남 부여 지역에서 참여관찰을 수행하며 그 지역의 결혼 이주 여성과 그들의 남편을 심층면접했다. 그들에 따르면 결혼 이주 여성은 가정의 살림을 꾸리는 전업주부이면서 가내외의 노동을 전담하는 노동자이자 한국어 학습에 몰두하는 학습자라는, 서로 연결되면서도 종종 갈등하는 역할을 떠맡는다.

 

이주의 시대의 대표 현상
결혼 이주

 

  연구자들은 현재를 ‘이주의 시대’로 규정하고, 현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기존 남성 위주의 생산 이주가 여성이 주로 담당해 왔던 재생산 영역의 이주로 확장되고 있는 점”을 든다. 자본주의의 체제 변화, 특히 가족 내 재생산 활동이나 국가가 맡아 왔던 사회적 재생산이 불가능해지고 이들 영역이 시장화되면서 재생산 영역의 이주가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결혼 이주는 전 세계적인 자본주의의 ‘재생산적 전환’ 과정에서 나타난 대표적인 이주 형태로서 “단순히 결혼이라는 통로를 통해 이주한 여성이 가족 내에서 정착하는 문제가 아니라, ‘성별화된 노동의 재편성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그들에 따르면 결혼 이주는 자본주의의 물적 회로라는 정치경제적 관점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 이후 한국 사회의 재생산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중산층 가족이 경험하는 돌봄노동이 공동화되는 한편, 저소득층 남성이 가족을 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농촌에서 더욱 심화되었다. 농촌의 고령화와 여성 인구 감소에 따라 결혼 이주는 “새롭게 부상하는 재생산 영역의 상품화와 가족과 결혼에 대한 전통적인 문화적 가치들이 결합된 영역”으로 나타났다. ‘재생산의 노동과정화’라고 요약할 수 있는 이런 현상은 결혼 이주가 일종의 경제적이면서 사회적인 거래의 성격을 가졌다는 걸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충남 부여 지역의 결혼 이주 여성들을 관찰하고 면접한 결과, 이들은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첫 번째 유형은 핵가족 중산층의 생활 방식을 지향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필리핀 등 현지에서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가정환경 때문에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한 경험이 있어 자녀들의 교육에 높은 관심을 보였고, 농촌에서 수행되는 일과와 시부모의 간섭을 받아들이는 데 저항감을 갖고 있었다. 두 번째 유형은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고 하면서 농촌이 제공하는 물적 토대와 한계를 받아들이는 쪽이다. 이들은 시부모와 육아를 분담하면서 농촌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품일’을 하며 소득을 얻는다. 세 번째 유형은 적극적으로 가족 경제 활동에 참여하면서 농업 생산 활동에 대한 참여를 주도하고자 한다. 이들에게 농촌은 도시가 아니라는 이유로 비생산적이거나 버려진 땅이 아니라, 일을 통해 돈을 벌고 고향에 송금하면서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다.

 

전업주부-노동자-학습자라는
세 가지 역할

 

  이런 세 가지 경향은 충남 부여 지역의 농업 생산이 갖는 특징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부여에서는 수박, 딸기, 토마토, 버섯, 화훼 등 환금성 작물을 재배하면서 수익을 거두는 농민들이 많이 있었고, 이들은 이런 특수작물의 수확 시기에 다수의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남성 이주 노동자는 물론 결혼 이주 여성의 참여가 필수 불가결했다. 모든 결혼 이주 여성이 노동에 투입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심층면접에 참여한 이주 여성에게 돈이 도는 일을 한다는 건 주요한 경험이 되었다. 이때 이주 여성들은 “농사일, 한국어 교육을 포함해 다양한 통합 프로그램 참여, 전업주부로서의 삶이라는 삼중의 요구 속에서 주기적으로 삶의 사이클을 반복하며 가족의 경제적 요구와 사회 통합이라는 집단적 요구를 만족”시켜야 했다.

 

ⓒ Enactus Korea

 

  이런 어려운 과업을 떠안아야 하는 결혼 이주 여성들에게 한국어 교육은 획일적인 언어를 강요하는 경향이 있음에도 그들이 ‘공적 영역’에 참여하는 통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양가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이주 여성들은 ‘한국어 경진대회’에 동원되는 한편, 이런 대회가 비행기표를 한국어 경쟁의 물질적 보상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자신이 친정으로 가거나 친정 식구들을 한국으로 초대하고자 한국어 공부에 매진한다. 한국어 교육은 지역 사회에서 결혼 이주 여성이 한국에 ‘정착’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로 인식되기 때문에 중요시되지만, 가정과 일터만을 왕래할 수 있는 이주 여성들에게 배움의 장이면서 사회적인 교류의 장이 되기 때문에 일정 부분 자유를 주는 측면도 존재한다.

 

행복한 가족을 이루는 토대,
송금

 

  한편 농촌 사회의 주요한 생활 방식으로서 세대 간 결합을 통한 가족 경영이 이주 여성들의 생활 방식이 되면서 “시부모와의 ‘기’싸움이나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자신과 남편, 아이들로 구성된 핵가족화를 지향하는 전략”으로 자리매김한 사례도 있다. 베트남에서 온 남프엉 씨는 시부모의 하우스에서 수박과 메론 농사를 도왔고 그에 대해 돈으로 보상을 받았다. 그녀는 한국에 온 지 2년 만에 저축한 돈과 남편이 지원해 준 돈을 합쳐 친정아버지 장례비 때문에 진 빚을 모두 갚았고, 베트남으로 갈 때마다 시댁에서 200만 원의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남프엉 씨는 가족 경제의 총책임자인 시어머니가 가정을 관리하지만 아들의 월급에는 간섭하지 않으면서 그녀의 가족은 3세대 확대가족 안의 핵가족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이주 여성들은 가족 경영에 동참하면서 물적·정서적 안정감을 찾는데, 이들은 남편과의 동반자적인 관계를 이상화하면서 핵가족을 유지하는 데 공을 들인다고 볼 수 있다. 결혼 이주 여성들에게 남편의 소득 외에 자신의 소득을 더해 가계의 살림살이를 더 낫게 하면서, 친정에 송금하면서 “본국 가족과 한국 가족의 재생산적 요구와 경제적 요구를 동시에 현실화시킬 수 있다는 느낌”은 무척 중요하다.

 

  “이때 송금은 경제적 도약의 암묵적 약속을 지킨 남편과 그 대가로 심리적 귀속의 느낌을 준 부인 사이에 오가는 외연적 지표이며, 서로에게 안정감과 귀속감을 갖게 하는 중요한 물적 기제이다. 농촌처럼 현금 확보가 어려운 지역에서 송금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84쪽)

 

  물론 모든 결혼 이주 여성이 정착에 성공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논문은 어떻게 해야 이들이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지를 탐색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그보다 여성 이주자의 총체적 삶이 생산과 재생산 활동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살피면서 이주 여성이 자신의 생애 기획을 실현하려는 양상을 그들의 언어를 통해 파악해 보려는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