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메멘토, 2016)
제이컵 솔의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는 회계의 역사를 일별하면서 회계를 통한 재무적 책임성이 국가와 문명의 번영과 몰락에 매우 큰 역할을 했음을 강조한다. 이때 재무적 책임성으로 번역된 accountability는 회계accounting를 통한 책임성responsibility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회계(학)와 자본주의를 동일시하면서 '건강하고 올바른 자본주의'를 제시하는 등 책에는 전형적인 자유주의적 주장이 들어 있다. 국내 학자가 쓴 부록에는 개성 상인의 복식부기 발견을 언급하면서 한국의 '자생적 자본주의'까지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르네상스 시기에 본격적으로 창안된 복식부기 회계에 신에 대한 믿음이 녹아 들어 있고(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언급했듯이 죄schuld와 빚schulden은 같은 어원을 갖는다), 회계가 절대왕정 시기를 거치며 통치술로 활용되었다는 것, 근대 회계감사가 철도의 발명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 숫자와 제국주의 통치 사이에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행위자연결망이론에서 이야기하는 action at distance와 governing at distance) 등 베버와 푸코에 익숙한 독자라면 회계와 관련된 꽤 풍부한 사례를 접할 수 있다.
저자는 회계와 숫자를 비非정치적인 것 내지는 비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다룬다. 하지만 회계는 경제가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다는 믿음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다. 이를 '객관화된 믿음' 이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믿음은 이중장부와 부실회계, 회계사의 자의적인 판단과 기업과의 유착 등으로 의심받는다. 하지만 그런 의심은 이내 '더 올바른 회계 관행과 감사'를 요구하는 것으로 봉합된다. 그렇다면 회계를 부정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우리는 회계라는 장치 없이 우리를 둘러싼 사물을 다룰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홍기빈 샘 같은 이들이 (칼 폴라니를 비롯한 20세기 초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제안했던) 사회주의적 회계 내지 사회적 회계를 이야기하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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