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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umfabrik

암살

by parallax view 2016. 1. 12.

  뒤늦게 영화 <암살>을 봤다. 장 피에르 멜빌의 <그림자 군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일제 강점기 당시의 레지스탕스란 범죄 조직과 유사한 구조일 수밖에 없었고 지배 질서의 관점에서는 범죄 조직이나 마찬가지였을 테니 범죄 영화라는 스타일을 통해 당대를 살피는 작업도 있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민족주의 정서에 호소하는 부분을 덜어낸다면 아마 스타일밖엔 보이지 않았을 텐데, 그 때문에 감독은 이 영화에서 '민족'의 다중성, '조선인'의 다중성을 한몸에 보여주는 캐릭터인 염석진을 통해 무게중심을 잡으려 했던 게 아닐까 싶다. 


  반민특위 이후의 역사를 아는 우리는 일본의 항복을 담은 기록 영화를 보며 기뻐하는 독립투사들을 볼 때, 레지스탕스들을 괴롭혔던 배신과 내전이 또 다시 반복될 것임을 직감한다. 그들은, 사실 해방 전에도 내전 중이었고 해방 후에도 내전을 하고 있었다. 왜 배신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염석진의 절망적인 답변대로, 그는 "조선이 해방될 줄 몰랐다." 해방에 아무런 보증도 기약도 없다는 점. 그 절망적인 상황이 당대의 레지스탕스, 독립투사가 마주한 세계였다. 


  그 세계를 방황한 '인간' 염석진을 안옥윤이 오래도록 바라보는 신은, 내전이 벌어지기 훨씬 이전에 내전을 경험한 세대의 공허를 오락 영화의 틀 안에서 담아낸 찰나의 섬광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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