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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umfabrik

환상의 빛

by parallax view 2016. 7. 12.

  지난 일요일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초기작 <환상의 빛>을 봤다. 어느 한 장면 허투루 찍은 게 없었다. 회화적이고 정적인 구도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역시나 '90년대 영화'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서는 꾹꾹 눌러 담은 밥처럼 단단히 뭉쳐졌는데, 인물의 정서는 오로지 풍경을 통해서만 밖으로 드러난다. 인물에게 쉽게 곁을 주지 않고 멀리서 관조하는 카메라는 정서를 쉽게 폭로하려 하지 않는 미덕을 고수한다. 물론 친절한 서사를 기대하는 관객에게 그만한 악덕은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보다 문득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실사 영화' <케르베로스 지옥의 파수견>이 떠올랐다. 몇 가지 구도(타이완의 한 도시를 인물과 함께 포착한 신이라던지, 카메라가 골목을 헤매는 인물을 쫓는 신이라던지)가 인상적인 영화였다. 그 영화와 <환상의 빛>의 차이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오시이 마모루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차이는 역시, 자의식과 감상주의에 도취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단지 이야기가 터무니없다는 게 문제가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둘 다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오시이 마모루의 영화는 아예 적자 때문에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고 한다), 두 감독의 운명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고레에다 쪽이 좀 더 영화적인 문법에 충실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 하면 너무 싱거울까. 어쨌거나 90년대 영화라는 게 있다면 내가 어렸을 때 보고 들은 게 순 그런 것들이니, 별수 없이 그쪽의 정서에 정박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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