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보면서, 언젠가 들뢰즈로 홍상수 영화를 분석하려던 발표를 보았던 게 떠올랐다. 영화연구자라면 홍상수 영화를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 영화의 시간-이미지 따위의 들뢰즈의 개념으로 분석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법하지 않은가, 생각했다.
시간이 갈수록 홍상수 영화는 덜 불편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주인공인 영화감독은 언제나 그랬든 자주 찌질거리고 낯선 곳에서 만난 여자와 썸을 타며 끝내 만남에 실패한다. 그런데 이번 이야기에서는 이 실패가 오히려 성공이다.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로 분기한다. 1부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는 남자가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에게 아부하며 어떻게든 '해볼라고' 시도하는 과정이 결국 실패하는 영화다. 2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1부의 내용을 반복한다. 그러나 홍상수는 그동안 수행한 '차이와 반복'을 더욱 열심히 '반복'한다. 그러니까 2부는 크게 보았을 때 1부의 실패를 반복한다. 하지만 2부의 남자는 1부의 남자에 비해 훨씬 솔직하다. 둘 다 속물인데 2부의 남자는 솔직한 속물이다. 그리고 2부의 여자도 1부의 여자보다 좀더 분명하게 '화를 낸다'. 그녀가 화를 내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렇게 감정을 부딪히지 않고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게 인간관계임을 영화는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두 영화 모두에서 여자는 남자가 마음에 든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가 어떻게 해볼라고 하는 게 싫지만은 않다. 하지만 1부와 2부에서, 여자의 감정은 달라진다. 무엇이 그녀를 달라지게 했을까. 그리고 무엇이 그를 달라지게 했을까. 영화는 그 이유를 굳이 캐내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이휘재의 인생극장>이 아닌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로 확 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도 알 수 없는 우연 속에서 어쩌다 보니 조금씩 다른 형태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옆 테이블 술자리에 나오는 이야기를 너무 가까이서 듣는 기분은 여전하고, 영화도 그런 불편한 거리감을 카메라의 줌인과 줌아웃으로 조율한다. 그게 싫지가 않다. 2부의 결말은, 어쩌면 지금까지의 홍상수 영화 중 가장 귀여운 엔딩일 수 있겠다. 정재영도 훌륭하지만, 김민희가, 너무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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