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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umfabrik

엑스칼리버

by parallax view 2015. 10. 5.

  어젯밤에는 존 부어먼의 <엑스칼리버>를 보았다. 아서 왕 전설 자체가 수많은 전설의 헐거운 짜깁기인 만큼, 얼핏 맥락없어 보이는 서사도 이 영화 자체가 '전설'이라고 생각한다면 납득하게 된다. 여담으로, 조금 검색해 보니 아서 왕을 연기한 나이젤 테리는 틸다 스윈튼과 마찬가지로 데렉 저먼 영화에 꾸준히 출연한 배우이며 저먼의 절친이었던 것 같다. 헬렌 미렌(모르가나 분)과 리암 니슨(가웨인 분)의 젊은 시절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화의 시대 고증은 지금 기준으로는 철저하지 않을 수 있다(아서 왕 전설의 실제 배경으로 추정되는 시대는 서기 5~6세기이고, 토마스 말로리의 <아서 왕의 죽음>은 15세기 저작이다. 어차피 로망스 문학을 원전으로 한 이상 '철저한 고증'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무척 연극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스펙터클하면서도 몽환적인 연출과 소품을 보면 이 영화는 판타지 영화의 고전으로 불릴만하다. 아마 여러 사람이 인상깊게 보았을, 아서 왕과 기사들이 말을 타고 꽃길을 달려가는 신은 여전히 회자될만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음악은 너무나 유명한데 정작 출처는 알지 못할 때가 있는데, <엑스칼리버>가 그런 경우다(내게는 <블레이드 러너>가 그랬다. 데커드가 엘리베이터로 사라지며 페이드 아웃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반젤리스의 강렬한 사운드). <O Fortuna>가 웅장하게 울려퍼질 때 "아, 이 노래!" 하면서 새삼 놀라기도 했다. 영화의 오리지널 트랙이 아니라 원래 있는 곡을 삽입한 것이지만, 이 노래는 영화의 '신의 한 수'라고 해야할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자꾸만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이보다 몇 년 전에 나왔던 <몬티 파이선의 성배>가 생각나서다. 시대를 앞서간 병맛, 사랑합니다... 그리고 <엑스칼리버>의 멀린은 선량한 듯하면서도 교활하고 똑똑하면서도 어설픈 캐릭터로 나온다. 똘똘한 허당, 졸귀... (201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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