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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관촌수필

by parallax view 2015. 6. 26.

『관촌수필』(문학과지성사, 1977)


  이문구의 『관촌수필』(1977)을 늦게, 아주 늦게 읽었다. 이제는 보령시가 되어버린, 대천읍 복판에서 그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상상했던 것을 지금에서야 조금은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라는 말은 만용인 줄 안다. 그저, 과거를 회고하는 아픈 마음과 구성진 충청도 사투리에 배인 삶의 고단함을 조금은 상상할 수 있었다 말하고 싶다. 나는 그가 태어나 자란 곳에서 역시 태어나고 자랐다. 그만큼이나 나도 '실향민'이라 상상했다. 그에게 대천이 거듭 돌아갈 때마다 옛모습을 잃어가는 장소, 이미 와 있지만 복구할 수 없는 기억이라면 내게 대천은 환멸의 공간, 어렴풋하게 남은 추억조차 의미를 찾기 어려운 공허한 공간인 탓이다.

  『관촌수필』을 일컬어 '농촌소설'이라 잘라 말하는 일은 바보 같은 짓일 것이다. 평론가 권성우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이 소설은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자 반성이다. 비판, 반성, 성찰 같은 추상적인 표현은 닳고닳은 도덕적 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비판이야말로 근대성의 중핵이라고 할 때, 이문구가 토속적인 문체로 수행하는 것이 바로 그런 '비판'이다. 『관촌수필』에 담긴 중·단편은 '실향', 즉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고향은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고향이다. 넉넉한 인심이니 풍요로운 자연이니 들먹이며 고향을 미화하는 것이 무망한 줄을 작가는 너무나 잘 안다. 그가 1940년대를 회고하며 유교사회를 선망한다는 해석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이미 그가 태어나 자란 1940~50년대는 식민과 해방, 내전과 분단을 거치며 상전벽해하던 때라는 걸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기억하는 모든 것은, 그가 쓰지 않았으면 떠올릴 수 없었을 것들이다. 나는 지금 순서를 뒤집은 것처럼 보인다. 기억이 먼저이고 쓰는 게 나중이 아니냐 할지 모른다. 그러나 『관촌수필』은 쓰여지지 않았으면 기억할 수 없었을 것을 담은, 쓰여져야만 기억이 되는, 글쓰기의 역설을 정확하게 함축한 소설이다. 그가 종내 구사한 '정확한' 토속어는, 그리고 그에 못잖은 '정확한' 표준어와의 엇갈림은 더이상 재현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권성우는 1991년에 『관촌수필』을 읽으며 '1991년의 『관촌수필』'이 나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의 문학기행이 좁고 짧은 탓일 것일 테지만, '1991년의 『관촌수필』'이 나온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2015년에는 말해 무엇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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