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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들 : 히틀러 대 스탈린, 권력 작동의 비밀

by parallax view 2015. 2. 21.

『독재자들 : 히틀러 대 스탈린, 권력 작동의 비밀』(교양인, 2008)


  "동지들, 히틀러와 스탈린은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을 요약하면 저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리처드 오버리는 기존의 '전체주의' 연구가 독재자들의 절대 권력을 과장한다고 비판하면서 『독재자들』의 집필 의도를 밝힌다. 두 독재 체제가 단순히 위로부터의 억압과 강제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동의에 기반했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고자 두 체제가 성립된 역사적 배경과 개인숭배의 대중적 기원, 종교의 파괴와 경제의 종속, 정권 내내 계속된 숙청과 투옥, 잔혹한 전쟁과 수용소 등을 폭넓게 조명한다. 


  독일과 소련의 통치자와 피치자는 약속된 새 시대를 실현하기 위해 함께 투쟁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공모했다. 바로 이 상호 관계를 바탕으로 히틀러와 스탈린은 더 넓은 역사적 이해 관계와 자신들이 지배한 인민이 품은 사회적 열망의 대리인으로 자처했으며, 상당수 국민들은 그런 이유에서 이 상호 관계를 받아들였다. 기원이 얼마나 다르든 간에, 철저히 전체론적인 두 독재 체제는 ― 1945년 이후 그러한 독재 체제는 많았다. ― 공모의 수립에 의존했다. 공모 관계는 소수를 선택하여 격리하고 파멸시킬 때 작동했다. 위협당한 자들의 지위가 체제에 포함되고 보호받고자 했던 나머지 사람들의 합리적 욕구를 확인해주었기 때문이다. 스탈린과 히틀러의 독재 체제는 대중의 갈채와 참여, 무제한의 권력에 대한 매혹이 길러낸 대중주의적 독재 체제였다. (894쪽)


  저자에 따르면 두 체제의 핵심에 자리한 것은 '전쟁'의 기억이다. 1차 대전 후 독일은 패전과 대공황으로 황폐해졌고, 이에 따른 좌절감과 분노가 독일인에게 뿌리깊게 각인되었다. 러시아에서는 1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혁명이 일어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향한 열망이 분출했으나, 내전을 거치며 혁명 국가의 성격은 더욱 잔혹해졌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매번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전쟁 중'임을 강조했다. 언제나 비상시국이고 위기였으므로 냉혹함은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전체주의 체제란 다름아닌 대중주의적 독재 체제라는 통찰은 정확하다. 그리고 '혁명의 군사화'는 러시아 혁명과 그 유산인 현실 사회주의에 지울 수 없이 각인된 외상(trauma)라는 점에서, 전쟁과 내전, 숙청을 거치며 혁명적 열정이 어떻게 일그러지는지 살피는 것은 힘들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두 체제가 공유하는 반(反)자유주의적 성격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고는 '현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 뿐일까. 『독재자들』은 세련되게 기존의 전체주의 비판을 수정하고 갱신하지만, 여전히 하나의 메아리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자임하는 셈이다. 


  "동지들, 히틀러와 스탈린은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독재자들』은 다시는 독재 체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저 잔인한 도살자들이 또다시 나타나지 않도록 혁명적 열정을 억압하고 현재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저자는 두 체제의 비슷한 점만큼이나 차이를 살핀다. 수용소 건설의 논리가 소련과 독일에서 어떻게 달랐는지 설명할 때 차이가 좀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수용소와 수감자의 숫자, 그곳에서 발생한 죽음의 숫자에서 소련의 수치는 독일을 압도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련의 수용소는 죽음을 의도하지 않았지만, 독일은 죽음을 의도했고 전쟁 중에는 적극적으로 절멸을 진행했다(그렇다고 의도하지 않은 죽음이 더 나을 수는 없다. 폭력은 의도보다 그 의도하지 않은 데 따르는 결과를 통해 그 잔인함을 증폭할 수 있다). 


  두 체제를 '전체주의'나 '독재'라고 비난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지만, 그렇다고 혁명적/정치적 열정의 분출보다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보다 안전하다는 말에 순순히 승복해서도 안 될 것이다. 참혹한 역사는 어떻게 '절멸'이라는 논리에 빠져들지 않으면서 변혁을 사유하고 실천할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