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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21세기 자본

by parallax view 2015. 7. 4.

 『21세기 자본』(글항아리, 2014)


  『21세기 자본』을 다 읽었다. 피케티는 부와 자본을 동의어로 간주하고 '이자 낳는 자본'을 자본의 속성으로 본다. 그건 피케티 연구의 핵심적인 고리이자 가장 논쟁적인 지점이다(한편 주류경제학자들은 주로 자본의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크다는 해석을 비판한다). 마르크스주의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전형적인 자유주의적 관점을 논외로 하고, 18세기부터 현재까지의 시계열 자료를 토대로 진행한 연구는 그 자체로 중요하다. 그는 경제학을 '정치경제학'으로, 즉 사회공학(국가공학)으로서의 정치경제학으로 전환하고자 하며 이를 위한 방법으로 시계열 연구를 제안한다.


  피케티는 '미완의 혁명'으로서의 프랑스혁명을 '세금혁명'으로 완수하려 한다. 프랑스혁명의 이념인 자유·평등·박애에도 프랑스혁명의 결과인 근대국가에서의 불평등은 완전히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자본이 붕괴된 이후의 '영광의 30년'(2차대전 종전 후~1970년대 말)은 지극히 예외적인 시기다. 피케티의 강점은 자본은 본질적으로 축적을 멈추지 않고 불평등이야말로 자본의 본성임을 강조하는 데 있다. 상당수 경제학자가 부르주아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이데올로그라는 점에서 볼 때 피케티가 좀더 정직해 보이는 건 이 지점에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21세기가 19세기 말~20세기 초와 같은 극단적인 불평등의 시대('벨 에포크')로 회귀할 가능성과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절반쯤 있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 피케티의 고민은 또다시 전쟁이라는 외부의 충격 없이 어떻게 불평등을 감소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정말로, 우리는 전쟁을 피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피케티는 '사회적 국가'(국민사회국가 혹은 '복지국가')와 누진적 소득세·상속세, 글로벌 자본세와 같은 장치를 제안한다(여담으로, 피케티는 프랑스의 불평등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피에르 로장발롱의 저작을 비교적 자주, 로베르 카스텔의 저작을 한번 미주에 언급한다). 그리고 글로벌 자본세를 계기로 유로존 예산회의 같은 형태의 민주적 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현재의 그리스 위기도 같은 맥락에 있는 셈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피케티는 프랑스 사회당 우파 정도의 정치적 포지션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올랑드 정부의 행태로 보았을 때는 현 정부보다 좀더 왼쪽을 향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편 『21세기 자본』의 설득력은 피케티가 동원하고 활용하는, 방대한 자료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프랑스는 가히 '기록하는 국가'이고 프랑스 국민은 '기록하는 국민(민족)'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프랑스라는 국가는 거대한 기록보관소인 셈이다. 미셸 푸코와 동료들이 『나, 피에르 리비에르』 같은 책을 낼 수 있는 배경이 되겠다. 


  1820년대부터 상속과 기부의 연간 총액에 관해 상세한 통계자료를 발표하기 시작한 정부는 1901년에 부동산 규모에 따라 다양한 통계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1950년대까지 이 자료는 연령, 부동산의 규모, 재산 유형 등에 기초한 교차 분석과 함께 점점 더 정교해졌다. 1970~1980년 이후에는 특정 연도의 상속세와 증여세 기록의 대표적인 표본을 포함하고 있는 디지털 파일을 이용할 수 있게 되어서 데이터를 2000~2010년까지 확장할 수 있다. 나는 세무당국이 지난 두 세기 동안 직접 만든 풍부한 자료에 더해 포스텔비네, 로장탈과 함께 수만 건의 개인 신고서들을 수집했다. 이것들은 19세기 초부터 국가와 각 부서의 문서보관소에 아주 신중하게 보관되어왔다. 이는 1800~1810년부터 2000~2010년까지 10년 단위로 대표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대체로 프랑스의 공증 기록들은 지난 두 세기 동안의 부의 축적과 분배를 이례적일 정도로 풍부하고 상세히 보여준다. (406~407쪽)


  예컨대 1789~1790년 혁명의회가 최초로 취한 행동 가운데 하나는 왕실 정부가 다양한 개인에게 지급한 금액(부채 상환액, 전임 관료들의 연금 및 노골적인 지원도 포함)과 그들의 이름의 목록이 나열된 '연금 개요'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이 1600쪽에 달하는 책자에는 2만3000명의 이름과 상세한 금액(개인별로 다양한 수입의 출처가 한 줄에 나열되어 있었다), 관련 부처, 개인의 연령, 지급의 최종 연도, 지급 사유 등이 기입되어 있었다. 그것은 1790년 4월에 출간되었다. (794쪽 주)


  『21세기 자본』을 읽기 전에는, 책에서 인용된 발자크와 오스틴, 헨리 제임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은 단지 '평범한' 독자가 책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는 당의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피케티 나름의 '문화비평'이었다. 19세기~20세기 초의 소설은 경제성장률은 낮고 자본축적은 높았던 시대를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당대 소설가들은 돈(화폐)을 통해 당시의 통속적인 재산 개념, 특권 계급으로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준 같은 걸 잘 드러낸다는 것이다(반대로 오늘날 그런 식의 접근은 거의 없는데, 이는 인플레이션의 등락이 급작스런 20세기 중반 이후의 상황을 반영한다고 본다). 문학은 당대를 그리고 '경제'를 얼마나 정확하게 재현/표상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너무나 정직하게 대응하는 셈이다. 이런 문화비평은 소박하지만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아주 현란한 응답으로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것이 있다. 그의 「문화와 금융자본(Culture and Finance Capital)」을 다시 살펴보는 것도 좋은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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